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여행지 이스탄불에서 만났던 아저씨
나는 여행 준비를 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미는 박치기 형이다. 원래도 그렇지만, 그 때 유럽으로 도망치듯 떠났을 때는 더더더 정말 계획이 없었다. 핸드폰도 가져가지 않아서 비상시에 누군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4개월 간의 여행 또한 중간 성수기에 축제가 낀 한 두군데 숙소를 제외하고는 예약도 안하고 갔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무조건 일단 떠났다. 옷은 거기서 사입었고 필요한 게 있으면 현지에서 조달했다. 그곳에 대한 정보는 유럽 지도 한 장, 론리플래닛 책 한권. 그게 다였다.
그런 여행의 장점은 , 진짜 여행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들을 그 세계 사람들이 메꾸어주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만난다. 다른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소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 사회, 그 안의 평범한 사람들과 접촉했던 그런 경험은 관광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세계와의 특별한 접촉'이 되어 나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물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어 길바닥에서 자야할 뻔한 적도 많고, 그 동네의 폭력적인 사건을 목격하기도 하고, 여자 혼자인 걸 노리고 다가오는 사람과 앉아서 지겹게 대화해야 할 때도 있고, 예상과는 다르게 노선을 갑작스레 변경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돌발상황들까지도 모두가 내겐 '배움'이었다.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어떤 요소들로서 그런 난관이 자리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난관들은 사람들의 극적인 도움으로, 때로는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되었고 심지어 더 놀라운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었다.
내 액면 나이 서른 살. 그러나 마음 나이는 서너 살 정도밖에 되는 그 여자는 우여곡절 끝에 조그만 배낭 하나 달랑 들고 제일 처음 이스탄불에 떨어졌더랬다.
왜 거기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본능적으로 가장 이국적인 곳을 찾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내게 가장 낯선 곳으로.
그 나이 먹도록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는 그 이국적인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도 그 때 보았던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가 경쟁하듯 나란히 놓인 그 아름답고 괴이해 보였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한시간마다 울려퍼지는 자미에서의 종소리와 기도 소리까지도.
그리고 또 한 명.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탔던 그 버스안에서 기적처럼 만나 영어로 내게 여행을 가이드해주는 듯했던 그 아저씨의 음성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터키 동부도 가고 싶지만 거기는 '특별히 위험하다' 해서 망설여진다 했을 때 그 분은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다.
그런 곳은 없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그렇게 특별히 위험하거나 좋은 곳은 없어. 단지 사람이 많은 도시엔 가능성도 많아지는 것 뿐. 좋은 일도 사람들도 나쁜 일이나 사람들에 비례해서 많을 거야. 나쁜 것만 많은 게 아니고.
언제나 너 자신을 믿어. 그러면 네가 가려는 곳에 신이 함께할 것이니. 분명 괜찮을거야. 가고 싶다면 가봐. 네 결정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
30년간 나는 '너는 너무 어려서 너 자신을 믿으면 안된다. 우리의 가르침을 믿어라' 는 부모 가르침과 교육을 받고 자랐었다. 그토록 이국적인 곳의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는 '너를 믿으라. 네 결정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러면 신도 도울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결국 이 말을 듣기 위해 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스치는 첫날이었다.
굿 럭. 담백한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려 일터로 가는 그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키는대로 어디든 가보리라 결심했다. 어차피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고, 게다가 신이 함께한다자나.
#너자신을믿어
#네결정엔이유가있을테니
#그렇게나를믿어주기시작했지
#이스탄불버스에서옆자리앉았던아저씨
#유럽여행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