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토 산스가 가져온 반향과 특징
어디 보자...
마지막으로 발행한 글이 2022년 9월 28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2023년 3월 17일이다.
그동안 브런치에 소홀했던 이유는 다른 큰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회사 본업이 바빠져서였다.
초기 스타트업으로써 PMF를 찾고, 시장의 수요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피보팅까지 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지만, PM이 없는 조직에서 제품을 설계하며 매우 바빴고, 그 과정에서 기획과 개발 사이 중간에서 디자이너가 자연스럽게 제품의 중심을 잡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시니어이자 리드 포지션으로써 어떤 식으로 조직을 만져야 하는지도.
아무튼 6개월 정도 레거시 정리와 피보팅에 열과 성을 다했고, 어느정도 윤곽이 잡혀가 이제 살짝 시간을 낼 수 있게된 참에 브런치 연재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두부 이야기(가 아니라 노토 산스) 2편을 얼른 써달라는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이 있었던지라, 두부...가 아니라 노토 2편을 시작으로 다시 글을 써본다. 그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많은 소재를 모아둔 터라 당분간은 소재 떨어질 일없이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디자이너와 스타트업과 관련해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요청해주시라....!
구글의 의도와 목적은 명확했다. 역시 빅-기업답게 통도 크다.
모든 문자를 하나의 패밀리로 다 만든다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라틴 문자, 키릴 문자, 그리스 문자, 그리고 동아시아 3국 문자를 모두 다룰 수 있으며, 숫자와 이탤릭은 물론 다양한 굵기까지 완벽하게 모두 지원하는 하나의 문자 체계를 만든 것이다.
이름하야
No more Tofu Sans-serif,
Noto Sans의 시작이었다.
물론 구글이 혼자서 뚝딱뚝딱 만들 수는 없었다.
서체를 만드는 과정은 길면 몇년까지도 걸리고, 아무리 빨라도 반년 이상 걸리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게다가 전세계 문자를 모두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통일해야 하니, 서체에 대한 아무런 전문성이 없었던 구글로써는 더 막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도비와 손을 잡고 합작한 결과물이 바로 이 노토 산스다.
대부분의 국가는 알파벳 라틴 문자로 통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일 웃긴 지역이 어디냐면, 한중일 3국이 피터지게 싸우는 동아시아.
지리적으로는 이웃하고 있는데 언어와 문자가 아주 따로따로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인접한 유럽 국가들은 언어는 조금씩 달라도(심지어 언어의 어근이나 어원은 같은 경우가 많다.) 글자는 같은데,
이 놈의 동아시아 3국은 글자도 달라, 말도 다르니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딱지가 매우매우 많이 난다.
노토 산스 패밀리를 만든 후, 한중일 동아시아만 싹 묶어서 '자, 이 폰트로 다 퉁쳐!' 를 시전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China. Japan, Korea 의 앞글자만 따서 뽑은 CJK,
즉, Noto Sans CJK다.
이 폰트의 특징은 일본어와 한자, 한글을 모두 대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문자들이 서로 같은 디자인 언어를 공유하고 있어서, 섞어서 써도 매우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한글 문자를 담당한 건 국내 탑티어 폰트 파운더리인 산돌커뮤니케이션이었고,
어도비에서는 이 폰트를 Source Han Sans, 또는
Source(원천)를 뜻하는 한자어를 이용해 本근본 본, 본고딕이라 불렀다.
노토 산스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정도에서 일단락해본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계에 노토 산스가 가져온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전까지는 항상 유료 폰트를 구입해서 써야 했고, 쓰더라도 항상 작업물의 퀄리티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없었다는 문제가 실로 한번에 해결된 것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디자인 기준으로도 매우 균형잡혀있고, 어디에나 쓰기 무난한 서체였다. 즉, 어느 것 하나 튀는 게 없어 어디든 휘뚜루마뚜루 가져다 쓰기 매우 좋았다는 것이다.
2012년부터 개발에 착수해 2014년 공개된 후,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국문 고딕 서체는 모두 노토 산스가 평정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선스 걱정도 필요 없고, 완성도도 매우 높고, 누가 언제 어디서 수정해도 같은 퀄리티로 유지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범용성은 어떤 폰트도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브런치를 데스크탑에서 보고 계신다면 이것 역시 노토 산스입니다
물론 네이버 서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지만, 나눔고딕의 약간 아쉬운 그 곡선과 어딘지 모르게 대학 과제 냄새를 풍기게 하는 뉘앙스가 사용을 꺼리게 했다. 그리고 나눔스퀘어의 각은 세련되었지만 진중한 무드를 만들기에도 아쉬웠고.
