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집에 좀 갑시다"
오늘의 주제는 직장인들의 공공의 적 야근입니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삼성은 근무 강도와 관련하여 안 좋은 이미지들이 많다.
회사 오브 월화수목금금금이며 사무실 불 꺼질 날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틀리지 않지만, 분명히 회사 차원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개선책들을 내고 있다. 자율 출퇴근제 도입, 야근 시간 비교 금지 등 직원들이 집에 가도록 새로운 대책들을 내놓았다. 허나 이러한 노력들은 쉽게 조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습관을 없애는 것과 같은 이 작업은 회사와 부서 상사들이 주도해야 한다. 위 사람들이 "내가 젊었을 때는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왜 너네들은 일찍 가려고 해"라는 마인드가 아닌 "직원들의 능률 유지와 번아웃 방지에서 꼭 필요하다"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직장생활에 야근이 자연스러운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고 성과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게 회사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기업인 입장으로 당연히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서 최대 매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일 텐데 왜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야근을 없애려고 하지 않을까? 야근비를 지원하는 회사의 경우 추가적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것인데 과연 그들은 직장인들이 항상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한다고 생각할까? (물론 정말 일이 많아서 야근하시는 분들도 많다). 아니면 사무실의 불이 꺼지지 않고 누군가 항상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심리적인 안도감을 주는 것일까? 만약 직원들 중 "어느 일부"는 6시 퇴근을 장담해줄 때 동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야근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불필요한 야근과 이로 인한 부작용을 덜어내자는 이야기이다.
(i) 눈치성 야근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야근의 형태이다. 상사는 아직도 모니터를 보고 있고, 동료들 역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퇴근을 하지 않는다. 오늘 업무는 마무리됐는데, 먼저 퇴근해야겠다는 스타트를 끊는 게 눈치 보인다. 먼저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일 못 한다고 수근덕 거릴 것 같아 걱정이다. 눈치성 야근은 직급이 낮거나 승진을 앞두고 있을 때 자주 목격된다. 야근을 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일까? 열심히 한다는 것은 맞지만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업무를 리뷰해봐야 한다. 업의 특성상 (예: 시차가 다른 국가와의 미팅) 늦게까지 근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상사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초과치를 주었거나 순수하게 그들 역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첫 상사는 야근하는 직원을 반기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되면 "할 거 다 했어? 그럼 빨리 가" 라며 등을 떠밀던 분이셨다. 눈치 보여서 퇴근 못했던 우리가 짠했는지 매일 같이 우리를 쫓아내셨다. 처음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서 이동 후 눈치게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사는 직원들의 업무량을 올바르게 분배해야 하고, 본인들 먼저 집에 들어가면 된다. 본인 부서에 업무량 대비 야근이 많아서 고민인 상사들은 일주일만 6시에 퇴근을 해봐라. 야근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어 있을 것이다.
유럽의 경우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본인이 업무를 마무리했으면 당당하게 퇴근하고, 대부분의 상사들이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눈치 볼 일도 없다. 허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필자 역시 일찍 퇴근할 때 눈치를 본다. 괜히 미안함 마음이 들어 일을 더 만들어서 업무를 하다가 퇴근을 하는데 적어도 내 latest 퇴근시간은 정해놓고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언젠가 익숙해지면 눈치 보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ii) 퇴근하려는데 일 줘서 야근
하루 종일 옆에 있었는데 왜 집에 가려는 애들을 잡는 건가? 급한 업무가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야근을 부탁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굳이 당일까지 마무리할 필요가 없는 업무를 전달하면서, 퇴근 전까지 보내달라고 하는 심보는 무엇일까. 밤에 보내도 내일 아침에 읽을 것이라면 왜 꼭 퇴근 전에 보내달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왜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회사 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순전히 개개인의 성격인데 이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삼성에서 약속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말씀을 드리고 또 하루 종일 말씀드려 퇴근 전에 업무를 받지 않았다. 물론 급한 일이 있어 약속을 취소한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상사는 양해를 구해가면서 일을 줬다. 아마존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퇴근 시간에는 일을 안 주는 것이 당연하지만 급한 업무가 있는 경우 일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야근을 부탁한다. 중요한 업무의 경우 야근을 하는 것에 있어서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고 상사들은 고맙다는 표시를 해줬다. 예를 들어 여름에 이태리/스페인 론칭을 하던 중 문제가 생겨서 누구 한 명이 늦게까지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내가 담당하던 제품이라서 늦게까지 남아 근무를 하니 우리 디렉터는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저녁도 전부 expense 하라시며 자정이 다 되어도 간간히 메신저를 보내면서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 (정확히 gam sa hap ni da라고 보내줬다). 이 문제는 간단한 것 같다. 중요하다면 중요하다고 설명을 하고, 중요하지 않다면 굳이 일을 주지 말자. 직원들도 삶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늦게 회의가 끝나고 관련 서류를 정리해서 보내준다고 하자, 시크한 매니저는 한마디 하고 퇴근했다.
