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연초 다면평가 결과를 매니저와 함께 읽어본 적 있다. 익명으로 작성된 수많은 평가들 중 나의 강점으로 자주 등장한 아마존 리더십 원칙은 "Earn trust". 아마존 사이트에선 이를 <Leaders listen attentively, speak candidly, and treat others respectfully. They are vocally self-critical, even when doing so is awkward or embarrassing. Leaders do not believe their or their team’s body odor smells of perfume. They benchmark themselves and their teams against the best (출처: Amazon.jobs)>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매니저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Product manager라는 포지션에서 다른 부서원들의 신뢰를 얻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며 이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을 해줬다.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과연 타인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필자는 이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최근 이 원칙에 대한 의문이 들기에 필자의 경험을 다뤄보고자 한다.
가장 기본적인 신뢰는 소통을 통해서 형성된다.
필자는 입사 후 매니저가 담당하던 회의들을 넘겨받았다. 법무팀, 세무팀과의 회의를 진행하며 유럽 세법에 대한 토론을 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 개선 방향을 구체화시켰다. 또 다른 회의에선 유럽 세일즈 팀들로부터 피드백들을 받았는데 고객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은 무엇이고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 고객들의 어려움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입사 초기 복잡한 세금 용어들과 줄임말들이 난무하던 회의들은 항상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회의 전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헤드폰을 연결하고 사람들의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했으며 회의록을 작성하여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게 없는지 확인해줘"라는 마음으로 전체 공유했다. 회의록엔 피드백과 더불어 개선 및 요청사항들, 그리고 다음 행동들에 (Next action item) 대한 설명을 적었다. 그 후 빠르게 action item들을 처리하고 담당자들을 업데이트 했는데, 이러한 반복 활동을 통하여 제품에 대한 이해를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또한 세일즈 팀의 목소리가 제품 개선에 실직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은 그들에게 큰 동기가 되었고 덕분에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그들은 더 많은 피드백을 줬고 시간이 지나며 더 끈끈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었다.
소통 없이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세일즈팀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다음 세 가지를 노력했다. 첫 번째로 듣고 또 들었다. 초반엔 전문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배우는 입장에서 열심히 들었고, 나중에는 그 경험들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항상 감사하며 들었던 것 같다. 실제로 세일즈팀의 피드백들이 현재 제품에 많이 녹아내렸고 이는 제품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줬다. 두 번째로는 "솔직함"이었다. 많은 세일즈 팀원들은 본인이 접해본 고객의 불만사항을 토대로 제품 개선을 요구한다. 이는 국가별 그리고 고객별로 다양하게 들어오는데 아쉽지만 제품 담당자들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어서 전부 들어줄 수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피드백을 바라보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못할 경우 수치와 함께 그들에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네 피드백에 대해서 deep dive 해봤는데, 제품 개선을 위해서는 Y만큼의 자원이 필요할 것 같아. 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과는 X% 밖에 되지 않을 걸로 확인되어 현재 우선순위에는 포함시키지 못할 것 같아. 좋은 피드백 고맙고 혹시 우선순위에 변동이 있을 경우 네게 제일 먼저 알려줄게>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매번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말하는 입장에서도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수치가 뒷받침된다면 대부분 잘 이해해줬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면 메일은 늦지 않게 보내기 위하여 노력했다. 우리 직장인들은 하루 종일 메일들과 씨름하며 하루를 보낸다. 회의의 연속으로 메일을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에 효율적으로 메일을 처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는 노트북과 핸드폰을 사용하여 최대한 자주 메일을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 (1) "언제까지 회신해야 하는 메일인가"와 (2) "얼마나 깊게 고민하고 답변해야 하는 메일인가"에 대해서 정리를 하는데, 이는 메일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오늘 회신해야 하는 메일들 중 바로 보낼 수 있는 것은 망설임 없이 답을 보내고, 조금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경우 이동 중 혹은 모든 미팅이 끝나고 답변을 한다. 이런 식으로 오늘 회신을 필요로 하는 메일을 전부 해결하고 퇴근하는데, 이렇게 메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메일이 쌓여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제품 입장에서도 세일즈 팀들과의 소통은 많은 개선을 가져왔다. 고객들이 힘들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은 자동화를 하거나 올바른 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를 확립함으로 불확실성을 많이 줄였다. 최근 매니저는 "제품의 혼란을 네가 잘 정리해준 것 같다. 수고 많았다"라고 칭찬해줬는데 실제 필자는 혼란을 겪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잘 들어준 것뿐이다. 그리고 이 작은 시작으로 그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협조를 통한 신뢰 쌓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담당 제품을 타국가에 론칭하게 되었는데, 이 당시 필자는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입이었다.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만 있을 뿐 타부서원들과의 대화를 하면 항상 어색한 공기가 흐르던 시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제품 론칭 경험이 전무한 필자가 어떻게 같이 근무하는 타부서원들의 신뢰를 얻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제품을 론칭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팀들이 수많은 상황들을 고려하며 일을 진행한다. 자주 소통하며 문제가 될만한 부분들은 사전에 확인하는데, 어느 회사나 그렇듯 우리 역시 굉장히 빠듯한 일정을 맞춰야 했다. 하루는 회의 중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근무하는 부서가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해당 부서의 업무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제품을 론칭할 수 없었다는 것이 확실시 되었기에 필자는 해당 부서의 업무들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 회사에서 일을 나눠가며 업무를 하는 게 신기했는지 그 친구들은 "우리는 이제 형제 부서야"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실 필자의 입장에선 그들 덕분에 제품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할 수 있었기에 일종의 과외비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늦은 저녁까지 함께 일하며 제품을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고 짧은 기간에 많이 친해졌다.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던 매니저는 "일손이 부족할 때 도움을 주며 좋은 신뢰를 쌓은 것 같다"며 칭찬을 해줬다.
