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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Jan 08. 2019

글로벌 기업의 회의 방법

"전 세계와 통화하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그라나다"에서 하는 게임의 서버는 "한국"에 있다 @알함브라 궁전


우리 밀레니얼들은 자라면서 "글로벌 세상", "글로벌 시민"과 같은 단어들을 자주 접했다. 

호돌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문화를 설명하는 책을 읽었고 먼 나라 이웃나라를 통해서 유럽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외국"이라는 낯선 벽이 무너졌고, 급진적으로 변하는 IT 기술은 오늘날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화상 채팅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변화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폰은 겨우 12년 전에 발표되었고 카카오톡은 아직 10살도 아니다. 이전 유학생들은 국제전화 카드를 구매해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고 한국에 있던 학생들은 서로 "알"을 빌려가면서 문자를 보냈었다. 어느 순간 일상이 된 페이스북/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와 카카오톡/와츠앱과 같은 메신저들의 등장은 물리적 위치는 "장거리 연애를 하지 않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세상은 글로벌 세상이 되었고 우리는 글로벌 시민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신규 기술들의 등장으로 글로벌 회사가 근무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출처: 인턴쉽> 누글러 모자


구글은 입사하면 제일 먼저 "누글러 모자"를 준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구글 로고의 색깔을 담은 모자인데 입사하는 사람들은 이 모자를 쓰며 "나는 오늘 입사한 사람이야"라는 것을 구글러 방식으로 보여준다. 애플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경우 고성능 맥북 프로를 받았다고 자랑했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입사한 친구는 아이폰부터 최신 IT 기계들을 잔뜩 선물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아마존은 입사하면 뭘 줄까? 그 당시만 해도 아마존의 Frugality (검소함)에 대해서 몸소 체험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래도 아마존인데 뭔가 멋진 걸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출근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누가 봐도 거대한 노트북", "대량 구매를 하니 업체에서 사은품으로 준 것 같은 백팩", 그리고 "그냥 정말 평범한 유선 헤드셋"을 받았다. 노트북의 경우 업무에 지장 없는 사양의 제품이었고 그 외에 물건들은 일 할 때 빼고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제품들이었다. 필자의 경우 삼성에서 간단한 전화 외에는 대부분 얼굴을 보고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헤드셋을 받는다는 게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마존의 경우 워낙 다양한 팀들이 다른 국가에서 근무를 하고 있기에, 대부분의 회의는 Conference call 혹은 화상 회의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헤드셋"은 아마조니안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실제로 핸드폰을 두고 오는 것은 괜찮지만, 헤드셋을 두고 출근하면 멘붕이 온다).


<출처: 구글> 이런 느낌으로 매일 같이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정말 다양한 국적의 아마조니안들과 일을 한다.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회의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슬로바키아, 인도, 중국에서 근무하는 아마조니안들이 참석한다. 필요에 따라서 호주/일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도 회의를 하는데, 워낙 다양한 국가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시차에 대해서는 많이 배운 것 같다. 때로는 미국팀과의 회의를 위해서 늦게 퇴근하는 경우도 있고 (미국팀 역시 새벽에 일어나서 회의를 한다), 아시아 팀과의 회의를 위해서 일찍 출근하는 날도 있다 (중국팀 역시 늦게 퇴근한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정말 글로벌 시민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서 정말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일을 한다니, 참 좋은 경험이다. 


아마존은 유럽 본사를 지리상 중심인 룩셈부르크에 배치했다. 이 곳에서 유럽 제품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근무하는 아마조니안들과 업무를 진행한다. 재밌는 건 유럽 국가들은 위치적으로 정말 가깝지만, 너무 다른 성격과 일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친구들의 경우 감정 표현이 없는 데에 비해서 업무 관련 디테일에 강하다. (주관적인 일반화입니다) 독일인들은 본인이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공부하는 반면에 영국 친구들의 경우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친구들의 경우 유럽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빠른 답변을 주지 않으면 쉬지 않고 물어보는 것에 비해서, 프랑스 친구들은 우리의 예상대로 넘쳐나는 휴가를 다녀오기에 바쁘다 (여름에는 실제로 아무도 없다). 특히 우리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가벼운 농담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 필자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있다는 게 때로는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다. 예를 들어 월드컵 시기에는 축구 이야기밖에 안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프랑스 친구는 월드컵을 우승하고 1주일 동안 축구 이야기만 했고, 독일 친구들은 필자와 미팅할 때마다 축구 이야기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손흥민이 아시안 게임으로 군면제를 받았을 때 영국인들은  "우리가 아시안게임 결승전을 보면서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 정말 다행이야" 라면서 한국인들만큼 우승에 대해서 기뻐했다.


