- 이렇게 놀아본 지가 얼마만이지??
신나게 뛰어 놀 준비 완료!
패러글라이딩의 명소, 눈부신 블루라군 왈류데니즈가 가까운 곳, 페티예에 다가가는 순간. 나는 기분 좋게 설레였다. 이제 내 몸과 마음을 사용하여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페티예에 내리니, 유명 관광지 답게, 멋진 건물들도 즐비하고.
론리 플래닛에 나온 한줄 호텔 정보를 들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또 호스텔 찾기에 나섰다.
예쁜 고양이와 마음씨 좋은 주인 부부가 살고 있는 호스텔에 도착. 새초롬하게 잡지 바구니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란.
딱 내 스탈이야!
예쁜 고양이가 두 마리나. 역시.. 숙소 잘 찾아왔군.. 음흐흐 라며 도착부터 대만족.
가방을 던져놓고, 3박 4일동안 요트를 같이 탄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Fish market 에서 신선한 생선들을 골라 산 뒤, 레스토랑에 가면 요리해준다.
새우 완전 좋아. 참치 완전 좋아. 연어 완전 좋아. 뭘 골라야 할지 한참 망설이고 망설이다 여러 가지 섞어 사기로.
내일이면 모두 흩어져 제갈 길 갈 여행자들. 나 빼곤 전부 일터로 복귀하는 무거운 몸들이시다. 나는 아직 3개월도 더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 나를 얼마나 부자로 만들어줬는지 모른다.
시간 부자.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운데 곰곰히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제까지 나를 위해 온전히 쓴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제까지 쓰지 못한 값을 지금 한꺼번에 치루느라 난 회사까지 그만두고 여기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다음날 아침 일찍,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차를 타고 산을 오른다. 1500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리기 위해서.
가이드 분들과 동행해서 가는데, 어찌나 마음이 설레이던지.
패러글라이딩 하기에 축복받은 날씨. 역시 놀으라고 하늘까지 나를 도와준다. 와우!
어제까지 비가 왔다던데, 오늘은 패러글라이딩 하기에 정말 드물게 좋은 날씨라며.
와우~ 산꼭대기에서 맛보는 자유와 짜릿함. 말로 설명못한다. 구름들이 내 발밑에 깔려있다. 유후~
엄청나게 높은 산길을 달려 한참을 올라왔다.
그런데, 아무리 겁이 없는 편이라도, 내 앞에서 하나 둘씩 앞서 뛰어내리는 걸 보고 있노라니, 살짝 무서웠다. 해발 고도 자체가 국내 산들과는 비교할 바 안되게 높았던 듯.. 여기서 뛰어내려, 이러다 잘못 되어서 그냥 땅에 곤두박질 치면,, ??
이 세상에서 정말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어....
잠깐 내 존재의 사라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저게 내 패러글라이딩.
하지만, 나는 여행을 떠나올 때 이미 한 번 죽었다.
내가 가진 걸 모두 버려도 좋다는 생각으로 떠나왔고, 과거와 미래 모두를 생각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있기 위해서 훌훌 털고 여기까지 날아왔다. 죽음 따위는 무섭지 않아. 게다가.. 난 죽지 않을 거야. 쓸데없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즐겁게 나는 저 바다 위를 날아갈 거야.
다시 웃음을 되찾고, 용기를 되찾아 패러글라이딩을 씩씩하게 입는다.
자.. 저 절벽 위를 다다다다 전속력으로 뛰어내려가야 한다. 멈칫거리면 더 위험해진다.
그래서 다다다다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내 발이 허공에 닿는 순간 짜릿함. 땅에서 떨어진 느낌은, 이제껏 내가 살면서 느껴왔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함처럼 속시원하고 자유로웠다.
와~~~~~~~~~~~~~~~~ !
내 생애 이렇게 길게 탄성을 질러본 건 처음이다.
그림 같은 해변. 블루라군. 올라오면 세상은 이렇게 작고 미비하다. 사람은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아.
이렇게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될 때마다 드는 생각. 이렇게 작은 존재들, 머리속에 자기들보다 더 큰 짐과 걱정을 안고 땅에 붙어 살아가느라고 얼마나 힘겨워들 하는지... 내가 머리속에 무겁게 넣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높은 곳에 바득바득 올라가 내려봐야 한다.
숨 한 번 고르고 이미 알고 있으나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거다.
자..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너는 세상에서 그리 특별하고 큰 존재가 아니란다.
하지만 그걸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다른 의미의 큰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거야.
주인집 아저씨가 다른 방에 한국 여자 두 명이 묵고 있다고 알려주셔서 ,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리스에서 여행 온 여자 두명. 밤에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보니 완전 반갑다.
난 오늘 페티예를 정처없이 걸어볼까 해. 걷다보면 예상외로 발견하는 게 많거든.
그 도시를 제대로 알기 위해 방문한 도시를 떠나기 전 내가 꼭 해보는 것이기도 하고.
나를 따르기로 한 두 여인과 함께 숙소를 나오자 파란 바다가 먼저 상큼하게 보인다.
지중해는 봐도 봐도 질리질 않네... 그냥 뭐, 예뻐서 넋을 잃고 다닌다.
거리에도 꽃이 많아 그런가, 꽉 차고 풍성하며 화려한 느낌이다. 페티예.. 이름만큼이나 도시가 화려하다.
대낮부터 맥주에 빨대를 꽃아 들고서..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
암벽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해 간다.
