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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나의 진짜 책임과 진정한 어른에 관하여

– 감정의 충성심이 아닌, 선택의 책임을 묻는다

by 파랑새의숲


“어머니와 아내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건가요?”


한때 이런 질문, 자주 들었죠.
TV 예능에서도, 술자리 농담처럼도,

연애 초기에 장난처럼 오가기도 했어요.

이 질문만큼 남성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유치한 사랑 장난 같아서 듣는 순간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아내에 대한 사랑은 다른데,

왜 그걸 비교하려 하지?

그리고 마지못해 이런 대답을 합니다.
“둘 다 구해야지.”
“그걸 어떻게 골라.”
“말이 안 되는 상황이잖아.”


그런데 이 질문은 '사랑의 크기' 에 대해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선택과 책임, 그리고 진정한 어른에 대해 묻고 있어요.

심지어 정신과 레지던트를 시작할 때, 통과 의례처럼 받는 질문이라고 한 유명 정신과 의사가 공개하기도 했었죠.


많은 남자들이 아내를 먼저 구한다고 하면 “불효자”가 되는 것 같고,
어머니를 먼저 구한다고 하면 “아내를 외면한 남편”이 되는 기분이 든다고 했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거나,
“그냥 웃자”며 넘어가죠.
그 회피 속에는 아주 단단한 무의식이 숨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아직도 누군가의 '아들'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내 선택에 대한 나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한다는 것.


아내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관계이고,
어머니는 태어나며 나에게 주어진 관계입니다.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죠.


우리 시대의 결혼은 기존 가족의 연장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단위, 새로운 삶의 구조가 생기는 거예요.
그 안에서 남편은, 새롭게 관계를 배워야 하는 사람입니다.
“아들의 연장선”이 아니라,
정신적 탯줄을 끊고 한 명의 성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의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감정은 여전히 어머니 쪽에 연결돼 있고,
책임은 아내에게 가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아무 편도 들지 않았어.”
“엄마가 원래 좀 그런 분이셔.”
“나는 중간이라 어쩔 수 없었어.”

익숙한 말들이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말들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과 선택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회피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습니다.
그 물에 빠진다는 비유를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요.


“어머니와 아내가 동시에 감정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면,
당신은 누구의 고통에 먼저 응답할 건가요?”



물에 빠진다는 건 꼭 물리적인 위기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정서적인 고립, 외면, 침묵 속에서 천천히 무너지는 경험이기도 하죠.

그 순간,
당신이 누구의 감정에 먼저 다가설 것인가는
“사랑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책임의 방향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걸 문제 삼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아내를 외롭게 방치하면서도
그 이유를 “효도”나 “중립”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면,
그건 결국
선택하지 않은 과거에 충성하느라,
내가 선택한 현재를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면받는 쪽엔

당신을 선택을 믿고 당신 곁에 와서 마음 고생하는,

당신의 여자인 '아내'가 있지요.


진짜 어른은
사랑과 죄책감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감정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한 관계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여자의 ‘진짜 남편’이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아내의 곁에 서는 사람입니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선택의 결과이자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죄책감이 어머니 쪽으로 먼저 향한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죄책감이 실제로 향해야 할 곳은
‘내 여자로 내가 선택한 아내’ 쪽일지도 모르니까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여자였고,
그 두 사람이 서로 선택한 관계의 결과로 내가 태어났습니다.
좋았든, 나빴든,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닌 그들의 삶입니다.
나는 그 관계의 결과이지, 책임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

내 죄책감이 향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의 여자’가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나의 여자’여야 합니다.

그 순간부터

삐뚤어졌던 관계들은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음 화 예고

“어쩌다가 나는 엄마의 감정과 인생을 책임지려 했을까”

아들로, 딸로, 우리는 때때로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죄책감, 정말 ‘사랑’일까요? 정말 나의 ‘의무’일까요?

우리는 정말, ‘자식된 도리’라는 이름 아래
엄마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요?

혹시,

그 죄책감조차도 사회가 만든 구조 속에서
우리가 조용히 ‘사용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다음 화에서는
우리가 죄책감을 ‘미덕’처럼 착각하게 된 심리적 구조와,
그 감정이 우리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을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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