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하는 삶. 현재에 머무는 삶.
프로이트의 통찰력과 용기,
칼 융의 직관,
아들러의 건전한 사회의식,
로저스의 가슴을 가진 이론가이자 상담가가 되어
에리히 프롬처럼 죽는 순간까지 성장하며 살고 싶습니다.
예전 심리상담 레지던트 자리에 지원할 때였다.
내 지원서 향후계획 란에 쓰여 있던 문구였다. 교수님이 이 대목에서 끈질기게 질문하셨다.
많은 심리학자들 중 에리히 프롬을 선택하신 것이 눈에 띄네요.
에리히 프롬같이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에리히 프롬은 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가이기도 했으나, 사회학자로 더 유명하다.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의 저술이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심리학, 그것도 상담학을 하겠다는 사람이 프로이트나 다른 유명한 심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로 더 유명하며 대중들은 그가 심리학자인지도 몰랐을 에리히 프롬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는 점이 눈에 뜨일만한 대목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의 사상도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며칠 전까지도 내담자를 정신분석 하다 죽었다.
그 당시 나는 단순히 죽기 며칠 전까지 정신분석을 하다 죽었다는 그의 삶에 부러움을 느꼈던 거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 있었던 그의 성장하는 삶을 닮고 싶었다. 막연한 감정이었다. 어딘가에 속해 월급을 위해 일하다가 퇴직 후 성장을 멈추는 나의 과거의 일과 삶이 싫었다. 끊임없이 죽기 직전까지 돈이 아닌 의미를 찾아 즐겁게 할 수 있으면서도 나의 정신적 성장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그것을 심리학 그리고 에리히 프롬의 사상과 삶에서 찾았던 것 같다.
그 교수님의 질문은 그 이후에도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심리학자들을 제치고 사상가에 가까운 에리히 프롬이 내 삶의 모델로 선택되었다. 나는 에리히 프롬의 어떤 면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일까?
실존주의 색채를 띄고 계신 교수님이었다. 그래서 그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붙들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게 답을 구했다. 그리고 물론 그때그때 답은 달라졌지만, 지금의 에리히 프롬같이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를 선택하는 존재론적인 삶의 양식'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고정되어 있는 나의 습성 또는 특질들을 거부하고, 내가 선택하는 것으로 내가 재구성된다는 것. 어떠어떠하다는 형용사로 설명되는 '나'가 아니라 매 순간 경계에 서 있는 '선택하는 나'로 살아가길 원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한 에리히 프롬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매 순간 경계에 서 있는 '선택하는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의 모델이다.
#에리히프롬
#소유냐 존재냐
#이웃님글을읽다
#갑자기생각난
#나의롤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