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MBA에서 프렌치 코스가 나와?"
2주의 여행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3주 동안 프랑스어 코스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경영학 석사 과정을 하러 가는데 왜 언어가 필요하지?라고 많은 사람들이 물어볼 수 있다. 이는 INSEAD 과정에 포함이 되어 있는 제 3 외국어 수료를 위해서다. INSEAD의 졸업 조건 중에서는 제 3 외국어 Basic level 수료해야 한다. 만약 정해진 기관에서 운영하는 시험을 사전에 통과한 경우, 관련 certificate만 보여주면 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와 같이 언어 시험을 졸업 기준으로 가지고 있는 경영학 석사과정은 INSEAD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은 (i.e., 미국인, 영국인) 입학 시 많이 어려움을 갖고 있다며 친구들끼리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필자의 경우, 모국어는 한국어, 제 2 외국어는 영어, 그리고 제 3 외국어는 대학시절 배웠던 일본어를 해도 되었지만 기왕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는 거 프랑스어를 배우면 좋겠다 싶어서 수강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MBA 과정이 시작하면 취업과 학업 때문에 많이 바쁘게 되고, 바쁘지 않다면 친구들과 여행 가기에 학교 측에서도 언어는 입학 전에 해결하고 오기를 장려한다. 그 결과 프랑스와 싱가포르 캠퍼스에서 MBA 정식 과정 시작 전 이와 같은 랭귀지 코스를 열어준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만 진행을 하고 있다).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이기도 하고 MBA 과정 시작 전 학교 친구들을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수강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장소는 한국과 그나마 가까운 싱가포르 캠퍼스! 여기서 지내보면서 추후 싱가포르로 교환해서 오는 게 좋을지 결정하고자 했다.
이 과정을 듣기 전 여기서 배우면 100% 시험을 통과한다는 말을 듣고 상당히 편한 마음으로 왔다. 아무리 그래도 기초과정이니까 그렇게 쉽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경기도 오산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학교에 머물면서 프랑스어만 배웠다. 주말에 여행도 다니고 학급 친구들과 함께 매일 놀 줄 알았는데, 숙제하거나 시험 준비한다고 우리 모두 긴장된 상태로 있었던 것 같다 (필자는 도깨비 보느라 바빴다). 하지만 이는 캠퍼스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 이 과정을 들은 친구들은 놀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니 같이 공부하는 그룹과 어느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냐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프랑스어를 처음 배워보지만 3주 동안 정말 많이 배운 것 같다. 마지막 시험에 있었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한국 기업 문화를 소개하며 수직적인 문화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물론 다 잊어먹었다). 이때가 프랑스에 가기 약 1달 전이었으니 이제 프랑스에서 모든 사람들과 프랑스어를 해야겠다!라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실체는 전혀 달랐다. 프랑스에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종업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왜 이런 식의 프랑스어를 하지? 차라리 영어로 말해 라는 투로 답변을 해줘서 충격을 먹고 프랑스를 접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하지만 아무래도 간단한 회화는 단어들을 통해서 알아듣고, 프랑스에서 살 때 도움을 주었던 것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학교를 다니면서 제 3 외국어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것조차 굉장히 좋았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선생님이 알려주는 문법을 배운 후 퀴즈나 짝을 이뤄서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무조건 잘한다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고 모두 다 같이 모르는 언어를 처음 배우다 보니까 실수해도 서로 이해해주면서 공부를 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짧은 시간에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어의 경우 단어에 성별을 붙이거나 이해하기에는 복잡한 문법들이 있어서 까다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다 같이 열심히 해서 모두 시험을 통과했고 학교가 시작하기 전에 또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에서 학교를 다니면 어떨까? 취업을 하면 어떨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만큼 필자에게는 매력적인 도시/국가라고 다가왔다. 그 덕분에 6개월은 프랑스에서 그리고 4개월은 싱가포르에서 수업을 듣도록 결정을 했고, 지금와서 돌이켜봐도 너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자 그럼 싱가포르 캠퍼스에서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1. 싱가포르 캠퍼스는 그렇게 크지 않다.
