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새의숲 Jan 12. 2024

김치, 그 치밀한 권력구조

 - 나를 잊지 말아 줘 

대한민국 며느리들을 못된 년들로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물건'이 있다. 


시어머니의 김치, 그리고 반찬들이다. 


김치는 반찬 중에서도 가장 정성이 가득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고, 밑반찬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한 사람의 온전한 노동력과 음식에 대한 '정성' 그 자체다. 


그런데 이 반찬으로 왜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발생할까? 김치와 밑반찬에 숨어있는 미세한 권력구조가 있다. 


즉, 너는 내가 돌봐야 돌봐야 하는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돌봄과 보살핌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아주 많은 경우, 그것은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방을 무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묶어두려는 시도를 행해 왔다. 우리는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항할 수 없는데, 그것은 그 행위들이 '보살핌과 사랑'이라고 명명백백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일종의 폭력에 속한다. 




타인에 대한 폭력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우리는 바깥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기 쉽다. 자신의 실패감과 두려움은 타인에 대한 강렬한 관심 밑에 숨겨 버린 채, 이는 "내 인생은 엉망이야. 내가 당신의 인생을 고치면 내 기분이 나아질 거야"라고 속이며 말하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다면, 우리는 심지어 하루 동안 타인을 위해 한 놀라운 일들에 자부심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 수도 있다. 자기의 삶을 용기 있게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타인을 실제로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수많은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을 쉽게 침해할 수 있다. 


타인에게 무엇이 더 좋은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폭력을 행하는 교묘한 방법이 된다. 우리는 타인을 '돕는다'라고 여기지만, 실은 그들의 자주권을 줄이고 있다. 비폭력은 타인에게 스스로 답을 찾을 능력이 있음을 신뢰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한다. 타인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들을 가엾게 여기지 말라고 요청한다. 비폭력은 타인의 여정을 신뢰하고 그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최고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최고의 모습이 되도록 사랑하고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우리 자신을, 자기의 경험을, 타인을, 타인의 경험을 더는 통제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남을 걱정하는 것은 보살핌을 가장한 폭력의 또 다른 방식이다. 걱정은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상대방이 최선을 다한다고 믿거나 믿지 않는다. 둘 중 하나다. 걱정이란 "나는 당신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여기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걱정은 상대방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내가 더 잘 안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다. 걱정은 "나는 당신의 인생행로를, 당신의 해결책을, 당신의 때를 신뢰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걱정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두려움이며, 상상력의 오용이다. 다른 사람들을 걱정할 때 우리는 그들을 평가 절하하고 모욕한다. 


나는 '도움'과 '지원'의 차이를 구분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도움에는 내가 상대방보다 더 좋은 결정을 하고 난관을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움은 내가 상대방보다 '위에' 있는 것이다. 반면에 지원은 상대방과 동등한 능력으로 동등한 경기장에서 만나는 것이며, 해답을 주기보다는 존중하고 존경하면서 함께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야마 니야마> 



이런 이유로, 나는 나를 향한 걱정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집에 먹을 것이 없다거나, 굳이 반찬을 마련해서 우리 집 냉장고에 들이미는 행위를 나는 '침범'으로 여긴다. 나를 우리 가족들을 제대로 먹일 수 없는 능력 없는 '엄마'이자 '아내'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자신들의 김치와 밑반찬들을 이미 독립한 아들 집에 끊임없이 들이밈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는 은밀한 시도가 김치와 밑반찬이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이 권력싸움은 , 며느리가 못된 년으로 취급받으면서 끝난다. 


많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음식들을 버려버린다. 

요청하지 않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침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조용히 버리는 일이다. 


그것은 그리고 내가 보기에 가장 착하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그들은 그들만의 가정을 꾸린다. 

가정을 꾸린다는 의미는 현대에서 자신들의 독립을 의미한다. 

독립의 최우선은 '자신의 생계를 책임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먹고 자고 입을 것들, 즉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함 , 그것이 독립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도움'이 계속해서 밀려든다. 

실제로는 독립을 원하지 않는 어떤 가정에서는 그 반찬들이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독립을 원하는 그 어떤 가정에서는 그 음식들이 '침범'으로 여겨질 것이다. 

'너는 이런 것들을 만들 능력이 아직 없으며, 내 음식이 더 낫다'라는 권력 싸움으로 여겨질 것이다. 

'네가 내 아들 곁에 있지만, 너는 내 아들을 만족시키며 먹일 수 없다. 내 음식이 아직 필요하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많은 여자들이 읽어내고 불쾌해할 것이다. 시어머니의 김치는, 밑반찬은 그래서 그저 '정성'이라고 보기에는 다른 측면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물론 친정의 음식들도 마찬가지. 그 음식들의 목적은 단 하나, 


자식들의 독립을 방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걱정하고 보살핌으로써, 그들을 여전히 자신들의 휘하에 놓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이 존재한다. 


무의식적이라는 것은 의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식적으로는 '보살핌과 사랑' 일 지언정, 

무의식적으로는 그러한 '통제 욕구'와 그들의 위에 서고 싶은 '우월감의 표현'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많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의 음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의식들은 그것들의 의도를 기가 막히게 읽어내니까. 


#시어머니의 반찬

#김치의 권력구조

#걱정

#보살핌

#타인에 대한 폭력

#진정한독립이란


이전 02화 달콤한 거짓말의 환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