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마음이 아니라, 몸 안에 있다
감정은 머리에 있지 않았다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마음의 산물’로 본다.
하지만 요가는 감정을 ‘물질적인 현상’,
즉 몸에 쌓이는 에너지로 바라본다.
이건 내게 아주 낯선 관점이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요가 수련을 거듭하면서,
나는 정말 내 몸이 감정을 담고 있다는 걸 체험하게 됐다.
예를 들어, 유연성 중심의 수업을 한 날에는
몸이 쭉쭉 펴지고 이완되는 만큼,
내 마음도 덩달아 느슨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날은 웬일로 아이에게 더 부드럽게 말이 나가고,
남편의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냥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날.
반대로 강한 파워 요가나 근력 위주의 수련을 한 날엔,
마치 내 안에 중심축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땀이 줄줄 흐르고, 근육이 후들거릴 만큼 버텨낸 뒤엔
이상하게도 어떤 말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나’가 내 안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단단함은 겉으로 보이는 근육이 아니라,
감정과 사고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안정감이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 쌓이자,
전에는 잘 느껴지지 않던 감정 하나가
서서히 내 안에서 자라났다.
바로, ‘감사’였다.
전에는 너무 당연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수련 후엔 하나하나 경이롭게 다가왔다.
비가 오면 빗소리가 운치 있게 들리고,
햇살이 비추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새소리 하나에도, 고요한 저녁 바람에도
감사와 생의 감각이 따라왔다.
억지로 감사하려고 노력한 건 아니다.
몸을 움직이고, 감각에 몰입하자
감정은 저절로 따라왔다.
요가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이제는 과거를 흘려보내라.”
“너의 이야기를 놓아주어라.”
“몸으로 지금을 살아내라.”
심리학이 내게 ‘이해’를 주었다면,
요가는 나에게 ‘살아 있음’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머리에서 벗어나,
비로소 몸으로 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심리학은 나에게 ‘이유’를 찾아주었다.
내가 왜 아팠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끝없이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긴장했고, 여전히 불안했고,
내 감정은 머리로는 알겠지만, 실제로 다스리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요가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안내했다.
내 과거나 미래의 문제들에서 나를 꺼내
내 몸과 현재 상태에 집중하게 했다.
그건 ‘이해’보다 실천이었고,
‘분석’보다는 온전한 수용이었다.
요가를 하며 나는 처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는 그대로 살아도 된다고
허용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 강해질 필요가 없었다.
무언가를 견뎌내고 극복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나를 회복하고
여유롭게 바라볼 힘만 되찾으면 되는 거였다.
다만 내가 찾지 못했던 것일 뿐,
필요한 것은 모두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고치려는 마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겠다는 용기.
마음이나 생각뿐 아니라,
나의 현재 몸까지도.
내가 해야 하는 단 한가지는,
일상의 루틴처럼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올라가
나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는 순간,
변화는 그제야 조용히 시작되었다.
예쁜 멋진 몸매를 만들기 위한 요가가 아닌,
나를 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 아닌,
나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으로서의 요가는
나를 서서히 변화시켜 나갔다.
생각해보면,
내 몸은 늘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오늘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생각을 억누르고 있었는지.
나는 요가를 하며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그것들을
‘말’ 없이 알아차리는 법을 서서히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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