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딸 가진 엄마가 최고?

–영화 <블랙스완> 에서 보는 자식 ‘수단화’의 심리 구조

by 실루엣

요즘은 딸 가진 엄마가 최고 라는 말을 공공연히 합니다.

저는 그 말이 무척 불편한데, 저만 그런가요?


혹시 영화 <블랙 스완>, 그 명작 보셨나요?

<레옹>의 인상적인 아역으로 유명했던 나탈리 포트만이 열연하여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죠.

그 영화에서 니나는 ‘완벽한 딸’과 ‘완벽한 무용수’가 되기를 강요받으며,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을 점점 잃어갑니다.

결국, 그녀는 점점 분열되어

무대 위에서 자신을 찢어버리는 환상과 마주하게 되며 비극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의 대리자’로 삼을 때

아이 안에서 어떤 정서적 파열이 일어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요즘 '딸 선호' 현상, 그 안에 숨은 구조


그런데, 이 영화의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낯설지 않았죠.

유교문화가 깊게 뿌리박은 우리 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대놓고 <남아선호 사상> 이라는 게 존재했으니까요.

요즘은 반대로 “딸 가진 엄마가 최고”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아들은 떠나지만, 딸은 결혼 후에도 살뜰하게 곁에 남아준다.”

“딸은 말도 잘 통하고, 감정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아.”

"엄마, 부모 챙기는 건 꼭 딸이더라."

"요즘 딸은 꼭 있어야 돼"


이런 표현들은 겉보기에는 따뜻한 애정처럼 들리지만,

어쩐지 딸을 감정적 파트너나 보상처럼 기대하는 시선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그 시선은 과거 ‘아들이 가문을 잇고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남아선호의 틀과 얼마나 다른 걸까요?

대상만 바뀌었을 뿐, 결국은 아이를 어떤 역할과 기대의 틀 안에 가두는 구조,

자녀를 수단화하는 방식은 어쩌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 집요하고 은밀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숨어드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


-심리학이 말하는 '자기대상'과 정체성의 억압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은 이런 관계를 ‘자기대상(selfobject)’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보기보다,

자기 자존감을 채워주는 존재로 삼는 것입니다.

마치 딸이 내 감정의 공허함을 달래주고,

내 외로움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요.


심리학자 마거릿 말러는 이를 ‘분리-개별화’ 실패라고도 보았습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정서적, 심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하지만

감정적으로 얽힌 채 독립성을 허용받지 못하면,

아이도 결국 자기 자신을 놓치게 됩니다.


이처럼 딸에게 투사된 부모의 욕망은

겉으로는 사랑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체성의 억압이자 정서적 침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아이를 '자아 없는 공허한 상태' 로 몰아가는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의도는 없어도 구조는 반복된다


물론, 모든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를 조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투사와 동일시의 구조는,

결국 아이를 통해 부모가 위로받고,

자신의 삶과 투자한 모든 것을 보상받으려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가정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부 권력층 역시,

타인을 ‘내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데 익숙합니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태도.

가정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아이에게 드러나는 감정적 수단화가,

사회에서는 권력과 기득권의 수단화로 확장되어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도 그럴 듯이,

자신이 수단화되어 키워진 아이들은

향후 타인을 수단화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행합니다.

자신들이 부모들로부터 '몸'으로 습득해온 과정이니까요.


-우리는 왜 아이를 낳고, 키우는가?


우리는 왜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울까요?


“우리 사랑의 결실로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서.”

“남들 다 낳으니까 자연스럽게 낳게 되더라.”

“외로우니까, 나중에 늙어서 함께할 가족이 필요하니까.”

“부모가 되면 더 성숙해지고 인생이 완성되는 느낌이 들어서.”

“우리 가족이 아이를 원해서, 특히 부모님이 손주를 보고 싶어 하셔서.”

“아이 키우는 게 제일 큰 보람이라고 들었으니까.”

“아이를 통해 내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서.”


등등등, 서로 다른 이유로 우리는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들 속에는 겉으론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아이를 자기 감정의 구원자, 가족의 연결 고리,

또는 성공의 대리자로 수단화하는 심리 구조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구조를 인식하고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사랑과 성숙한 부모됨의 첫걸음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아이들이라는 존재’를 통해,
아이러니하게 우리 자신의 내면 세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과거의 기억, 잊고 있었던 상처,
그리고 돌보지 못한 내면아이들이
가감 없이 튀어나오는 무대.
그게 바로 ‘육아’의 현장입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희생’만은 아닙니다.

분명,
부모들도 받는 것이 많고,
배우는 것이 있고,
한 인간으로 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키우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운다’는 단선적인 의식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게 바라보면,
아이들은 오히려 우리를 성장시키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자신의 상처를
아이로 치유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주되, 보상은 바라지 않는 진실한 존재의 관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인생에 걸쳐
서로의 존재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를 통해 나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사람과 사람’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길.
그것이 진정한 부모됨이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관계의 출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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