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얼라이드> : 전쟁보다 치명적인 붕괴

새드엔딩, 동시에 해피엔딩

by 실루엣


영화 <얼라이드> 보셨나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첩보물이지만, 단순한 스파이 서사가 아닌 독특한 구조와 감성을 가지고 있죠. 자신의 아내를 적국의 스파이로 의심해야 하는 극한의 감정 상황을 내밀하게 표현했는데, 저는 진정한 사랑외에도 심리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전쟁보다 치명적인 붕괴'라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히더라구요.


common.jpg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인간이 지탱하던 세계, 내면의 안전기지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깊이 섬세한 감정묘사로 보여줍니다.


특이한 건, 거대한 두 이념이 충돌하는 전쟁이라는 배경에서 일어난 ,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인한 가정 파괴의 위기라는 설정 자체가 왠지 감정선이 치정극과 닮아있다는 점이었어요.



치정극은 심리적으로 절대 가볍지 않아요


인간 역사상 범죄들이나 험악한 뉴스들 보면, 돈과 성문제, 그리고 치정극으로 결부되는데요,

이는 절대 찌질한 문제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인 거 같습니다.


최종 드러나는 매개가 돈이나 성, 치정일 뿐,

대체로 심리학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착취'와 '안전기지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남에 대한 착취 또는 탐욕은 돈이나 성문제로 드러나구요

안전기지 문제는 성 또는 치정극으로 드러나죠. 뭐 그마저도 서로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구요.


사람들은 흔히 치정극이라고 하면 뭔가 유치하다고 여기곤 하죠.

아이들끼리의 감정 싸움처럼, 사소하고 하찮은 갈등처럼 치부되잖아요.

반면 이념과 이념 대결이면 뭔가 숭고하게 큰 가치인 거 같아 보이고요.


이 영화에서도, 전쟁과 이념이라는 거대한 가치가 주류이던 시기에,

그 큰 시대적 이념을 거스르고 한낱 사랑에 목숨 건 남자의 이야기처럼 언뜻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 사랑이 더 애절해 보이는 효과가 있구요.


하지만, 사실 한 인간에게는 비슷한 무게를 지닌 가치일지 모릅니다.

치정극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본성을 드러냅니다.

누군가가 나를 떠난다거나, 나를 배반했다고 느끼는 순간 발동되는 감정.

그건 단순한 질투나 소유욕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던 ‘안전기지(secure base)’의 박탈 경험이죠.


안전기지가 꼭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들의 최초의 안전기지는 '어머니' 입니다. 어머니의 자궁, 거기로부터 출발해서 가정, 사회로 확장함에 있어서 우리는 안전기지를 보다 여러 군데로 확장 분산시키는 안전한 생존 전략을 씁니다.


그래서 우리 내면의 안전기지는 우정, 존경하는 스승이나 선배, 가장 좋아하는 취미, 포기할 수 없는 신념, 믿고 따르는 가치나 종교적 세계관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요.

그 안전기지가 있을 때 우리는 혼돈의 세상 속에서도 안정감을 회복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기에,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 안전기지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정신적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없을 경우 인간의 정신에 여러가지 병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울, 불안, 중독, 자살 등 극단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 안전기지가 취약하거나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심리적으로 가장 치료가 힘든 경우들도, 이 최초의 안전기지가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학대하는 방향으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을 때 나타납니다. '애착 단계에서 심한 손상이 있었을 경우에 향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서 '최초 3년의 육아'를 그리 중요하다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향후 아이가 만들어나갈 '안전기지'의 롤 모델이 되는 셈이니까요.


그러나, 평소 심리적으로 사람들도 그 안전기지가 무너질 때 심하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배신, 가치관의 붕괴, 더 이상 힘이 되지 않는 취미와 관계의 상실은

단순한 아픔을 넘어 ‘내가 살아가던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치정극도, 정치적 배신도, 심지어 신념의 붕괴도 모두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안전기지의 박탈이라는 구조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 또는 가치, 크게 나아가서는 어떤 신념은 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이 되는데요.

그 기둥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순간, 단순한 사랑의 상실을 넘어 내 세계 전체가 붕괴되는 고통을 겪게 되지요.


얼마 전, 25년 결혼생활을 하던 중 남편이 자신 몰래 외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삶이 붕괴되었던 여성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자신이 젊음을 바쳐 헌신했던 '가정'이라는 세계가 완전히 깨져버린 상태에서 아직도 힘든 삶을 살고 있어요.

몇십년 전에도, 굉장히 강한 마음을 가진 거 같던 남자가 믿었던 여자친구의 배신에 잠도 못자고 밥도 안먹고 시들시들 말라가는 걸 봤었죠.


평생 자신이 충성했던 회사에게 정리해고를 당한 중년 남성도,

믿었던 어린 시절 친구에게 배신당해 전재산을 잃은 사람들도,

그 표정들은 비슷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브래드피트의 연기가 너무 실감났습니다.

영화에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만나 자신의 유일한 안전기지라 생각했던 아내에 대한 불신이 싹트면서

점점 피폐해져가죠.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기도 하구요.


무언가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할 때,

믿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로 드러날 때,

그 혼돈과 절망이 너무 잘 전달되더라구요.


외부에 존재하는 적들을 없앨때는 그렇게 단호하던 사람이,

자신의 안전기지가 흔들릴 때는, 가장 크게 무너집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새드엔딩인 동시에 해피엔딩이네요.

끝까지 서로의 안전기지를 파괴해버리지 않고, 지키는 아름다운 결말이었거든요.


Je T'aime.


이 한마디가, 마음에 짠하게 잔상이 오래 남는군요.

추천합니다.


common-1.jpg


#영화얼라이드

#안전기지

#베이스캠프

#심리학


매거진의 이전글<데몬 헌터스>, 새로운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