너 오늘 보내도 나 내일까지 안 읽을 거야. 그러니 그냥 퇴근해
(iii) 일이 너무 많아서 하는 야근
어떻게 보면 오늘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일이 너무 많은데 그럼 야근을 안 하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어느 회사든 일의 분배가 제대로 되어 있는 부서를 찾기는 힘들고, 직원 대비 일은 항상 많다. 회사는 추가적으로 직원을 채용하면 되는데, 이는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 삼성도 그랬고 아마존에서도 느꼈던 케이스인데 과연 이럴 때 무엇이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아마존에 근무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단어가 prioritization과 escalation이다.
먼저 prioritization은 일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은 항상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많은 일들을 꼭 다 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조니안들은 업무가 "절대로 끝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동안 잠에 들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린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맞게 업무를 한다. 입사 초반, 디렉터의 메일을 10분 내로 답변하는 나에게, 우리 매니저는 디렉터를 포함해서 "이 메일에 답을 주는 게 정말 네 업무의 우선순위에 맞는 것일까? 직급이 높다고 해서 바로 답을 할 필요는 없어. 정말 네게 중요한 일부터 했으면 좋겠다"라고 답을 줬다. 몇 분 후 우리 디렉터 역시 동의한다라는 표시로 "+1"이라는 메일을 줬는데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본인 상사의 질문도 우선순위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바로 답변을 하지 말아라 - 우리도 빠른 답변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이 굉장히 새로웠다. 그만큼 아마존은 우선순위 목록을 가지고 업무를 하는 것에 있어서 익숙하다. 매니저와 주마다 1:1 세션을 갖는데, 매번 그는 내 우선순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좋은 우선순위야" "이게 빠진 것 같은데"라는 피드백을 준다.
하지만 회사의 각 팀들은 다른 goal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협력이 필요할 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메일에는 굳이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인데, 어떻게 우리는 타 부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상황을 위해서 필요로 한 것이 escalation이다. 말 그대로 위에다가 업무를 올린다라는 말인데, 중요한 업무 요청을 할 경우 그 담당자의 매니저까지 포함해서 메일을 보내면 된다. 일의 크기에 따라서 임원들까지 포함을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이 사람은 왜 이런 걸 위에다가 이르고 그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한가"라며 다시 한번 메일을 읽어보고 우선순위를 조정한다. 상사들 역시 escalation이 왔다고 해서 무조건 업무를 진행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은 "너의 우선순위를 잘 고민해보고 일을 진행해라"라고만 말을 해준다. 이 결과 우리는 정말 중요한 일들을 먼저 처리하고 필요에 따라 escalation을 통해서 업무 재조정을 한다.
물론 단점은 있다. 회사에서 중시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경우 타 부서의 도움이 굉장히 늦게 진행된다. 예를 들어 "Hi, this work was de-prioritized over XXX because ABC"라는 메일을 받게 된다면 할 말이 없다. 반대로 삼성과 같이 모든 업무를 빠르게 마무리해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물론 그 외에 부수적인 이들이 많기 때문에 프로젝트 속도에 영향을 안 미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금년 회사 목표가 확실하고 모든 부서가 한 마음으로 달려든다면 다른 경쟁사 대비 더 빠른 성과를 이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수많은 일들 중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진정 직원들의 휴식시간을 빼앗는 것이 맞는 것일까?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재작년부터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국내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고 있다. 균형이란 올바른 중심을 잡는 것부터 시작된다. 약간의 오차에 의해서 한순간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와 직원 모두가 다 함께 중심을 잡기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또한 이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