지금 당장 웹과 앱, 인쇄물과 옥외 광고들을 살펴보면 5개 중 1개는 노토 산스로 되어있을 것이다. 한때 구글이 만든 OS인 안드로이드 기본 서체 역시 노토 산스였다. 갤럭시는 이제 삼성 산스라는 독자적인 폰트를 쓰지만...
노토 산스의 파급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우리나라의 디자인 사양을 표준화했고, 이전까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각종 무료 폰트로 점철되던 작업물들을 노토 산스 하나로 상향 평준화했다고 할 수 있겠다.
노토 산스 패밀리 전체를 다룰 순 없으니 Noto Sans KR 에 한해 다뤄보겠다.
노토 산스는 위에서도 계속 언급했듯이 엄청난 범용성과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 역대 최강의 오픈소스 라이선스 서체다.
노토 산스는 서체 자체의 특징도 매우 뚜렷해서 다른 서체들과 있어도 한번에 구분할 수 있다.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첫째로 꼭지획이 수직으로 그어진다는 것이 있다.
한글 서체들을 놓고 비교해보면 다 비슷해보이지만, 꼭지획이 수직인 서체는 몇개 찾아볼 수 없다.
꼭지획은 이제 우리가 '모자' 라고 부르는 뚜껑의 제일 머리 획을 말한다.
대부분의 서체들은 꼭지획을 가로줄기획에 수평이 되게 쓰는데, 노토산스는 수직으로 내리 꽂는다. 수직으로 긋는 폰트가 몇 없는데, ㅊ,ㅎ 정도만 살펴본다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외에도 곡선의 사용이 매우 적고 각이 선 형태의 획이라는 특징도 있다.
두번째로는 숫자가 매우 특징적이다. 그 중 1이 가장 악랄(?)하다.
처음 노토 산스를 마주했을 땐 1이 뭔가 멋지게 생겨서 많이 썼는데, 쓰다 보니 그 아쉬움이 생긴 부분이긴 하다.
1의 발받침이 세로 획에 수평으로 길게 뻗어 있다는 것이 제일 큰 특징이다. 만약 서체를 봤을 때 꼭지획으로 구분하기 힘들다면, 숫자 1만 찾아보면 된다. 1을 이렇게 쓰는 한글 폰트는 노토 산스가 유일하다.
(스포카 한 산스도 이렇게 쓰지만 이건 따로 얘기해보겠다.)
처음에는 잘 썼지만, 갈 수록 아쉬웠던 것은 다른 숫자의 1에 비해 발받침이 크다보니 시각적인 비중도 커지고, 또 일반적인 1의 자형이 아니다 보니 1로 인식하는 데 어려웠다.
그리고 세번째 특징으로는, 영문 글리프에 약간의 세리프가 있다는 것.
세리프는 글자 획의 끝 부분 장식을 나타내는 말로, 전통적으로 글자를 조형해 찍어내던 활자 시절에 주물에서 꺼낸 흔적이 그대로 남은 부분이다. 그 표현이 점점 이어져 와 '명조'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고딕 서체를 산세리프라고 부르는 이유는 Sans serif(without serif), 즉 세리프가 없는 이라는 뜻이어서다.
(참고로 Sans은 프랑스어로 without이다.)
나눔고딕과 산돌고딕과 비교해보면, 노토 산스의 영문 자형은 끝 획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휴머니스트 계열의 산세리프 서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서체 분류법은이주명 디자이너님의 브런치를 참고하시기를 추천드린다.)
이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깊게 가면 더 복잡하고 어렵지만, 딱 봐서 바로 파악하기 쉬운 부분들은 요 정도가 되겠다.
이렇게 보면 단점은 별로 없고 장점만 가득한 노토 산스처럼 보이지만,
세상 어떤 것도 완벽한 것은 없듯 노토 산스 역시 단점은 있다.
그리고 2020년대 접어들면서 더 가속화된 IT산업의 대폭발은 웹과 앱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고,
이 대격변 속에서 노토 산스의 한계점은 점점 더 명확해졌다.
그 부분은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