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이 이상한 삼각관계를 끝내야겠다.
라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고난은 예정되어 있었다.
모르겠다. 내가 그냥 그 간섭받는 '며느리' 역할에 머물렀다면, 뭐 1년에 몇 번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그냥 참고 살았더라면. 아니면, 그저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남편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나 혼자 끙끙 앓거나 친구들과 남편 시댁 욕을 하며 풀고 다시 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편했을 것이다. 그저, 나는 사랑받는 아내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신랑은 내게 감사했을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냥한 내게. 그리고, 나도 좋은 며느리가 되었을 것이다. 항상 '네네 어머니' '김치 맛있어요' 라며 아들 대신해서 아들의 삶을 리포트해주는 특파원 역할을 했더라면, 어머니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들이받는 선택을 했다.
나는 이제 더이상 뒤에서 시어머니 욕을 하고, 남편의 욕을 하면서 앞에서는 '네네, 호호호' 하는 걸 하고 싶지 않았다. 성격에도 맞지 않고, 그것이 진정한 위선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앞에서도 표정을 잃어갔고, 점 점 더 시어머니와의 미묘한 신경전은 심해져갔다. 말 잘 듣지 않고 퉁명 스런 며느리를 좋아할 시어머니는 없었다. 그러나, 이 이유에 대해서는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없어서 ,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라 여겨졌고, 그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남편을 두드렸다.
혹자는 참 멍청하다고 한다. 내 친구들은 왜 그러냐고 했다.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고부갈등인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느냐 했다. 남편은 이해 못 할 것이고, 되려 남편이 나에게 난리 날 거라고. 자기 엄마한테 막하는 마누라 좋아할 사람 없다면서
난 막하는 게 아니야. 정당한 내 역할을 사수하는 거지.
그리고, 난 뭣보다 '마마보이' 랑 살고 싶지 않아.
마마보이는 내 남자가 될 자격이 없어.
그냥 가서 엄마랑 살라 할 거야.
난 보기보다 단호했다. 아이가 셋 있었지만, 난 이혼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어머니가 중요하다면, 어머니께 가버려라 라는 마음이 들어버렸다.
자신의 마누라가 어머니보다 중요해서, 아내에 어머니에게 당하는 설움이나 불편함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 남자와 살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건 결심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이 남자가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이 남자와 살 필요가 없다.
이런 표현이 미안하지만, 이상하게 시어머니와 있으면 내가 '첩'이 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본처가 자신의 남자에 대해 더 잘 알고 , 너는 와서 애를 낳는 보모이자 내 남자를 돌보는 어린 첩 같은 느낌이 휘감았다. 기분이 정말 나빠졌다.
나는 왜, 내 속옷을 시어머니가 사주는지, 남편과 나의 생활에 대해서 시어머니가 궁금해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닌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와 남편의 안부가 궁금한지를 '나를 통해' 관리하고 간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뿐이었다.
나는, 항상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었다.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시어머니께 '특파원'으로서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불쾌해졌다. 관심이 간섭으로 느껴졌고, 잘 지내냐는 말이 안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반찬 보내주시겠다는 성의가 '너는 반찬 잘 못하잖아' '우리 아들 잘 못 먹이니까'로 들렸고, 실제로 그런 멘트를 하시기도 했다. 애들이 못 얻어먹어 새다리라고. (참조로 우리 애들은 상위 5% 의 몸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난 벗어나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 신랑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시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로 맘먹었을 뿐인데, 그리하여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을 뿐인데, 이것이 남편과의 싸움으로 번졌다. 남편은 아직 어머니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마마보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주 치열한 싸움이 되었다.
내 요구는 비교적 간단했다.
어머니의 직설적이지 않은 대화법이 너무 힘들다.
계속되는 경제적 침범에 힘들다.
독립해라. 너한테만 좋은 엄마지, 내게는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해라.
즉, 너의 엄마 때문에 내가 힘들 수 있다는 걸 인정해라.
신랑은 거품을 물었다. 나도 이제는 물러서지 않았다.
- 너는 너만 옳지, 너만 생각하지? 니 입장만 얘기하지 항상
- 그럼 내가 내 입장 대변하고 얘기하지, 누가 얘기해? 이 집에서 내 입장 생각해 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당신도 시어머니 편이잖아. 내가 누구랑 싸우는지 가끔 헷갈려. 정신적으로 독립하라고
- 우리 엄마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네가 곡해하고 있다고
- 나도 당신 어머니랑 지낼 만큼 지내봤고, 관계 맺어 봤다고. 계속 이렇게 나 이상한 여자 만들 거야?
- 아주 우리 엄마 병들어서 모시자 하기라도 하면 난리 나겠네?
