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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16. 2023

어머니와 아들, 그 힘든 애정 관계

 - 지쳐가는 그 아들의 여자

내 결혼식은 조금 특별했다.

물론, 주례 없는 결혼식, 남녀 동시 입장, 선언문 낭독 등의 기존 형식 파괴라는 점에서도 조금 다른 결혼식들과는 달랐지만, 가장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신랑이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서로 울었다는 거다.


그 둘은 결혼식에서 서로 마주 보고 너무 감동받아(?) 혹은 너무 짠해서(?) , 모르겠다. 뭔가 알지 못할 이유로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반면 신부였던 나는 함박웃음에 구김살 하나 없이 깔깔대며 아주 즐겁게 시어머니와 시아버님을 반갑게 껴안았다. 우리 엄마와 아빠도 물론이고.


난 도대체 우리 신랑이 이 좋은 날 왜 자신의 엄마를 마주 보고 서로 왜 우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둘의 애틋한 감정들을. 아마도 대한민국에 아주 흔하디 흔한, 어머니와 아들의 애정 관계 이야기일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그 아들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그 아버지는 배를 타는 항해사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밖에 집에 안 오셨는데, 젊은 시절 아주 훤칠하게 신성일 못지않은 외모를 가지고 계셨다. 비록 집안에 가진 건 별로 없는 장남이었지만 그럴듯한 공사에서 배를 보는 항해사여서 생활은 매우 풍족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된 그 어머니는, 아이를 낳았다. 첫째는 딸이었다. 아들을 낳아야 며느리 대접받던 시절, 그것도 자연분만을 못하고 제왕절개를 하는 바람에 엄청 비싼 병원비를 깔고 입원해 있는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곱게 보지 않았다. 그것도 딸이라니. 그 어머니는 시집살이는 하지 않았지만, 그 일로 무척 마음이 많이 상하도록 구박을 얻어먹었다 하셨다.


그러고 바로 연년생으로 둘째가 생겼는데,  이번에도 배 모양을 보아하니 딸인 듯하다 해서 울면서 아이를 낳으러 갔다 하셨다. 남편은 배 타러 가서 없고, 첫째 어린 딸은 옆집에 맡긴 채, 내 생애 아들은 못 낳는구나 라며 울면서 가서 제왕절개를 해보니,


아들이었다. 그것도 4.5kg짜리 건장한 아들


시어머니 표현으로, 둘째가 날 살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 어머니는 아들 딸 다 가진 며느리로, 기세 등등 하게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는 그리 잘 맞지는 않았는데, 남편이 술을 먹고 큰 사고는 아니지만 작은 사고들을 종종 쳐서 못살겠다 밉다 이혼해야겠다 를 입에 달고 살았다. 특히 남편이 배에서 내린 후로 같이 가게를 하면서 그 갈등이 깊어졌고, 그 맞지 않는 남편 대신 빈자리를 채웠던 것이 자신과 너무 잘 맞는 둘째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술도 잘 먹지 않았고, 자신과 성향이 비슷했으며, 하루 종일 밤새워 얘기해도 재미있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는데,  


그 아들은 무조건 엄마 편이었다.

술 먹는 아빠를 향해 엄마 대신 잔소리를 퍼부었고, 까탈스러운 아빠를 향해 엄마 대신 뭐라 뭐라 따져 들기도 했다. 전화는 가족 대표해서 엄마에게만 했고, 아빠는 오랜 기간 같이 지내지 않아서였는지 집에 계속 계시니까 뭔가 조금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공사를 그만두고 작은 가게를 하시던 부모님 집에 자금 문제가 터졌다. 비교적 그동안 유복하게 살던 그들은 자금난에 허덕였고, 대학생 시절이던 그 아들은 갑자기 대학교 등록금부터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자신 앞으로 갑자기 카드 빚이 생겼고, 그 빚을 갚느라 군대도 포기하고 월급을 받는 방산 업체에 들어갔다가 서둘러 취업을 했다. 그에게 한 가지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건 돈에 관한 것이었는데 , 하숙비가 없어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 친구와 누워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엄마의 전화벨이 울렸다.


니 , 돈 좀 있나.


아들이 돈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 새벽에 그리 전화 걸어 말씀하실 때는 급해도 엄청 급한 돈 이슈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이었기에 그때 상황이 비교적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그 가족은 '돈 문제'로 허덕였다. 그리고, 그 문제로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고 아들도, 그 어머니도 그 남자가 결혼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기에 아마도 결혼식 날 둘이 마주 보고 눈물을 글썽였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깊은 사연이 있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아들에 대해서는 애틋하다 못해 절절한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를 자신의 여자가 자신처럼 아니, 자신 대신에 애틋하게 모셔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둘이 사이좋게 오손도손 지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니, 그것도 아니더라도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기를, 내 어머니의 과오를 조금 너그럽게 품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내가 된 여자가,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다만, 견디기 힘들어졌고 남편의 도움이 필요해졌을 뿐이었다.
그들의 애정 사이에서 , 삼각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졌을 뿐이었다.


