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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21. 2023

프롤로그 -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 그 두 여자 사이의 한 남자.

왜, 우리나라에서는 결혼과 함께 남편의 부모, 특히 그의 어머니를 깍듯하게 모시는 문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왜 고부갈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미묘하고 교묘한 여자들의 신경전으로 비치는 것일까?


우리나라 여자들이 다른 나라 여자들에 비해 쿨하지 못해서?

아니, 그저 그냥 여자들의 특성이라서?


아니다. 나는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여자들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들의 거대한 착각은, 고부간의 갈등이 그저 피곤한 여자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천만에, '그'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을 갈등이었다.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별문제 없이 지냈을 각기 다른 '두 여자'에 불과하다.

여자들의 미묘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착각 또한 이 사회에 지배적이다. 반은 맞지만, 그렇게 미묘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이유가 숨어 있다.


나는 시어머니- 며느리 간의 관계에 대해 가장 잘, 시원하게 , 직설적으로 잘 풀어낸 분이 '법륜 스님'이라 생각한다. 법륜 스님은 본인은 장가를 가지도 않았고 마누라도 없지만, 이러한 고부갈등에 대해서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셨다.


나는 모든 관계를 '인간관계'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지요.


또한, 워낙 유머러스하셔서 유머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주 정확하게 짚어서 사용하시는 단어 중 이것이 있다.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


이는, 고부 갈등과 시댁 문제의 핵심 문제를 꿰뚫고 있다고 보인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는 '정신분석학' 적인 이야기를 '인간관계'에 기반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로 풀어내서 가장 잘 설명해 주시고 계시는 분이 법륜 스님이시다.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결혼했다.

그러나, 그 멋진 젊은 남자 뒤에는 늙은 여자가 서 있다.

그 늙은 여자는 늙은 남자에게 실망하여 젊은 남자에게 정신적으로 기대어 살아온 세월이 깊다.

그리고 '젊은 여자'를 못 모르고 사회적 기준으로 '며느리'라고 받아들였다.


거기서부터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시작된다.

그 늙은 여자의 진짜 사랑하는 남자는 늙은 남자(남편)가 아닌, 젊은 남자(자신의 아들)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그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함께 잠자리를 하고, 같이 사는 것은 그 여자일지 몰라도, 진짜 그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에게서 잊히기가 싫다. 그가 나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내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아픔을 유발한다.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뿌리 뽑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김치를 싸들고, 정성스레 만든 반찬을 싸들고
젊은 남자의 집 주변을 배회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를 무의식적으로 구박하며 , 그녀를 한낱 첩 정도로 여기는 무시하는 은근한 태도가 교묘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그 남자'가 좋아서 결혼을 한 여자는 미칠 지경이다. 이런 교묘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삼각관계'에 미쳐나갈 지경이다. 내가 좋아서 결혼한 남자는 다른 여자 편이고,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아무리 자신이 괴로워도 범접할 수 없는 성역처럼 존재한다.


남자도 미칠 지경이다. 자신에게 한없이 좋은 엄마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 오손도손 지내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둘 중 하나는 속이 썩어나간다. 보통은


젊은 여자의 선택은 둘 뿐이다.


그냥 대충 받아들여 남편을 포기하고 살거나,
이혼하거나.


남편을 포기하게 되면,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거나 보통은 자신의 자식에게 집착하는 대물림을 하게 되기 쉽다.


애정결핍의 대물림


물론, 이런 갈등 구조가 없는 집들도 많다. 어머니가 그저 '어머니'로 존재하는 가정에는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젊은 남자가 자신의 젊은 여자에게 '남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집에서도 이런 고부갈등의 문제가 없을 것이다.


모든 고부갈등은 사실, 삼각관계이다.


이 사실을 직시해야만, 해결방안이 생긴다.

특히 남자들은 고부갈등이 있는 집일 경우,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아내는 지옥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첩'으로서의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조금 과격한 단어로 들리겠지만, 사회적 역할 '어머니' '아내'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그저 실질적으로 그들이 행하고 있는 역할만으로 관계를 재정의하자면 많은 고부갈등 가정의 경우 이런 양상을 띤다.


오랜 시간 남편의 부재로 인해, 아들을 의지하고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 그러다 보니,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자신의 편이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신의 진정한 남자인 '아들'이 장가를 갔다.

젊은 여자가 옆에 있는 꼴이 '무의식적'으로는 보기 싫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의식적으로는 '어머니'이기에 그런 티를 내서는 안되지만, 깊은 마음 구석에서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괴리에서 그 교묘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 아들일수록, 어쩌면 그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지극히 정신분석적인 내용이며,

법륜 스님이 유머러스하게 매번 이야기하시는 부분이다.


남자들이 이중 멤버십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고부갈등이 생긴다.


이 말을 달리하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가 계속되는 한,

남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머니'와 '아내'라고 우기는 한, 해결책은 없다.


남자들은 , 자신이 결혼해서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순간,
어머니의 자식이 아닌 그저 '한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인간의 본성상, 독립하면 그때부터 모든 여성은 '여성'이다. 어머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는 성적으로 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독립하는 순간, 어머니로부터도 독립하여 그녀와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나를 애써 키워준 나의 어머니가 아닌, '한 남자'와 결혼해서 사랑하고 그 결실로 나를 낳았던 , '선택'에 의해 당신의 아버지를 선택했던 '한 명의 여자'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머니라 할지라도, 결혼하여 독립하는 순간, 그의 어머니는 그저 나이가 좀 더 든 한 명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가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결혼’ 독립이고, 그것이 고부갈등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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