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옷을 입은 소,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들

-복종의 심리학과 민주주의의 균열

by 실루엣

비단옷을 입은 소,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대인 집단 학살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뿔 달린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깔끔한 양복, 조용한 성격, 철저한 관리자형 인간. 그에게 있어 학살은 분노가 아니라 효율적 업무였습니다.

전범 재판장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독일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해야만 했다.”

그는 악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체계를 따랐고, 명령에 복종했을 뿐입니다.


복종의 실험들 –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는 구조


이 충격적인 사실 앞에,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평범한 사람이 명령 하나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을까?"

그가 설계한 실험은 이렇습니다. 참가자는 ‘교사’ 역할, 배우는 ‘학생’ 역할.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지시. 충격은 점점 세지고, 학생은 고통을 호소하다 결국 무반응.

그때마다 실험자는 말합니다.


“계속하세요.”
“당신에겐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참가자의 65%가 최고치인 450V까지 충격을 가합니다. 단지,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의 단호한 말투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후에도 많은 실험들이 복종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아쉬의 동조 실험’에서는 75%가 집단 판단에 동조했고,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는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이 죄수를 학대하기 시작하며,

‘파란 눈 실험’에서는 아이들조차 지시에 따라 친구를 차별하게 됩니다.


물론, 이 실험들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현대에는 맹목적인 복종이라기 보다는 합의된 정당성을 따르는 과정으로 봅니다. 하지만 결론은 분명합니다. 개인일때보다 체계나 구조속에서는 '권위'의 명령이나 지시에 반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군대, 그리고 민주주의의 아이러니


가장 체계적 복종이 일어나는 곳이 군대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된 유일한 비민주적 조직이죠.

명령은 생명이고, 복종은 미덕이며, 판단은 상급자의 몫. 판단은 미뤄지고, 책임은 위로 향하고, 개인은 기능으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그런 조직이 국민의 안보가 아닌, 권력자의 안정을 위해 움직일 때, 사태는 심각해집니다.정치 반대파는 '국민'이 아니라 '적'으로 호명되고, 그들을 쓸어버리는 계획을 짜는 일이 '행정적 절차'처럼 진행됩니다. 그것이 바로 계엄 문건의 그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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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옷을 입은 소 – 위선과 조작의 은유


“소에게 비단옷을 입히는 건,

소를 따뜻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그 소를 팔아넘길 준비를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오늘날 권력의 작동 방식을 너무도 정확하게 비유합니다. 겉으로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이 반짝이고, 그 속에서는 누군가가 거래되고, 타인이 희생됩니다.


양두구육, 겉과 속이 다른 그 구조.

우리는 이미 익숙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놀랍니다. 또 속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속아 넘어간 건 아니었습니다


비단이 눈부실 때도, 그 안의 목적을 간파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요.

심리학 실험에서 동좋고 명령에 복종했던 65%-75%가 아닌 사람들에게 집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종 대신 질문했던 25%,

동조 대신 고개를 갸웃했던 35%


그들은 다수는 아니었지만, 권력의 윤곽을 드러내는 균열이었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그들은 미친 사람처럼, 눈치 없는 자, 피곤한 사람, 혹은 배신자로 취급되었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들을 경계선 삼아 움직였습니다.


질문하는 사람들 – 희망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비단옷을 입은 소를 보고 “와, 멋지다”고 말하는 다수가 있는 반면,


“왜 옷을 입혔지?”,

“저 소는 누구를 위한 걸까?”

라고 물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이 있었기에, 다음 소는 팔려가지 않을 수 있었고, 다음 세대는 눈을 뜰 수 있었으며, 거짓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희망은 바로 그 ‘왜?’에서 시작됩니다.

다수가 따라야 한다고 움직일 때, 조용히 고개를 갸웃하는 한 사람.

모두가 그건 원래 그런거라며 안심할 때, 속으로 불편함을 품는 이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진실을 끌어올리는 첫 삽은 언제나 그들의 질문입니다.


오늘, 그 끈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


지금, 계엄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침묵하고, 빠져나가고, 모른 체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침묵하는 건 아닙니다.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

누구를 위한 계획이었는지 묻는 이들이.

그들은 빛나지 않지만, 거짓이 날뛰지 못하게 균열을 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복종하는 소수의 용기”만이,
권력을 제어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이는 우리의 개개인의 삶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건 원래 그래' 또는 '그래야만 하는 거야' '넌 왜이렇게 특이하고 별나니?' 라는 권위 또는 당위들.

그것에 의문을 품어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희망은 언제나, 비단의 반짝임에 눈이 멀지 않은, 질문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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