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만든 전쟁

-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진영을 나눠 싸울까

by 실루엣


혹시 의처증, 의부증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자기 부인이나 남편이

누군가와 바람피고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병이죠.

이게 병으로 분류된 이유는,

실제 '현실' 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느낌'이 들어

계속 의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즉, 사실이 아닌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병이죠.

그 이면에는 현실을 왜곡하는 망상, 즉 개인 정신세계에서의 가짜 사실이 존재합니다.


이런 편집증의 심리 구조는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감정이 먼저 작동하고,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그 적이 실재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믿어버리는 방식.


이 구조가 사회 전체로 퍼지면,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 감정이 만든 프레임 속에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정치의 양극단, 즉 극우와 극좌입니다.


제가 본 극우는 이렇게 말하네요.


“좌파가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북한이 언론을 장악했다.”

“모든 건 간첩의 짓이다.”


이 주장은 현실의 맥락이나 근거보다는

‘위협당하고 있다’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듯 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보다,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한 힘을 가집니다.

그래서 모든 현상은

‘좌익의 침투’라는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해석되고,

‘나를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면의 불안감을 통제하려는 편집증적 구조에 가깝습니다.


한국전쟁을 겪어 PTSD가 있거나, 북한에 크게 데인 사람들,

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이어받아 그 PTSD와 사고방식을 물려받은 이들,

그렇지 않더라도 피해의식, 불안과 위협의 내면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

이 구조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20대 남성들이 극우에 빠지는 신기한 현상도

이것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어 보이네요..


그렇다면 극좌는 다를까요?


“재벌과 검찰, 언론은 모두 카르텔이다.”

“자본에 장악된 기득권이 우리 삶을 조종한다.”

“우리는 억압당하고 있고, 싸우지 않으면 끝장이다.”


이 역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모든 현상을 하나의 도식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극우랑 비슷하죠.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 우리 나라 모든 기득권과 힘있는 권력층인 겁니다.

사회의 복잡성은 사라지고,

모든 문제는 기득권의 탄압과 조작으로 수렴됩니다.

여기에도 분노와 박탈감,

그리고 내가 겪는 고통은 반드시 외부 누군가의 악의 때문이라는,

감정을 외부로 던지는 투사가 작동하네요.


결국,

극우와 극좌는 서로를 혐오하지만,

심리 구조는 닮아 있어요.

방향은 정반대지만,

감정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그 감정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며,

나머지는 ‘가짜 뉴스’ 혹은 ‘기득권 프레임’으로 폐기해버리는 점에서

양 극단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핵심에는,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는 심리 작동 방식,

감정이 사실을 결정해버리는 인지 체계.

즉 편집증적 투사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해요.


이렇게 감정이 진실을 덮고,

사회가 서로를 ‘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대화 대신 증오와 혐오를 선택하게 되죠.


하지만 감정을 ‘진실’로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어 더 멀어집니다.


진실은 감정보다 느리고,

감정보다 복잡하며,

감정보다 조용하게 움직이니까요..


그래서

이 감정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사실을 확인하는 태도이고,

불편한 말도 들어보는 용기인 거 같습니다.



#편집증

#극우세력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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