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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May 31. 2019

번아웃을 마주한 그대에게

"일에 대한 열정은 언제까지 갈까"

최근 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가 번아웃 (burn-out)을 질병으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쏠렸다. WHO는 결국 번아웃 증후군을 질병이 아닌 직업적 증상이라고 결정했지만, 번아웃이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여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대목을 잘 보여준 경우였다고 생각한다 (출처: CNBC 링크). 번아웃 증후군.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전력을 다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는 이 증후군은 모든 게 소진된다라는 뜻의 burn-ou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다가 더 이상 그 열정이 사라져 버린 상태. 오늘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던 동료, 선배분들은 어떻게 번아웃 증후군을 마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직장인들 중 안 바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본인 업무가 가장 많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 역시 회사생활을 하면서 바빴던 시기가 있었다.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아 8명이 하던 업무를 3명이서 끌고 갔던 적도 있었고, 늦게 퇴근하고 싶지 않아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프로젝트에 영향을 줄 것 같아 자유롭게 휴가를 쓰지 못했던 적도 많았으며, 설 연휴엔 고향이 아닌 회사로 향한 적도 있었다. 덕분에 필자 역시 번아웃 증후군까지는 아니지만 때론 무기력해지거나 별 것 아닌 것에도 날카로워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인들 중에서도 간혹 번아웃 되신 분들이 계셨는데, 특히 성과를 동료나 선배들에게 빼앗길 때나 업무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랬던 것 같다. Financial Times에 따르면 번아웃의 기본적 원인은 원하는 "업"의 모습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온다고 한다. 특히 업무량, 자율성, 보상 시스템, 주변 동료의 관계 및 업의 공정성에서의 괴리가 있을 때 번아웃을 경험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출처: FT 링크).


누구나 일이 힘들어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 그리고 정신건강 의학계에서는 왜 번아웃을 질병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걸까? 필자 생각은 다음과 같다. 이 고통을 술과 같은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닌, 직장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을 변화하여 문제점과 대안을 체계적으로 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말할 수 있고 더 큰 스트레스를 겪은 예전 세대에 비하면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도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 어느 순간 열의없이 일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특히 다가오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들들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순하게 "참고 일해라"라는 말은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직장 스트레스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하여 출퇴근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고, 몇 년 전부터는 "워라밸" (Work life balanace)라는 카드를 자주 꺼내 들며 직장뿐만 아닌 개인생활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최근 SK에서는 격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함으로 직원들의 행복 가치에 최우선 하겠다 라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는데, 이런 실험적인 모습들은 번아웃과 같은 직장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행복 증진을 통하여 생산성을 향상하겠다는 모습이다. 그만큼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은 직장 스트레스 및 번아웃 증후군. 과연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미팅 참석을 못 할 것 같아.
오늘 저녁에 우리 아들 축구 경기를 보러 가야 하거든

저번 주 디렉터와 매니저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급한 저녁 미팅이 잡혀 매니저는 디렉터가 참석할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본인 캘린더를 확인한 디렉터는 본인 아들의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어떤 회의인지 그리고 누가 참석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도 놀라운 대답이 아니었다. 매니저 역시 "선약이 있었다면 가야지. 그럼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라며 쿨하게 돌아섰다. 이와 같이 회사에서 마주한 유럽 사람들의 경우 본인의 업무가 중요한 것만큼 회사 밖 개인의 삶에도 큰 무게를 둔다. 각자 본인들의 방식으로 휴식을 하거나 행복함을 찾으려고 하는데 특히 가정에 충실한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 디렉터의 경우 주말과 휴가 중에는 노트북을 열어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휴가 가는 직원들에게도 "노트북 들고 가지마!"라고 한다). 주말만큼은 자녀들과 여행을 가거나 케이크를 구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개인의 삶에 구분을 지어 충분한 휴식을 갖으려고 노력한다.


필자의 매니저 역시 본인만의 번아웃을 방지하는 방법이 있다. 그는 분기마다 휴가를 가지 않으면 본인이 번 아웃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분기마다 휴가를 가는데,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 경우 핸드폰을 쳐다보지 않음으로써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난다. 그는 갓 입사한 필자를 앉혀놓고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번아웃을 피할 수 있는 본인만의 방법에 대해서 잘 생각해봐. 만약 나처럼 주기적인 휴가를 가는 게 맞다면 그렇게 하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 처음 이 말을 듣고 휴가를 권장하는 매니저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그가 했던 말은 진심이었고, 일을 해보니 왜 번아웃을 방지하는 게 중요한 것인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휴가 외 그는 평일 혹은 주말에도 본인만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노력한다. 주말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바비큐를 하는 것이 그의 취미이고, 평일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스포츠 클럽에 참석하여 운동을 즐긴다. 이렇게 그는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꽤나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최근 A와 관련된 회의 시간을 변경하는 것과 관련하여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유럽 기준으로 금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이 회의의 경우 유럽팀들의 참여율이 저조했고 그로 인하여 다른 날로 변경하는게 어떻냐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자 미국 담당자는 화요일 저녁 7시로 변경하는게 어떻냐고 연락을 했는데, 이를 들은 매니저는 "너무 늦어. 안돼" 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누군가에게는 야근을 꺼려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는 매해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하며 워라밸을 붕괴하는 것을 지양하는 사람이다.