- 어, 좋진 않아. 난 우리 엄마 모시는 것도 편치는 않을 거야
- 왜 말을 그렇게 못되게 해? 못됐다 정말
- 아니, 못된 게 아니라 솔직한 거야.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그게 좋지는 않아.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
- 왜 그렇게 못됐어??? 자식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자식이니까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당신과 달리 나는 유년기에 엄청 힘들게 살았어. 내 미래까지 압류당하기 싫다고! 난 자유로우려고 당신하고 결혼한 거지 당신 대신 효도하려고 결혼한 게 아냐!
- 못된 며느리다 진짜
- 어 싫어. 내 옆에 붙으셔서 내 아들 밥 잘해주나 못하나 눈 가늘게 뜨고 cctv처럼 날 감시할 텐데, 숨 막혀서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아? 못 살아 나는. 대신 꼭 해야 할 때 의무감으로 한다 했어. 비난하지 마. 당신이 솔직하지 못한 거야.
-도대체 왜 자꾸 우리 엄마 못났다 얘기하는 거야? 기분 나쁘게!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전화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들다는 거야?
당신이 제일 싫어하는 직장 후배, 죽겠는 그 직장 후배가 맨날 당신 열받게 하는데 내가 거기서 나는 그 후배랑 사이좋고 좋아하니 말도 못 꺼내게 하면 기분이 어때?
신랑 친구가 맨날 전화해서 우리 얘기는 안 묻고 신랑 친구 부부 얘기에 대해서만 묻고 끊는 게 일주일에 한두 번 반복되면 당신 기분이 어때?
당신 팀장이, 당신하고 단둘이 있을 때는 겁내 불편한데, 본부장 오면 갑자기 친한 척하면 당신 기분이 어때?
안 그래도 돈 때문에 쪼들려 죽겠는데, 맨날 장인 장모가 전화해서 , 돈 없어서 어쩌니 내가 만원 줄까? 애들 간식이나 좀 사주렴 , 매번 전화하면 당신 기분이 어때??
이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공감하라는 게 이해가 안 돼? 여기서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타인이 아니라 '당신 어머니'라는 게 기분 나쁜 당신이 정신적으로 독립이 안된 거라는 게 이해가 안 돼??
그냥, 아, 그 사람 때문에 네가 힘들고 기분이 나쁘겠구나
그 사람이 어머니인 게 당신한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게 정신적으로 독립이 안 된 마마보이라는 건데, 그게 정말 이해가 안 돼???
- 아들이 엄마한테 잘하는 게 잘못된 거야?
- 잘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고, 선 넘지 말라는 거야. 내가 불편한 걸 듣기도 싫으면 결혼은 도대체 왜 한 거야? 평생 엄마랑 살지. 결혼도 엄마가 하래서 했냐? 난 분명히 얘기하지만,
정신적으로 독립안 된 '마마보이'랑은 못살아.
독립할 마음이 있다면 내가 도울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도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여기서 끝내.
이혼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건 내 진심이었다. 난 그 '첩'의 느낌이 싫었다. 그리고 독립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남자와 더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엄마 치마폭에 아직도 '우리 엄마가 최고야' 라며 , 자신의 여자에게 우리 엄마 좋은 사람이고 네가 모자란 여자이니 네가 참아.라고 말하는 남자와 평생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끝내자. 여기서 깔끔하게. 왜냐면, 나는 내 아들을 이렇게 또 키우는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여기서 꾹 참고 살면 아마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 같아. 내 아들이 '내 남편'이 되는 이상한 대물림이 아마도 계속될 거야.
남편을 사랑할 수 없다면, 남편 없이 혼자가 되는 게 나아.
그래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여지라도 생길 거 아냐.
사랑할 수 없는 사람과 더 이상 살 수는 없어.
나는, '마마보이'를 사랑할 수 없어. 나를 보호하지 못하는 '애 ' 같은 남자를 사랑할 수 없어.
그렇게 나의 단호한 입장 표명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단 한 발자국도 거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가 내 마지막 마지노선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로, 아이들 때문에 마지못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신랑으로 하여금 결정을 하게 해야 했고, 나도 결정해야 했다.
