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하며 얻은 세 가지 선물 : 겸손, 이타심, 지금 이 순간
나는 이제까지 나를 잘 안다고 믿었다.
아파도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고,
조급히 달리면 결국 해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요가는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잘한다고 믿었던 것들은 사실 ‘익숙했을 뿐’이었음을,
타인을 배려한다 여겼던 태도는 내 감정을 억누른 결과였음을.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아니라,
단 한 권만 읽은 사람이다.”
요가를 만나며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요가를 그저 ‘유연한 사람들이 다리를 찢고 구부리는 운동’으로만 여겨왔다.
마치 책 한 권만 읽고 세상을 아는 듯 단정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련은 달랐다.
쉬워보이는 차투랑가 하나조차 버거운 내 몸,
우르드바 다누라사나나, 시르사사나 같은 동작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요가의 이름 하나하나가 산스크리트어였다는 사실,
수많은 아사나가 이미 고대 경전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진심으로 겸손해졌다.
‘내가 제대로 아는 건… 정말 많지 않구나.’
겸손은 곧 이타심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를 따라 해본 적이 있다.
화면 속 포즈들은 대부분 익숙했고,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따라 하자, 숨은 금세 가빠지고 팔은 후들거렸으며
익숙했던 동작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하나의 포즈를 따로 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들이 흐름 속에서 연결되어 반복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그 이후, 나는 ‘해본 적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것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몸과 나의 몸이 다르듯,
그의 삶과 나의 삶도 다르다는 것을.
요가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진짜 이타심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반복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가에서는 매번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날의 내 몸과 감정은 매일 매 순간 달랐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일,
반복 속에서 변화를 알아채는 일이
어느새 내게는 ‘움직이는 명상’이 되었다.
가장 깊은 몰입은 가만히 앉아 있는 명상보다,
차투랑가와 다운독 사이, 균형과 흔들림 사이에서 찾아왔다.
그 순간만큼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할 수 있었다.
요가는 내 몸을 회복시키는 것에서 시작해,
마음을 정돈하고, 시선을 바꾸고, 삶의 흐름까지 달라지게 했다.
때때로 사람들은 묻는다.
“요가는 스트레칭 아니에요?”
“요가 하신다니, 유연하시겠어요.”
예전 같으면 그 생각을 정정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겠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마저 흘려보내는 것이 요가적인 태도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매트 위에 선다.
오늘의 몸으로, 오늘의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마다,
요가는 나를 다시— 내 삶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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