아직 필자는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휴가를 쓰거나 일찍 퇴근하는 것에 대한 눈치는 더 이상 보지 않지만, 중요한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것을 접고 일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최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타 부서의 업무 지연으로 문제가 발생한 적 있다. 그 일이 터졌던 시기가 때마침 아일랜드로 휴가를 다녀오려고 했던 시기였다. 타 부서의 업무가 끝나지 않았기에 휴가를 다녀오는 게 결과에 지장은 주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휴가를 가는 게 꺼려졌고 결국 자발적으로 출근했다 (매니저는 휴가를 가려고 했다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일을 무마하려고 정신없이 뛰었는데, 반대로 매니저는 그런 혼돈의 시간 속에서도 차분한 모습을 보여줬다. 분명히 그에게도 중요한 프로젝트였는데 그는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달라지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왜 필자는 휴가를 가지 않았을까? 이 일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결국엔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매니저의 경우 타 부서에 잘못을 묻는 것이 맞는 것이고 본인이 결과를 바꿀 수 없다면 굳이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의 말에 틀린 게 하나 없는 것 같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모든 일들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때로는 동료들이 기대 이하의 결과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방법, 그리고 이를 해소하여 번아웃까지 가지 않게 하는 "본인만의 방법"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너무 즐겁지 않아? 나는 내년 프로젝트가 너무 기대돼.

아마존과 함께한 지 10년이 넘은 동료는 진심으로 내년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회사에서 비슷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지치거나 흥미를 잃게 된다. 분야의 전문성을 갖게 되어하는 업무가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업무 패턴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빨간 배지를 차고 있는 그는 오히려 회사 업무가 너무 즐겁다며 만족감 넘치는 표정으로 맥주잔을 들이밀었다.


그를 바라보니 과연 필자는 그런 열정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주인의식을 갖고 새로운 어려움들을 마주할 때마다 머리를 맞대어 해결책을 찾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과연 필자는 10년 후에도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아마존도 직원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주 언급했던 것과 같이 다른 비즈니스 혹은 다른 부서로 업무 변경할 수 있는 로테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로테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직원들의 열정이 식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존은 회사 차원에서 직장 스트레스의 원인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량에 대한 고찰이다. 아마존에는 정말 일이 많다. 직원들끼리는 일을 끝내고 퇴근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일에는 끝이 없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를 끝내는 것을 퇴근의 기준점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한대의 업무들 중 본인 역량과 우선순위에 맞는 업무를 정하여 일을 한다. 직원들은 역량 이상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매니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업무량을 정해준다. 매니저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데 업무가 많아 부하직원이 번아웃 되면 그건 업무량을 잘못 정해준 매니저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예로 회사에는 업의 공정성이 잘 갖춰진 편이다. 막내가 한 일을 선배가 가로채는 것이 아닌 실무자들이 박수받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분위기는 회사 차원에서 구축한 것이 아닌 개인들의 양심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두 팀이 동일한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를 담당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 식탐 많은 누군가가 닭다리부터 집어 드는 것이 아닌 본인의 몫을 공평하게 정한다. 최근 신규 팀이 합류하면서 이상한 기류가 흐른 적 있다. 해당 국가의 경우 공격적으로 본인들의 성과를 쟁취하는 게 너그러운 문화였는데, 이를 처음 마주한 기존 팀원들은 꽤나 당혹해했다. 수용할 수 있는 업무량 이상으로 목표를 설정한 그들은 기존 팀원들의 밥그릇까지 빼앗을뻔 했고 결국 기존 팀원들과의 회의를 통하여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그 외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의 공을 채어가지 않는다. 본인이 발표하면서 "이 일은 내가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담당하는 부하직원이 인정받는 게 곧 매니저로써의 역할을 잘한 것이라고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서로의 공에 욕심내지도 않으면서 업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은 주변 동료와의 관계이다. 우선 미국 기업이다보니 회사에는 수평적인 분위기가 잘 녹아있다. 임원과도 이름으로 인사하고 상사라고 무조건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퇴근 후 가볍게 맥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기 싫다면 싫다고 이야기해도 어색해지지 않는다. 특히 이들과 지내면서 좋았던 것은 직급과 상관없이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고 사생활 침범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이었다. 부하직원이라고 하여 가볍게 대하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존중해준다 (모두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의 팀은 유럽 부서들 중 팀 분위기 점수가 유난히 높은 팀이다). 예전 소셜 네트워크를 한동안 떠돌아다니던 글이 있다. 구글의 경우 인터뷰를 보면서 "만약 공항에 하루 종일 갇혀 있어야 한다면, 과연 그 사람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기준을 본다는 점이었다 (영화 인턴십에서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다행히 현재 필자의 동료들은 같이 있어도 즐거운 사람들이다. 같이 있으면 즐거우나 공과 사를 구분하며 서로 존중하는 그런 관계. 어렵겠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한 평생을 살아오며 삶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그는 앞으로 본인의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필자를 포함한 번아웃을 마주하는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사람들이 새겨야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마주한 결과가 예상과 달라서 갖게 되는 실망감. 개인이 예상하는 결과를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을 돌이켜보지 못한 개인도 어느 정도의 원인 제공을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잘 못하는 부분이라 이 글을 적는다는 게 모순되지만, 때론 본인이 어느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결과가 본인의 예상과 다르진 않는지 등 충분한 자아 성찰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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