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켜주지 못한 존재에게 보내는 늦은 안부
수영장에 자전거를 세우려다 문득,
작은 새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린 까치.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가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앉아, 나를.
눈이 너무 맑았다.
도무지 외면할 수 없었다.
인천 야생동물구조센터는
“까치는 유해동물이라 구조하지 않는다”고 했고,
동네 동물병원은
“새는 진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누구도 그 생명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가까운 문화센터에 알렸지만
다들 난처한 눈빛만 주고받았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눈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데려왔다.
죽더라도,
지켜보는 누군가의 손 안에서 죽는 게
덜 서럽지 않을까 싶어서.
까루.
그렇게 나는 이 까치에게 이름을 붙였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썬룸에서 그 아이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물통을 엎고 온몸이 젖은 채
까루는 저체온증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 작은 몸을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레 주물렀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또 지켜주지 못한 임종을 보는 건가…”
그러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나는 병아리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닭이 될 때까지, 몇 년을.
정성껏, 매일같이,
그 아이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올 만큼.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닭장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집안 부엌 한 켠에
하얗게 익혀진 두 마리의 닭이 있었다.
“저거… 혹시 내 닭이야…?”
아무도 그렇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내 아이들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 기억은 가장 끔찍한 폭력으로 남았다.
그날 이후
닭의 온전한 형태를 마주한 음식은
단 한 번도 편하게 먹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까루를 포기할 수 없었다.
까루는 다친 새가 아니었다.
그건 지켜주지 못한 생명들에 대한
나의 죄책감, 미안함, 부채의 눈동자였다.
살리고 싶었다.
비록 유해동물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기준에서 쓸모없는 존재일지라도,
그 존재 자체로 귀한 생명이니까.
‘공적으로 처리한다’는 말을
나는 예전에도 들었다.
한 유기견을 구조해 주인을 찾아주려 했던 그때,
보호소에서
“한 달간 기다려주겠다”던 말을 믿었지만
그 개는 다음 날 안락사되었다.
그 이후
나는 안다.
‘공적 처리’라는 말이 가진 비인간성.
그래서 이번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생명 하나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게’ 사라지지 않도록.
까루는 아직 살아 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다.
아직 다리에 힘이 없지만
나는 믿는다.
까루가 다시 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나도,
지켜주지 못한 기억으로 굳어 있던 마음이
이번엔 무언가를 끝까지 지켜낸 사람으로 바뀌기를.
그렇게
나도, 까루도
서로를 통해
다시 회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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