마마보이 특징, 마마보이를 엄마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로 생각하지만 반대로 엄마가 아들에게 의존하고 아들을 애인, 남편으로 대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신이 의존하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고자 아들의 학교, 전공, 직업을 갖도록 만들고 아들은 그 기준에 맞출 때만 눈을 빛내며 사랑을 말하는 엄마에 사랑을 얻고자 엄마의 과도한 기대에 맞춰 자아(ego)를 버리고 엄마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이라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위축되었다고 느끼고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단어 ‘마마보이’의 억양이 어린아이를 연상시켜서 그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이 된 마마보이는 제일 가까운 아내, 깊은 관계의 연인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들의 마마보이의 행동 특징과 그 행동의 원인에 대해 알아보자
여기서 연락의 ‘빈도’는 심할 경우 매일 특정 시간, 매주 특정한 요일에 이루어진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며 대화 내용이 주로 자신의 일이나 환경에 대한 하소연, 아들 및 다른 자녀들에 대한 걱정, 자신이 겪은 일이다.
이 어머니의 행동은 매일 저녁, 매주 자신의 하소연을 늘어놓고 공감을 받고자 하는 애인의 형태를 나타낸다. 엄마는 아들을 연인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하소연하고 위로받는 존재로 쓰고 있는 것이다.
결혼한 경우 시어머니의 부당한 태도를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유교사상에 입각한 부모에 대한 효도를 무기 삼아 아내를 비난하고 결혼 전에는 은연중 효도를 당연하게 주입하려는 형태를 보인다.
이들은 엄마를 ‘불쌍’하게 여긴다. 엄마는 아들을 조종하기 위해 아들이 자신을 실망시킬 경우 나약함, 고통 호소, 과도한 실망을 통해 아들이 죄책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에 아들의 입장에선 엄마가 항상 불쌍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결혼하면 나는 물론 우리 엄마까지도 보살펴 줄 연인을 찾는다.
엄마의 말이라면 거역해선 안 된다. 여자친구와 남자친구, 남자친구 어머니와 식사를 하는 자리 혹은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가 여자친구에게 무례한 행동, 무리한 요구, 비난을 하더라도 이를 중재하는 것이 아닌 방관한다. 엄마의 말이니 무조건 따르고 봐야 한다는 논리다.
그동안의 경험상 엄마의 말을 거역할 경우 “넌 아직 세상을 몰라”, “네가 뭘 알아” 같이 말하며 엄마의 말이 다 옳으니 그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항의 형태를 나타내면 죄책감을 주기 때문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저항하면 ‘불쌍한 우리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한 엄마와 같은 무한한 사랑을 주고 말하지 않아도 배고프면 밥을 챙겨주고 어리광을 받아주며 위로해 주길 원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못한다고 비난한다. 엄마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고 희생했듯 자신도 그렇게 하길 바라는 것에서 비롯되며 여자친구, 아내는 또 다른 엄마로 갈아타는 용도로 인식하는 수준이다.
여자친구, 아내가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그걸 바로 엄마에게 고자질한다. 자신은 여자친구, 아내에게 하는 거 없이 엄마처럼 자신을 사랑해 주고 헌신해 주길 바란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이들은 진정한 사랑을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이 유지돼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착각한다.
심리적으로 마음엔 이미 엄마라는 애인이 있다.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엄마를 배신하는 것과 같이 느낀다. 이러다 보니 성욕은 곧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온갖 이유로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내세워 섹스를 거부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문제로 성적 문제가 발생하여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문제는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약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근친에 대한 죄책감과 실제 성욕에 대한 내면의 무의식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엄마와 분리되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나타낸다.
엄마는 아들의 독립성을 억누른다. 아들이 독립한다는 것은 나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하면 억눌러버린다. “넌 네 할 일만 해 나머지 문제는 엄마가 다 해결할 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독립욕구 탐험 의지가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억눌려 온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넘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면 엄마는 ‘걱정’을 명분으로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죄책감을 주니 모든 결정을 엄마에게 맡겨버린다.
“어느 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저 청바지가 예쁘고 잘 어울리겠다 말하니 사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뒤 그 바지를 다시 가져와서 환불받아야 한다고 하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엄마가 안 이쁘다고 환불하라 했다고 하네요”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 선택된 결과는 긍정적 적이든 부정적이든 거부하고 본다.
엄마는 남편이 채워주지 않는 감정적 결핍을 아들을 대신하여 채우려 한다. 마마보이를 형성하는 엄마의 필연적인 환경은 ‘남편의 부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재는 없는 것과 역할에 대한 부재 까지도 포함한다. 남편에게 느끼는 외로움을 아들에게 대신하고 남편에게 받는 정서적, 물리적 학대를 아들이 대신 자신을 구해줄 사람으로 생각하며 아들을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작품(아들)에 걸맞은 여자를 만나게 하거나(자신이 되고자 했던 모습을 갖춘 여자) 의존도가 심한 경우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섹스, 출산)을 대신할 저항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여자를 자신의 아들 곁에 두어 그 역할 외에 다른 역할은 자신이 남아 계속 이어가려 한다.
(출처 :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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