프랑스 캠퍼스에 나중에 가서 알게 되었지만 싱가포르 캠퍼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통계상으로 학교를 시작할 때 약 60% 정도의 학생들이 프랑스 캠퍼스에서 시작을 하고, 나머지 40% 정도가 싱가포르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강의장이나 그룹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은 충분히 준비되어있다. 하지만 크기로 비교해보면 프랑스 캠퍼스 대비하여 많이 작은 것은 사실이다.
재밌는 점은 싱가포르 내에서도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이거나 MBA에 대해서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가 아닌 이상은 생각보다 INSEAD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 번은 치과를 가게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나보고 유학생이냐고 물었고, 어디서 공부하냐고 물어보시기에 INSEAD라고 하니 무슨 회사에서 일하냐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브랜드의 대중적 인지도는 낮다. 그 결과 택시를 타서 설명하기가 어려웠던 기억도 있다. 물론 싱가포르에 위치한 회사의 중역들이나 채용 담당자 중 INSEAD 출신들이 많다 보니까 아시아권에서 취업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파이낸셜 타임즈 1등과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한국 교수님이 공동 저자로 있는) 이론으로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는 학교는 확실하다.
2. 먹을게 많다.
한국은 워낙 많기 때문에 할 말이 없지만 외국에 나와있던 상황에서 싱가포르 캠퍼스는 너무 매력적이다. 학교 카페테리아의 경우 포시즌스 호텔에서 담당을 하고 있다. 아 그렇다고 해서 호텔만큼의 음식은 아니지만 깔끔한 수준의 식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교를 주변으로 호커센터가 (우리나라로 치면 푸드코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싱가포르에는 모든 동네에 이와 같은 호커센터가 있다) 3개 정도 위치한다. 그 덕분에 다양한 음식을 아무 때나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음식도 판다. 한국분이 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한인타운 역시 자주 갔다. 그렇게 멀리 위치하지 않은 곳 위치하기에, 친구들과 얼마나 많은 삼겹살을 먹었는지 셀 수도 없을 것 같다.
3. 굉장히 안전하다. 굉장히.
필자는 평생 한국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있어보니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법이 다스린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물 마시거나 음식 먹으면 안 된다. 무단횡단하면 안 된다. 껌 씹으면 안 된다 등등 다양한 법들이 있지만 생각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였고 또한 너-어-무 안전했다. 물론 지하철에서 물이나 음식 먹으면 안된다. 벌금 내야하고 엄청 비싸니까 조심해야한다. 싱가포르에서 필자의 물건을 어디다가 두고 다음날 와도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할 정도로 안전한 느낌이 강했다. 특히 밤늦게 여자 혼자 다니더라도 크게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그런 도시였다. 아이 키우기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드는 싱가포르.
4. 할게 많다. 주변에 갈 곳도 많다.
싱가포르의 가장 큰 장점이다. 관광지도 워낙 많고 근처 휴양 도시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필자에게 이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6시간, 발리는 3시간, 푸껫은 1시간 조금 넘게 투자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고. 공항 역시 시내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더 적게 소요된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 처음 와본 친구들 중에서 결국 취업을 싱가포르로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필자의 경우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하지만 언제든 싱가포르로 갈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싱가포르 내에도 하이킹을 하기 위한 장소들, 유니버설 스튜디오, 다양한 공연들 등 할 수 있는 게 참 많은 곳 같다.
5. 덥다.
필자는 동남아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싱가포르는 더웠다.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조금만 밖에서 걸어도 땀이 난다. 때로는 뜬금없이 많은 비와 천둥이 친다. 한 가지 기억이 남는 게 장을 봐서 집에 걸어가고 있었는데,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더운 날씨에 땀이 비 오듯이 왔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가면서 필자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타국에서 이렇게 장을 보고 있는 거지 라며 실소했던 적이 있다. 물론 워낙 에어컨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싱가포르이기 때문에 실내에서 생활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3주간의 즐거운 프렌치 코스가 끝났다. 덕분에 제 3 외국어라는 숙제를 쉽게 마칠 수 있었고, 학교 시작 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앞으로의 일 년이 어떻게 될지 기대할 수 있었다. 그 후 필자는 귀국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출발을 위한 육체적, 정신적 준비를 했다. 드디어 진짜 MBA의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