한국에서는 낙지처럼 흐물흐물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저질 체력이였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와 보니, 체력 만빵 여자였어. 산도 잘 타고, 암벽도 서슴없이 올라가는 날 보고, "언니~ 완전 터키의 날다람쥐네~~" 라며 감탄하는 여인들. 나.. 여행을 하다 보니 생기와 힘이 넘쳐 흘렀다.
내 시선을 잡아 끈 건 저기 암벽에 파인 인간의 손길이 묻어있는 저 건축물이다.
힘들게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면, 내가 좋아하는 탁 트인 시야가 나온다. 정말... 아름답다...
암벽을 깎아 만든 거대한 돌무덤. 저런 기둥을 언제 깎았는지,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나는 이런 곳이 좋다. 좋으면... 앉아서 풍경을 응시한다.
어마어마하게 구멍들이 뚫려 있고, 이것들이 모두 고대의 무덤이라 한다. 내용물은 모두 도굴당했는지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지만, 과거에 분명 화려했던 인간의 건축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유적지를 볼 때마다 드는 묘한 기분..
인간의 삶은 이토록 짧은가.. 라는 이상한 허무함. 이것들을 건축해놓은 고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내가 있다. 공간은 같되, 시간만 달리 겹쳐져 있는 이상한 조합을 떠올리면서.. 내 상상력을 발휘하느라고 머리속은 바쁘다.
페티예는 나 자신도 놀기 위해 온 휴양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관광지보다는 쓸쓸한 유적지를 만나는 기회가 더 많았고, 그런 게 더 끌렸다. 난 역시.. 휴양지에는 쉽게 싫증을 낸다.
길가 식당가에서 만난 펠리컨. 실제로 만나보니, 정말 인형같네.. 그리스 섬 미코노스에는 펠리컨이 많다던데, 이대로 다음 방문 예정 국가였던 그리스로 가버릴까. 그리스에도 유적이 많을까?
외각 어딘가에 '유령 도시'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아이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유령도시라니, 정말 멋질 것 같지 않아?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들어가야 나오는 곳. 예전 그리스인들이 살던 집단 거주지였는데, 종교적인 문제로 터키 정부에서 강제 이주를 시키는 바람에 마을 전체가 텅 빈 유령도시가 되어 버린 곳.
어마어마한 유적지다... 로마에서조차 이런 곳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폼페이에 견줄 정도의 어마어마한 도시 전체가 텅 빈 채로 통째로 버려져 있었다. 입장 시간이 지나서 갔는데 문이 열려있는지라, 공짜로 입장하는 행운도 얻어서..
와........... 정말........ 통째로 버려진 유령도시구나......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 꼭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스산한 저녁의 유령도시.
그 큰 공간에 방문객이 우리 셋 뿐이여서 그런지 그 스산함을 고스란히 더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산함과는 별도로 나는 정말 폴짝거리며 여기 저기 돌건물 사이를 뛰어다녔다. 날다람쥐처럼.
그런데 왜 이런 멋진 곳에 관광객이 별로 없는 걸까??
터키까지 와서 이런 곳을 보지 못하고 가다니.. 이런 걸 우리만 봐야 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때부터 내 여행철학이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다.
관광책자보다는 그 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과 대화해서 그들의 추천을 따르자.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일단 구석구석 내 눈과 발과 느낌에 의지해서 탐험해보자.
일정을 미리 짜서 시간에 쫓기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힘 빼고 물 흐르듯 여행하자.
내가 여행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방법이 될 거야.
혼자 여행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라고 묻는 사람들. 힘 빼고 그냥 흘러다니면 되는 데요.
다만, 힘들때는 세상 사물 모두가 나를 위해 준비되었다고 생각해보곤 한다.
저 잔디밭, 나 누우라고 폭신하게 깔려있다. 완전 고마워, 누워줄께.
저 의자, 나 앉으라고 있는거다. 완전 고마운데, 좀 앉았다 가지 뭐.
저 아름다운 바다, 보면서 감탄해달라고 내 눈 앞에 있다. 완전 깜찍해.
이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사물들에게 감사하다보면, 도시의 온 사물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금새 미소회복.
한국 친구들이 떠난 후, 혼자 뭘 할까 생각하다가 근처 유명한 계곡을 찾았다.
분명 참 이색적인 풍경인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혼자라는 게 외로워졌다.
가족 단위로 깔깔대며 웃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 혼자 있는게 살짝 무색하기도 하고.
멋진 풍경의 테이블을 봐도 혼자 선뜻 앉기 싫은 이상한 느낌이 찾아왔다.
사람이 그리워졌다..
평소에는 잘 하던 혼자 밥먹기도, 그날은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외로웠다.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Home sick 가 찾아왔나봐. 이럴 때면 이상하게도 남자친구가 없다는 게 가장 쓸쓸하다. 물론 있을때도 대화가 하고 있는데 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항상 답답하고 외로워서 갈증이 나곤 했지만, 그래도 그런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이럴 때 쪼르륵 전화기로 달려가서 나불나불 댈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여자긴 여자다. 그리고 소통을 갈구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페티예에 너무 오래 있었나. 빨리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
여행을 하다 보니, 나 같이 혼자 잘 노는 사람도, 사람이 그리워지는구나.. 진솔한 대화상대가 필요해..
관광지나 휴양지에서는 여행자나 현지인이나 내가 원하는 진솔한 대화상대를 만나기 힘들다.
전부 그냥 쉬고 있는 중이거든. 빨리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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