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기절하겠는데"
눈을 감고 떠보니 어느덧 우리는 졸업여행 중이었다.
보통 인시아드 December class의 경우 동남아에서, July class는 유럽에서 졸업여행을 한다.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겨울에 따듯한 동남아로 떠나오는 것이다. 재밌는 점으로 졸업여행을 가보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급생들을 만난다. 말 그대로 필자와 반대 캠퍼스에서 생활을 하던 친구들이다. 그리고 졸업여행에서 처음 만나서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인연이 아닌 걸까 싶기도 했다. 필자는 졸업여행 전 약 5일 먼저 발리로 날아와서 친구들과 함께 pre 졸업여행을 했다. 장소는 길리섬! 윤 식당 첫 시즌을 촬영한 장소로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는 곳으로, 사실 필자는 별생각 없이 친구들을 따라갔다.
필자가 여행을 떠날 즘 캠퍼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 중이었고, 길리섬으로 떠나는 필자와 친구들은 지독한 배 멀미 끝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서핑여행. 서핑을 좋아하는 필자가 친구들을 꼬셔서 모두들 서핑을 배우게 되었고, 막상 다들 너무 좋아해서 서핑을 하고 저녁에는 가볍게 술을 마시는 그런 콘셉트이었다. 서핑이랑 잘 맞지 않는 친구들은 다이빙을 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편하게 쉬는 정말 말 그대로 힐링의 느낌이었다. 다 같이 여행 가본 적 없는 친구들과 다 함께 떠났던 이 여행은 은근히 안 맞을 것 같은 친구들과 더 재밌게 지내서 추억이 많은 여행이다. 아침마다 우리의 식사를 훔쳐먹으러 오는 고양이들과 맞서 싸우는 친구들과, 자기의 베이컨을 몰래 주면서 고양이에게 사랑을 표시했지만 막상 손가락을 크게 비어서 병원을 다녀오는 친구 등 희한한 경험들이 특히나 많은 여행이었다. 특히 길리섬의 하이라이트는 총 두 가지였는데, 화산과 노을이 동시에 보이는 바다 위에서 서핑을 하는 평화로움과 새벽 3시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시던 밤이었다. 가뜩이나 화산이 폭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 여행을 캔슬시킬 뻔했는데, 바다 위에서 바라봤던 화산은 어찌나 평화로웠던지.
길리섬은 굉장히 더웠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점심시간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쉬기만 했다. 수영을 하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으며 그냥 애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다. 특히 밤이 되면 어디가 맛있을까 맛집을 찾아다니고 유일한 이동수단인 말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상당히 재밌었다. 그때의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내년에는 이러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답이다. 못 느낀다.
힐링 여행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다시 발리로 돌아갔고, 정신없는 졸업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여행 가격이 그냥 평소 우리가 다녔던 자유여행 가격 대비 너무 비싸서 학생들이 컴플레인 걸었었는데, 막상 졸업여행에 있는 이벤트들을 가보니 술이 무제한이었다. 그 결과 애들은 새벽까지 만취를 하고, 다음날 있을 액티비티들을 다 불참한 다음에 다시 저녁에 달리는 것을 3일째 반복했다. 참 대단한 게 이게 마지막이라서 그런 걸까 친구들 모두 정말 불태우면서 놀았던 것 같다. 이쯤 되니 서로 눈치 안 보고 정말 미친 아이들처럼 놀았던 것 같다. 쉬지 않게 술이 들어가고 1년간 있었던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뛰어다니고, 마치 학부생이 되어서 다시 놀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우리는 졸업식만 남기고 있었기에, 이게 정말 마지막이 된다라는 생각에 많은 아쉬움이 느껴졌던 여행이었다 (물론 그 후 한국에 와서 더 와일드하게 놀다가 갔다).
지금 와서 돌이 켜봤을 때 작년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생각해봤는데, 1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이 너무 좋았던 게 가장 큰 이유 같다. MBA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식의 깊이에 대해서 논의하는 학문은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이를 표현하는 공부를 하는 곳이지, 이 곳을 나왔다고 해서 경영에 대한 마스터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 강의, 토론 등을 통해서 친구들의 '관점'을 배우고 그 사람들에게 내 '관점'을 나누면서 서로 배워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국제 학교를 다녔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공부를 하면서 자라왔던 필자였지만, 실제로 diverse perspectives, global mindset를 경험하는게, 그리고 그게 피부에 와닿았던 적이 처음이었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러는 와중에 정말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많이 만난 것 같고, 그 덕분에 필자도 1년 동안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 들었다. 다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만큼 사회에 나갔을 때 친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허나 사회생활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겪고 나서 다시 대학생이 되는 마음으로 만나는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더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사진을 보다가 느낀 건데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날 사진을 보니 정말 다들 얼굴이 엉망이다. 며칠 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다가 아침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고, 몇 일의 휴식 뒤에 졸업식을 하게 되었다. 이번 졸업식에는 필자의 부모님이 오셨다. 중/고/학부/대학원 모두 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워낙 한국과 멀었기에 이때까지 부모님께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게 마지막 졸업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싱가포르까지 모셨다. 학교를 오기 1년 전 가족끼리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는 회사생활이 워낙 바쁘다가 보니, 여행 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에세이를 적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뭘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고 있냐 좀 편하게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렇듯 항상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인드로 키워주신 덕분에 실패를 하더라도 곧장 일어나서 다시 시도해보는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 덕분에 지독한 GMAT과 Essay 등을 완성시켜 이 경험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졸업식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줄을 서서 한 명씩 호명되는 이름에 불려 나가서 졸업장을 받았다. 부모님이 지루하시지는 않을까 몇 번 돌아보고 지난 과거들을 추억하는 영상에 웃고 나니 졸업식이 끝나고 말았다. 부모님과 다음날 출국인 일정이라서, 필자의 경우 졸업 파티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괜히 깨시지 않을까 생각되어 졸업식장에서 친구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막 울기 시작하고 나니 정말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필자도 울컥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필자는 부모님께 먼저 주무시라고 이야기를 하고 클럽을 갔고 다시 한번 신나게 놀아주고 왔다. 그렇게 아쉬움이 있었다는 건 참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게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MBA 첫날이 되면 졸업생들이나 교수님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너는 앞으로 최고의 1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졸업을 할때즘이 되면 깨닫게 될 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학생은 (필자를 포함해서) 뭐 이렇게 오버를 하고 있지? 학교가 거기서 거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정말 마지막 날이 되고 친구들과 작별을 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 얼마나 웃을 일들이 많았고 얼마나 행복한 일들이 많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