대부분 회의가 화상으로 진행되다 보니, 실제로 얼굴을 본 적 없는 인원들도 많다. 목소리만 들어봤기에 실제로 만나고 어색한 적도 꽤나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도 Face time (얼굴을 보고 일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Offsite를 (한국에서는 워크숍이라고 한다) 진행한다. 중요 프로젝트가 있을 경우 초반에 모여서 며칠 동안 회의를 진행하는데, 이를 통해서 동료들과 유대감을 쌓음으로 추후 업무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준다. 이와 같이 외국 사람들 역시 서로 얼굴을 알고 있다면 업무적인 문제들을 더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물론 같은 장소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존의 경우 워낙 다양한 국가에 서비스와 제품들이 론칭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조니안과 헤드셋은 앞으로도 떨어뜨려 놓지 못 할 것 같다.



화상 통화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의 어려움이다. 전화를 통하여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어려운 문제는 옆에 있어도 이해시키기 어려운데, 전화로 하면 3배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모 글로벌 기업에서 우주 항공 관련된 일을 화상으로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 제조자와 미국 제품 담당자가 부품의 스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크기에 대한 결정을 하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허나 실제 부품이 도착했을 때, 제품 담당자는 본인이 요청했던 것과 전혀 다른 크기의 부품을 받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던 제품 담당자는 제조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서로 단위 (unit)에 제품을 생각한 것이었다. 이 경우 inch와 cm의 크기로 소통을 한 것이다. 물론 얼굴을 보고 회의를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통화를 할 경우 이러한 일들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아마존의 경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문화"를 직원들에게 더 권장한다. 글로 상세하게 본인의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회의 참석인들이 오류 없이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다. 그 외 회의 시간의 경우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토론들을 통해서 결론들을 도출해낸다. 이와 같이 아마존에게 글이란 단지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기 위함 뿐만 아니라, 화상 업무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장치이다.


물론 장점들도 있다. 우선 시차가 다르기 때문에 업무에 공백이 없다. (극단적으로)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시애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일을 하다가 퇴근 전 다른 국가에 있는 친구에게 넘겨주고 퇴근을 한다. 매번 그렇게 일을 하지 않지만 정말 급하게 업무를 진행해야 할 경우 이런 식으로 업무의 갭을 지워버릴 수 있다. 또한 담당자 혹은 account manager들이 각국에서 근무를 함으로써 고객의 소리를 더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해당 내용들을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공유해줌으로써 우리가 고객의 피드백을 수렴하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큰 도움을 준다.


<출처: 구글> 보스 콰이엇컴포트 35ii (광고 아님)


하루에 많게는 6시간 적게는 2시간 정도 화상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결국 필자도 좋은 헤드셋을 구매했다. 노이즈 캔슬링이 요즘 핫하다고 해서 구매하게 되었는데, 비싼 가격이지만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것 같다 (특히 매일 업무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구매한 것에 대한 후회가 1도 없다). 주변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활용하면 주변 소음이 적어져서 본인 자리에서도 편하게 통화를 할 수도 있다. 물론 필자의 경우 조용한 곳에서 통화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부분 아마존 전화박스 (phone booth)에 들어가서 통화한다. 아마존 전화박스의 경우, 아마조니안들은 화상 통화를 자주 하다 보니 노트북을 들고 전화를 할 수 있도록 사무실에 설치해놓은 전화박스이다. 심할 경우 물을 한 컵 떠서 그 전화박스에 들어간 다음 약 3-4시간 동안 나오지 않은 날들도 있었다. 


결국 IT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진정한 글로벌 시민이 되었다. 필자만 해도 1월에는 미국 출장, 2월에는 중국 출장을 가는데 그 사이에는 잠시 한국에 귀국하여 업무를 볼 계획이다. 일은 아마존 오피스에서 하면 되고 시차만 유의해서 회의를 잡으면 되기 때문에 (어차피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함으로) 다른 국가에서 근무하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상으로 업무를 진행한다는 게 무조건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와 같은 업무 방식에서 생겨나는 문제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아마존은 자체 개발한 메신저와 화상 통화 기술들을 꾸준하게 개선하고 있다. 전 세계와 일하는 세상. 정말 이제 국가라는 경계선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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