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새의숲 Dec 19. 2023

일상의 역설

아이 셋의 삶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특히 첫째가 아들인 경우, 그리고 아이들이 나이 차이가 좁을 경우, 


집안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하루종일 싸우는 소리에, 서로의 욕망들이 부딪히는 소리로, 나는 괴물같이 소리를 지르고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서 휴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요가를 하며 명상을 해야 하는 일상으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오늘도 분명, 청소를 어제 깨끗하게 해 놓았음에도 온데 어질러져 있는 집안이 신기하다. 

이것저것 선들에 딸려오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어온 이상한(?) 만들기 작품들에, 알 수 없는 부스러기들 같은 아이들에겐 소중한 물건들로 집안이 가득 차 있다. 



청소하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살짝 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들이 후에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경험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 오빠가 죽었을 때, 우리 엄마가 가장 크게 무너진 부분이 이런 살아생전에 '평소에 짜증 나게 하던' 그의 행동들을 기억하게 하는 사소한  물건들이었다. 엄청 의미 있고 , 소중했던 어떤 경험들이나 선물들보다도 더 깊게 마음에 박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짜증 나서 뭐라고 했던 그때, 그가 취했던 사소한 행동들 

정말 평소에 거슬렸던, 그때 그의 그 물건들 

내가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의 습관들. 


그런 것들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강력하게 나를 후벼 팠다. 

우리 엄마도 그런 듯 보였다. 

이상하게 오빠 살아생전에는 잔소리를 퍼붓던 그 '꼴 보기 싫었던' 그 모습들을 가장 그리워했다. 


일어났을 때 그 부스스한 모습. 

머리도 제대로 안 빗고 구질구질하게 꼬질꼬질하던 그 모습

말도 잘 안 듣고선 엄마가 뭐라 하면 살살 웃으며 비위 맞추려 애쓰던 그 '꼴 보기 싫던' 모습이 


가장 그리운 순간으로 남아 평생을 우리 엄마를 괴롭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화가 나 있는데, 오빠는 재밌어하면서 나를 낄낄 놀리던 그 모습에 나는 얼마나 화가 나고 얄미웠는지 모르는데, 정작 오빠가 사라지고 나니 그 얄미운 모습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한 번만 더 나를 약 올리고 놀려줬으면 하는 마음에 더 서럽게 울었고, 그 모습에 좀 더 다정하지 못했던 나를 질책하며 더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성가신 작품' 들을 선뜻 버리지는 못한다. 

후에 아이들이 커서 내 품을 떠날 때쯤, 이런 나를 가장 괴롭혔던 이 성가진 물건들이 가장 그리워질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말이다. 



#육아일기

#가장 그리운 것

#일상의 역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부품이 되기 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