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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Dec 14. 2023

나는, 부품이 되기 싫다.

 - Unique 한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당신이 그러하듯이.

다른 요가 선생님 구했어요.
선생님 그 수업, 신경 안 쓰셔도 될 거 같아요.


이 말에 뭔가 마음이 상했다.

돈이 중요하지 않지만, 작년 이맘때쯤 펑크 난 자리를 급하게 메꾸러 들어와서 1년간 거의 기름값을 치자면 거의 남는 수업이 아닌 수업에 내 혼신의 힘을 다한 수업 자리였다.

다만,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은 인기도 많아지고, 나의 스타일대로 요가에 정말 재미를 붙인 회원들이 많아져서 계속 수업할 생각이 있었기에 서로 윈윈 win win 할 수 있는 대책으로, 다른 줌바 수업과 시간을 바꾸는 것을 제안했던 것인데, (줌바 수업도 그 시간을 원하고) 그 주민자치회 직원은 '자신이 이미 공고를 냈다는 이유로' , 주민들과 강사들의 편의 대신 다른 '요가 강사'를 채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적지 않게 화가 나면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무엇에 화가 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주민 자치회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강사들의 편의보다 자신의 업무 처리가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점. 그것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엄청 싸게, 주민들의 편의와 복지를 위해서 제공하는 수업임에도, 내부 절차와 일의 복잡성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점이 무척 화가 났다.


두 번째, 그 성의 없는 말본새였다. 내가 지원서를 낼 때는 '선생님, 내년엔 시간 안되신다면서요?'라고 물어서 내가 당황했고, 이번에는 대놓고 전화 와서 말한 것이었다. '다른 요가 선생님 구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세 번째, 그 말이 뭔가 나를 자극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다른 요가 선생'이라는 단어에 있었다. 평범한 단어였는데 왜 마음이 상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무언가 그들의 시간표를 채워 넣는 '부품' 정도로 느껴지는 묘한 느낌이 드는 언어선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의 시간표를 채우는 한 부품 정도로서의 요가 선생


내가 갖는 나의 요가 수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독특함에 대해서는 전혀 존중되지 않는 느낌의 , 그저 '1시간의 요가수업'. 그들의 시간표를 메꾸는 용도로 사용하는 '강사'라는 느낌이 짙게 묻어 나는 말이었다.


다른 요가 강사님 구했어요.


남에 의해 내 수업의 가치가 평가절하될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작년 나의 1년이 누군가에 의해 무시당하는 묘한 느낌에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내가 '부품' 정도로 느껴질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과 나는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이렇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신랑 회사에 어제 재계약이 무산된 두 아이의 가장이 있다.

업무적으로 능력도 있고, 일도 꽤 잘하지만 문제는 중간에 프로젝트로 들어와 계약기간이 남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 실무진에서 아무리 밀었어도 결국 인사팀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정규직 채용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한 가정의 가장인 40대 후반인 그는 아직 아내에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 회사에서 잘린 채 조용히 짐을 싣고 , 그 흔한 환송회도 없이 쓸쓸하게 회사를 떠났다 했다.


쿠팡이라도 뛰어야죠 뭐


국내 유명 3대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었는데, 그런 쓸쓸한 말을 남기고 다음 달 애들 학원비를 걱정하며 돌아서는 그를 보며 신랑은 마음이 너무 씁쓸하고 인사팀의 결정과 회사에 너무 실망했다 했다. 실무진인 자신이 그렇게 채용되기를 원하고 같이 일해야 한다고 어필했는데도 회사의 결정은 결국 No였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 직원을 한 명의 부품으로 보는 거지 뭐.
아직 미숙해도 싸고 쌩쌩한 부품을 쓰고 싶은 거야.
잘 돌아가지만 얼마 안 남은 비싼 거 말고,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젊은 부품을.


아이 셋을 키우느라 회사를 일찍 퇴사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나는, 이미 부품으로써의 삶이었던 과거를 청산한 경험이 있다. 그 부품의 일부일 때는 내가 그 대기업의 일부분인 양, 잘 나가는 세계적인 그룹이 나의 identity인 양 의기양양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그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빛나고 잘 돌아가는 한 때의 부품에 불과했음을.


아이 셋 엄마로 , 경력 단절녀로 살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은 나의 정체성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은 무엇인가.


난, 어딘가를 채워 넣는 부품으로써 살고 싶지 않다. 나의 색채와 색깔이 강한 독특한 개체이길 원한다. 그래서 지금의 수지맞지 않는 내 요가 수업에도 최선을 다한다.

나의 수업이 다른 수업들과 차별이 느껴질 수 있도록,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녹아 있도록.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한 나의 최선이 최고가 되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에게 파이팅.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가꾸어 나가고 그 향기와 색채가 자연스레 세상을 물들이도록.


우리들의 그림으로 만든 하나뿐인 텀블러.


#부품

#경력단절

#나의색채

#하나뿐인나

#하나뿐인요가수업

#나의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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