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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Jul 08. 2019

어려운 결정을 한다는 것

"뭘 그렇게 고민해" 

삶은 결정의 연속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어떤 옷을 입을 건지 결정하고, 세상 어렵다는 삼시세끼 메뉴를 매일 골라야 한다. 학업을 마치면 어떤 업계에 뛰어들지 고민하고, 어떤 회사에서 본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지 비교 분석한 다음 이력서를 제출한다 (물론 추후 커리어를 변경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보다는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그 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지도 결정해야 하는데, 필자 역시 이와 같이 수많은 결정을 하며 살아왔다. 어려서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고, 화학공학이라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전공을 배우며 석사 과정까지 수학했다.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기로 결정하여 TV에서나 나올 것 하얀 옷을 입고 반도체 클린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MBA도 다녀왔다. 유럽 생활을 꽤나 오래 했기에 더 이상 유럽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필자는 아시아를 매우 좋아한다)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매력적인 오퍼를 받게 되어 다시 한번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형수님은 필자를 프로 봇짐러라고 부른다). 지금은 한국인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룩셈부르크라는 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출근길에 오를 때마다 마주하는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한편으로 외롭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도전에 만족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필자가 걸어온 길에도 수많은 고민과 결정이 있었다. 물론 필자가 매번 좋은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친구의 권유로 산 주식은 이렇게까지 떨어질 수 있구나라는 것도 경험해봤고,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여 한동안 이불 킥을 했던 적도 많다. 그래도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일을 벌인 적은 없고, 다행히 수많은 결정 중 대부분 만족스러운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정은 개인의 삶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졸업장을 받고 사회에 나오면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이 생긴다. 특히 회사라는 환경은 (직업에 따라서 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내리기를 요구한다. 간단하게는 어떤 프로젝트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부터 복잡하게는 어떤 협력업체와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을 잘 내리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뭘 이런 것까지 보고해. 그냥 네가 알아서 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보고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들 잘 알 것이다. 어디까지 보고하고 어디까지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부터 어렵다. 혹시라도 모든 일을 보고하거나 결정을 부탁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 옆 부서 박 대리는 똑 부러지게 본인 업무를 해내는데 왜 너는 매번 질문을 하냐?라고 화내는 상사가 생길 수도 있고,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린 잘못된 결정 때문에 시말서를 써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작지만 어려운 결정들. 과연 아마존에서는 어떻게 결정을 내릴까?



첫 번째로 가장 흔한 방법은 결정을 상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아마존 입사 후 받았던 교육에는 매번 "escalation"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비슷한 단어로, 상사에게 어려운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업무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할 때 "타 부서에서 이런 일을 해달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너무 바빠.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내려놓고 이 일을 도와줘야 할까?"라고 상황을 설명하고 결정을 대신 요청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을 해도 된다는 문화가 꽤나 새롭게 다가왔다.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뭘 이런 것까지 물어보고 그래?" 혹은 "그냥 다하면 안 되나?"라는 역질문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과거 야근을 택하거나 주말에 업무를 했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escalation을 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매니저라면 본인이 담당하는 직원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혹시라도 잘못된 우선순위로 업무를 진행하다가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게 된다면 이 역시 매니저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매니저에게 메일을 전송하거나 매주 진행하는 1:1 미팅에서 보고하면 된다. 그러면 매니저는 "혹시 저 일을 하는데 네 시간이 30분 이상이 소요된다면 하지마. 그렇게 중요한 일 아니니까"라며 확실한 결정을 내려줄 것이다.


Escalation은 타 부서와 반대 의견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타 부서에서 A라는 방향을 주장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B가 효율적이고 더 뛰어난 고객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길 경우, 필자는 우선 주장을 밑받침해줄 데이터들을 찾는다. 비슷한 사례가 있는 데이터를 찾아 필자의 주장이 단순한 주장이 아닌 데이터가 말해주는 결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상대방에게 이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왜 이 방향이 맞는지 설득한다. 하지만 아마존은 반대 의견에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기에 상대방이 데이터가 있음에도 다른 이유로 반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필자는 매니저와 상대방의 매니저를 메일에 추가한 다음, "우리는 이런 이유로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다. 현재 이건 생각 대 생각 (opinion vs. opinion)인 것 같은데 너네들이 결정을 내려줬으면 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매니저들끼리 대화를 나눠볼 것이고 그래도 결정이 되지 않을 경우 다시 한번 escalation을 한다 (대부분 매니저 레벨에서 결정된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 서로의 주장을 펼치되, 상대방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처음 이렇게 일해야 한다고 배웠을 때, 어떻게 이렇게 작은 것까지 매니저에게 보고해야 해? 혹시라도 일을 못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을까?라고 고민했는데, 이런 상황을 몇 번 겪고 보니까 더 이상 나 자신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구나 싶어 지금은 escalation을 잘 활용한다



