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독립해야 하는 문제인가.
도대체 네 삶은 왜 이렇게 투쟁인 거야?
네 삶은 왜 이렇게 간섭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야?
그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나의 사정과 나의 성장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의 말이었다.
다 네 문제야. 네가 너무 물러서 그래.
지랄을 한 번 확 떨든가, 아무도 감히 니 삶에 그런 간섭조차 못하게
네가 너무 순종적이고 착해 보여서 그래.
다 니 탓이야.
친구는 반 농담, 반 진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진짜로 내 문제라는 것을.
맞다. 나는 한 번도 당사자에게 명확하게 내 선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매번 명확하게 짚어 넘기지 않고 참아 넘기는 것 또한 그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속이며 그저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애꿎은 사람만 들들 볶아댔다.
시어머니도, 내가 친정 엄마와 해결했던 것처럼 ,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어머니, 저한테 그러지 마세요.
아들한테 직접 전화하세요.
왜 자꾸 돈 얘기를 하세요?
물론, 그 과정에서 신랑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생각해 보니 신랑은 이미 동의를 한 상태였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자기는 따르겠다고 , 시어머니에게 직접 네가 얘기하라고 재차 말해왔었다.
결국 문제는 나였고, 키를 쥐고 있는 것도 나였다.
문제는 다른 그 누구가 아닌, '나'였다.
분노가 올라왔다. 남편에 대한 분노도,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도, 그 누구에 대한 분노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심하게 올라왔다. 그걸 왜 그렇게 참고 혼자 속을 끓인 거야.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제대로 선도 못 긋고 그러고서 화풀이는 남에게 하고, 남 탓만 하고 있어!
그러나 역시 또 분노 표출은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쏟아부어졌다. 이제까지 난 뭘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참아왔는가, 왜 내 곁에 있는 너는 나를 도울 수 없었는가. 내가 이렇게 힘들 동안 남편이란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완벽한 남자로서 내 곁에서 자신의 여자를 지킬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바보처럼 마마보이처럼 굴어서 나를 힘들게 한 세월이 얼마인가. 온갖 그동안 쌓였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신랑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어느 정도 정당한 것이어서 표출되어야만 해결될 건강한 성질의 것이었다. 다만, 표현이 거칠다 해도. 그리고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는 신랑은 어리둥절했을 테지만..
신랑은 네가 진작에 명확하게 표현을 했다면 자신이 도왔을 거라 했다.
난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제까지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했다고 받아쳤다. 물론 사실이다. 그리고 신랑의 말도 사실이었다. 내가 좀 더 명확하게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더라면 그가 분명 도왔을 것이다.
분노를 한 바탕 쏟아부은 뒤, 정말 이제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모두 쏟아낸 뒤, 나는 내 입장 정리를 그제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어머니 전화가 이제 받기 싫다.
-간섭 싫다. 전화 그만하시고, 시댁 경제적인 얘기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를 독립된 삶으로 놔두고, 며느리인 나를 '예의 바르게' 대접해 줘라.
-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 아니라면, 괜히 관심 있는 척 전화해서 아들이나 손주들 얘기 묻지 마라.
-나에게 먹이고 싶은 것도 아닌 반찬들, 김치들을 가지고 '나와 대화하는 것'을 그만두시라.
-원하고 보고 싶은 아들과 연락 직접 하시라.
재차 가다듬었다, 나의 요구사항과 바람들을.
1. '나'라는 인간에 대해 관심 없으시고, 그저 나를 아들과 손주들의 대리인 정도로 여길 거면, 연락하지 마시라. 이야기하고 싶은 당사자와 직접 하시라.
2. 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생각 마시라. 특히 효도 같은 거 바라지 마시라. 아들도 힘들다.
3. 아들의 여자를 '타인'으로 존중하며 어렵게 예의 바르게 대해주시라. 사위가 대접받는 것처럼.
4. 나도 추석, 설에 우리 집 먼저 가겠다. 각자 집을 가도록 하자. 나도 외동딸이다.
남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남편은 의외로 비교적 쉽게 내게 그동안의 일들을 진심 어리게 사과하고, 내 입장을 이해했다.
그렇게 내가 상각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쉬울 거였어? 내가 이렇게 강하게 의사표현을 하니까 이렇게 쉽게 납득할 거였어?
물론, 지난 13년의 세월이 있었고, 그동안 끊임없는 나의 시도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다시 한번 깨닫고 있었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문제일 뿐이다.
남편이 어머니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간에,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든 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나의 입장을 제대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는 것.
그들의 기대를 100% 만족시키지 못해도 아쉬워하지 말 것.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희생하거나 소진시키지 않고, 서로 기생이 아닌 공생할 것.
내가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실수는, 나의 경계, 즉, 내가 견디어낼 수 있는 마지노선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데 있었다. 그들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이제야 깨달은 내가 역정을 심하게 내기 시작하자, 그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모든 문제는 경계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경계와 타인의 경계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가 인간관계 트러블의 대부분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은 상대가 밟지 말아야 할 경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요구하는 일뿐인 것이다.
나는 나의 경계조차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걸 제대로 알리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경계 구축부터 단단히 하기로 마음먹고 신랑으로부터 내가 '정신적으로 독립'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신랑과의 이혼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내가 '독립' 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의 어깨에서 내가 내려오면 될 일이었다.
나의 문제를 그가 해결해 주도록, 시어머니를 내게서 멀리 떼어내주도록 , 그가 나만 바라보도록 원하는 나의 요구조차 그에게는 자칫 폭력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나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그에게서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나의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그게 관건이었다.
그것이 이혼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이혼은 사실, 별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혼이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독립이라면, 정신적으로 독립해서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다면, 그와 같이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부터 익명의 여자의 삶을 버리고, '나의 세계'를 다시 찾기로 결심했다.
다시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야? 뭘 하고 싶은데?
아이 셋,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을 버리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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