보통, 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촉발되는 이유가 '여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관계의 문제로서, '삼각관계'의 양상을 띤다.

어머니-아들-그 아들의 아내로 보면 거부감이 들 내용이지만, 그저 각기 인간으로 보고 인간관계로 바라보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두 여자와 , 한 남자.
한 남자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 여자 사이의 치열한 전투다.


심리학과 정신분석을 공부한 여자는 이것에 대해 이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역할로 있을 때는 갈등이 전혀 없었으나, 아들의 아내 자리에 대한 간섭이 심해지면서 갈등이 필연적으로 촉발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에 , 그 '부부관계'에서 어머니가 이제 그만 빠져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기존의 '자비로운 어머니'로 한 발짝 물러서서 더 이상 필요 없는 간섭을 하지 않고, 불필요한 묘한 신경전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총각때와 똑같은 부모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고 아니 오히려 보다 더 효도하고 싶어 했다. 뭔가, 자신이 이제 장성하여 어엿한 한 가장임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은' , 그래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 것 같아 보였다.


여자는 여기서 선택해야 했다.
다시, 남자와 나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 남자의 어머니 밑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그 여자는 자신이 '익명의 여자'의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 여자의 결혼은 누군가의 통제 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남자와 사랑하고, 그 남자와 함께 주도권을 쥔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그들의 삶으로 돌려보내드리고, 우리는 각자 성인으로 성장하여 '동등하고' '대등한' 성인으로서의 관계를 맺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그분들 밑에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딸'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통제를 받거나 간섭을 받는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결정을 했다면, 행동해야 했다.

내 생각을 남편에게 어렵지만 알려야 했다.


나는, 독립하고 싶다.

우리 엄마뿐이 아니라, 시댁으로부터도.


당신도 당신 어머니로부터 제발 독립하자.
정신적으로.  

신랑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자신이 시어머니가 잘못한 것 같은 일화를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독립이 덜 된 '마마보이' 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를 욕하는 거야? 우리 엄마가 오죽하면 그러겠어?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런 뜻이 아닌데 네가 오해하고 곡해해서 보는 거라고!

-아니, 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불편한 점을 이야기해야 하니 어머니 얘기를 해야 하는 것뿐이야.

-너도 나중에 우리 아들 시어머니가 되면 별 수 없을걸.

-어, 나도 별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난 다른 선택을 할 거야. 아들과 며느리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 거야.

-네가 원해서 너의 친정과 결별한 거지, 난 괜찮았다? 난 원하지 않았어.

-내가 원했어. 당신은 그 밀착관계의 피해가 뭔지 잘 몰라

-그래, 심리학 공부했다고 네가 잘났다 이거지? 너만 옳지 이 세상에?

-아니, 나만 옳은 게 아니고, 이건 유명 심리학자들이 몇십 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라고. 내 생각이 아니라고!


그렇게, 마음이 아픈 아들은 자기 여자의 마음을 후벼 팠다.

이는 연애 때 나를 애먹이던 태도와 어쩌면 똑 닮았다. 내 마음이 우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입장에 서서 나와 싸웠다. 연애 때는 예전 여자친구들의 입장에서 나의 양보를 요구하더니, 이번에는 시어머니 빙의를 해서 나와 싸워댔다.

물론, 그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짜증이 난 것 같아 보였다. 왜 엄마는 자신의 마누라에게 실수를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하는가, 내가 전화를 하지 말라 할 수도 없고, 그냥 둘이서 사이 좋게 잘 지내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나를 피곤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아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짜증이 무척 났다. 그냥 이건 '여자들이 피곤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면 속 시원한 듯이 , 여자들은 정말 왜 이런지 몰라.. 라고 넘기고 싶었으나,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몰라서 그저 그냥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이미 자신의 엄마와 독립 과정을 거친 지라, 그 독립 과정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끈기 있게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설득하려 애썼다. 잘해주기도 하고, 싸워보기도 하고, 질책도 해보다가 결국엔 어머니보다 더 잘해줌으로써 독립을 시키자라고 마음먹고 더 잘해줬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계속되는 간섭과 개입에,
자신의 편에 서지 않고, 시어머니를 방관하는 남편의 태도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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