두 번째로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필자의 글들을 읽다 보면 아마존이 14가지의 리더십 원칙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 잘 알 것이다. 아마존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테마로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를 굳건히 믿고 업무에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리더십 원칙을 되새기며 "우리의 결정이 모든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했나"라고 돌이켜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하기 전 우리는 아마존의 기본 원칙인 "Customer obsession"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 제품을 론칭함으로써 고객들이 아마존에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질문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Bias for action"이라는 원칙이 있다. 21세기와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리더들은 빠른 결정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너무 고민하여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것보다, 제품을 론칭하는 것이 reversible 한 것인가 (언제든 원상복귀가 가능한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돌이킬 수 있는 결정이라면 (이런 결정 방법을 영어로는 two way door라고 한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다음 론칭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돌이킬 수 있다면 가만히 서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것보다는 시도해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을 읽다 보면 결정을 하기 전, 과연 이게 최선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처음에 이 원칙을 들었을 때 과연 얼마나 사용하겠어 라며 필자 역시 콧방귀를 뀌었지만, 실제로 이 원칙들을 통해서 배운 점들이 많고, 이는 지금의 아마존을 만들어준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이기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제프 베조스는 사이트에 적어놓은 14가지 리더십 원칙을 설명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다며, 오피셜 하게 올라온 문장들을 잘 읽어보기 권유했다 (링크: 아마존 리더십 원칙들).

     


마지막으로 본인의 직감을 믿어라.

어려운 결정을 하는데 왜 직감을 따라야 하는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의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정들을 했고 경험들을 통해서 (본인들은 모르고 있을 수 있지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직감이라는 게 자리 잡아있다. 물론 주식 투자에 대해서 직감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직장 내 인간관계 혹은 업무를 하면서 마주하는 선택들을 대할 때는 직감이 더 정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데이터로 이루어진 회사다. 수많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옵션들을 나열하고 최적의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직감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필자의 매니저는 초반에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좋은 프로덕트 매니저라면 가까이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어. 우선 데이터랑 가까워져. 아마존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있고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은 엄청난 힘이 될 거야. 두 번째로 고객들과 가까워져. 아마존은 고객을 위한 회사이기 때문에 네 제품의 고객이 누군지 알고 있어야 하고 그들의 소리에 항상 귀 기울여야 해. 마지막으로는 직감이야. 네가 프로덕트 매니저라면 때론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한 직감을 만들어야 해. 그리고 그 직감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을 하는 수밖에 없겠지".


예전에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Customers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we've shown them". 간단하게 말해서 고객들은 본인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차가 활보하던 시기에 지금 고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마차를 원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학생들에게 찾아가 원하는 통신장비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터치가 가능한 핸드폰이 아닌 문자를 보낼 수 있게 알을 조금 더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걸 이해한다면 필자와 비슷한 세대일 것이다). 이와 같이 때로는 데이터와 고객의 소리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에서 나올 수도 있고, 본인이 경험하고 고민한 끝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프로덕트 매니저라면 전적으로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적어도 결정의 20%는 본인의 직감을 섞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직감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상황을 만들어 직접 본인의 생각을 내세워 보는 것이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운전하는 사람의 느낌을 평생 알 수 없다. 주변에 있는 차들이 생각보다 거슬리고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뀔 것 같아 속도를 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전적으로 운전자의 몫이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실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겪으며 얻게 되는 직감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의 직감을 믿고 결정해라. 물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본인의 직감을 개선한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이 방법들이 실제로 아마존에서 대부분의 결정을 할 때 사용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된 결정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 사전에 경험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본인만의 지표를 만들어 지금 내리려는 결정이 본인의 신념에 부합한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수없이 넘어지며 깨달은 직감을 조금 더 과대평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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