모든 직장인들에게는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가 있고 우리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간다. 때론 같은 방향 때론 반대쪽 길로 떠나는데, 혹시라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한번 손을 내밀 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일이 바쁘기에 항상 도움을 줄 수 없겠지만, 작은 배려를 먼저 건넨다면 이를 받는 상대방 역시 언젠간 당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필자 역시 위 경험을 통해서 해당 부서와 같이 근무하는 방식을 터득했고 그 후 더 빠듯한 일정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무리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해당 회의에 참석한 다른 팀들의 경우 우리를 보며 마치 10년은 같이 일한 것과 같은 팀워크라며 칭찬을 해줬다. 하지만 추후 다른 경험들을 하면서 배려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 역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과 일을 해봤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좋지 않다고 잘 알고 있다. 특히 업무를 자진하여 할 경우 "그 사람은 이 일 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무서운 논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의를 베풀기 전, 이를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혹시라도 당신을 단순한 기버 (Giver)로 보는 사람이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좋은 사람만 신뢰가 가는 것일까?
부서원의 실수로 담당 프로젝트를 멈추고 계획을 전체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 프로젝트가 워낙 중요했기에 사전부터 전 부서원들에게 중요성을 공유했고, 모든 절차를 여러 번 확인하며 업무를 진행했었다. 그런데도 프로세스를 컨펌해준 부서원이 문제가 생겼다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던 시기에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임원들뿐만 아니라 세일즈 팀들에게까지 론칭 날짜가 공유된 상황에서, 이 모든 걸 다시 뒤엎어야 한다니. 누군가를 무조건 탓하고 싶지 않았기에 (필자도 두 번, 세 번 확인했어야 했다) 대신 빠르게 계획 변경을 하여 일정을 원상복귀 하자는 회의를 진행한 적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흥미로운 상황들을 보게 되었는데 우선 이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하자고 했고 (본인의 잘못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프로세스를 잘못 컨펌해준 부서원은 본인이 너무 바쁘다며 업무를 뒷전에 두었다 (물론 일정이 바쁘다며 양해를 바란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 부서원은 과거 프로젝트들을 통하여 수많은 도움을 주고받았기에 이 긴급한 상황에서 똑같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제품 완성 일정을 물어보는 상사들의 압박을 계속 받아가며 필자는 프로젝트를 정상화하려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매니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 역시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여 항상 시간에 쫓겨가며 일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인 제공자의 우선순위에 이 프로젝트가 없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서운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필자는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KPI에는 이 프로젝트가 전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가 가야 하는 길이 있었고 이 프로젝트가 성공되지 않더라도 그에게 가는 페널티는 전혀 없었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프로젝트만큼은 아무리 친한 우리더라도 다른 길로 걸어가고 있는 사이였던 것이었다.
이 친구는 이해심이 많으니 잘 이해해줄 거야
이 경험을 통해서 항상 협조하는 사람이 되는 게 썩 좋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이해해주기를 바랐고, 그가 바쁜 일정 중 필자의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필자는 필요 이상으로 그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업무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필자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본인에게 더 중요한 업무에 집중하며 필자의 프로젝트는 아주 가볍게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는 결국 이 혼돈을 생성하고야 말았다. 남을 위한 호의가 본인의 프로젝트에 독이 되었던 케이스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 필자의 매니저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그리고 거기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매니저는 모두가 인정하는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다. 임원들도 그의 말을 굳건히 믿는 우리 부서에서도 가장 신뢰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와 필자의 업무 스타일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그는 공과 사를 구분 지어 필요 없을 경우 "사"쪽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쓸데없는 농담을 하기보다 그는 직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택하는데 이는 아마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아마존에서는 escalation을 잘 활용해야 한다. 다양한 업무를 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경우 상사들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여 그들끼리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필자는 이를 마치 매니저에게 이른다는 느낌이 있어 쉽게 활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선순위 정하는 방식 중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깨달았다. 예를 들어 타 부서에서 일정을 맞추지 못할 경우 원인을 파악하고 만약 그 이유가 적절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매니저를 포함하여 다시 연락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바쁜데 그 사람의 사정을 고려하며 혼자 스트레스받는 것보다는 윗사람에게 보고하여 그들끼리 알아서 결정하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을 자주 사용하는 필자의 매니저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일을 깔끔하게 진행하는 "일 잘하는 신뢰 가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다.
매니저와 식사를 하면서 최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이번 경험을 통하여 "Earn trust"가 참 어렵게 다가온다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나도 참 힘들었어. 이를 이해하는데 몇 년이 걸린 것 같아. 내 팁은 언제 공과 사를 넘을 것인지 결정할 줄 아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 어설프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까지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는 것보다 때로는 조금 "나쁜" 사람의 모자를 쓰고 그들을 대하는 게 너 그리고 그 상대방에게 더 좋을 수 있어"이라고 대답했다. 멘토링을 자주 하는 매니저의 좋은 말 덕분에 회사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신뢰를 얻는다는 것.
소통과 협조를 통하여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항상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것이 아닌 조금 가혹한 결정이라도 큰 그림을 위해서 내릴 줄 아는 모습에서 리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