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가끔 정지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 상태로 뭔가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골 썩이던 문제들도 어느 정도 해결되어 사라지고 오롯하게 내가 남아 있을 때이다.
삶의 화두. 말 그대로 '주요 이야기거리' 가 사라진 상태.
어떤 강한 욕망도,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이
딱히 하고 싶은 말도, 꺼내고 싶은 주제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크게 없이
그저 내 존재만 덩그라니 자유롭게 남아 있는 상태.
어떤 이는 심심하다 표현할 것이고,
어떤 이는 허망하다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혼란과 방황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어떤 이는 의미없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무언가 텅 비어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여러 번, 이 지점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까지의 내 삶의 화두, 주제가 사라진 상태.
그저 내 존재 자체만 느껴지는 상태 말이다.
꼭 무언가 큰 변화 앞에서 느껴졌던 이 '텅 비어 있음' 의 상태를.
꼭 가야 할 곳이 없기에 불안할 수 있다.
꼭 이뤄내야 할 것이 없기에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순간이 진정 '있음' 의 순간이 아닐까 한다.
이 텅 비어있음을
혼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급하게 무언가를 쫒지 않으며
다른 이의 욕망으로 채워넣지 않고
찬찬히 머물러 있어 보기를.
내 자신에게 권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