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강 Feb 02. 2020

당신은 완벽주의자입니까?

"실수를 용납할 수 없나요"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일과 thㅏ랑을 모두 얻고자 정신없이 지내며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해주신 덕분에 "삼성인, 아마조니언이 되다"를 다음 주 출간할 예정이고, 조만간 결혼도 앞두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리고 늦었지만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난 참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대학교 시절, 리포트를 몇 장에 걸려 적다가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종이를 꺼내 들었다. 글씨를 이쁘게 적는다고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에 걸려 리포트를 작성했다. 대학교 시험이 끝나면 매번 "족보"를 만들었다. 영국 대학교에서 시험 준비를 하다 보면 가장 힘든 부분이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답안지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힘듦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문제 풀이를 다시 작성했다. 사실 어렸을 땐 나 자신이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실수를 하면 밤새도록 되새기다 잠들었고 막상 살던 방은 지저분했지만 일처리는 깔끔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지금에서야 난 완벽주의자가 아닌 그저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MBA 인터뷰 중 "당신의 단점은 무엇인가요"이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이 질문은 취업 면접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확실한 단점이 있지 않는 이상 꽤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흥미롭게도 내가 다녔던 학교 커리어 코치는, "어느 하나를 하더라도 너무 꼼꼼하게 하여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단점입니다"라는 답변이 가장 자주 등장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낮추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 자랑하는 답변인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이라 실제 면접에서는 비추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달리 보면 우리 주변에는 참 많은 완벽주의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폰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료를 새로 만들라는 박 부장도 있고, 결재 서류의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반려하는 타 부서 김 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완벽주의자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즐겨했다. 고등학교까지는 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열정을 갖고 했었는데, 그때마다 내 역할은 상대방과 몸싸움을 하며 중원을 책임졌다. 어려서부터 덩치가 큰 외국인들을 상대로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온 힘을 다해 달렸고 그들과 부딪혔다. 덕분에 엄지발톱이 성한 날 없었고 무릎엔 상처가 가득했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운동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축구를 즐겨하지 않지만 그때를 추억할 수 있게 아픈 무릎과 작은 상처들이 다리에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니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해 운동한 그 날들이 정말 옳은 행동이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 하는 건 좋다. 하지만 어렸을 적 내가 몰랐던 것은 매번 최선을 다한다고 그게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달리고 부딪힐 필요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땐 왜 조금 더 유연한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닌 조금 더 넓은 시야가 있었다면 과연 내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 중 리더는 최고의 기준을 추구한다는 Insist on the highest standards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더 좋은 질의 제품과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준치를 높인다는 말인데, 완벽을 추구하는 아마존의 신념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와 반대되는 원칙도 있다. Bias for action이라는 또 다른 리더십 원칙은 빠른 결정을 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무언가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다가 시기를 놓치는 것보다, 먼저 시도해보는 것을 높게 산다는 아마존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아마조니안들은 상반되는 원칙들 사이에서 갈 길을 잃어버린다. 이 많은 원칙 중 나는 과연 어느 곳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일까. 


금년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준비 과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다. 관련 부서는 내가 처음 제안했던 방식보다 더 좋은 방식이 있다며 몇 달에 걸려 대안을 준비했지만 결국 또 다른 부서들을 설득하지 못해 기존 방식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기준치를 높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모든 상황을 지켜본 입장에선 때론 완벽주의라고 믿는 생각이 독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겐 일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느 한 구석에  존재한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무리 완벽한 제품이라도 올바른 시기에 제출하지 못한다면 외면받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대안을 고려했던 시간만큼 첫 제안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벌써 제품을 완성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고객에게 충분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선제공 후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완벽주의자는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충분히 우수한 제품과 가치를 먼저 제공하고 차차 개선해나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살다 보면 내가 너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나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자책한다. 남들은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열중하는데 혹시나 내가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큰 그림에서 지금 내가 최선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완벽한 그림일 수도 있다. 우린 어려운 상황을 조금 유연한 모습으로 비켜가는 중 일수도 있고 더 큰 도전을 마주하기 전 재충전 중 일수도 있다. 2020년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번 해 내 목표는 "열심히 살자"가 아닌 "언제 달리고 언제 쉬어야 할지 그 흐름을 아는 현명함"을 배우는 것이다. 회사에선 실수해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고, 회사 밖에선 즐길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업무 메일 잘 쓰는 방법 3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