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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story Oct 31. 2017

재미있는 논문 이야기 (8)

서론 쓰기 (1)

5. 서론 쓰기


Episode 5 (서론 쓰기)


친구 따라 강남 가기 - 기대와 현실의 차이


❥(회상)


‘딱’, ‘탁탁-탁-딱’





흰 공이 노란 공을 비껴 치고 왼쪽과 위쪽의 2개의 쿠션, 오른쪽 중간 정도의 쿠션을 거쳐 빨간색 공에 정확히 맞는다. 우라(되돌려 치기)는 공의 위치에 따라서는 잘못 밀어 치면 쫑(키스) 나기가 쉬워서 주의해야 하는데 용케도 잘 피해서 맞는다. 


군대 갔다 와서는 이것저것 조심하고 생각해야 하는 알다마(4구)보다는, 별 생각 없이도 시원스럽게 후려칠 수 있는 죽방(3쿠션)을 선호한다. 그렇다 보니 알다마를 통해 급수를 올리는 일이 없어져서, 남들이 다마수(당구 급수) 얼마냐고 물어보면, “음… 그냥 300 쳐요”하고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군대 가기 전 200 쳤는데도 말이다.


대학 내내 써왔던 당구용어에 익숙하다 보니 ‘뒤 돌려치기’, ‘끌어치기’ 등 우리말 용어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지금도 ‘우라’, ‘식기’ 등의 일본식 용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그렇게 ‘말의 습관’은 무서운 것 같다. “이제는 우리말로 고쳐서 사용해야지….”


4학년 2학기가 시작되던 어느 초가을날… 대학 4년 내내 함께 당구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했던 상섭이가 당구를 치다 말고 “어이~친구! 난 대학원 가려고 하는데…. 사실 대학 4년이 다 지나도록 머리에 남는 게 별로 없고, 대학원에 가면 지도교수님도 생기고, 정말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지식과 경험들을 전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 좋은 생각이다! 나도 대학원 가면 너하고 2년은 더 당구 같이 치고 술 마시고 다닐 수 있겠다 ㅋㅋㅋ. 굿 초이스! 친구 따라 강남 한번 가보자~.”



❥(현실)


어제 늦게까지 논문들을 뒤적거리다가, 역시 늦게까지 책상 조명 아래서 눈을 비비고 있던 상섭이와 소주 각 반 병 하고 들어가서, 오늘 겨우 눈곱만 떼고 나와 하루 종일 수업 들었는데… 아직도 7시 반 수업이 남아있다. 10시나 돼야 끝나는데 당구건 술이건 시간과 체력이 받쳐줘야 하지…….



이번 학기에는 지도교수님 수업이 하나가 있는데, 춘계 학술대회에 학술위원장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해 휴강을 하시는 바람에 이번 주는 한 번도 못 뵙고 지나가는 것 같다. 


상섭이를 보면서, “너는 지도교수님이 뭔가 많이 가르쳐주실 것 같다고 대학원에 들어왔잖아? 많이 배우고 있냐?”


… 상섭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무슨 의미일까?”



❥(저녁 7시 반 수업에서)


같은 수업의 같은 조에서 꼴찌인 이유


월요일마다 돌아오는 사회현상분석 Studio 과목은 현장이슈에 대한 주제를 정하고 분석을 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에서는 매 주마다의 결과물은 페이퍼 형식으로 제출해야 한다.



2주 전 수업시간에는 각 조별로 주제를 발표하고 논의를 했는데, 담당 교수님은 결과를 가지고 각자 페이퍼의 서론을 작성해오라고 하셨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똑같이 논의를 했는데 왜 각자 다른 서론을 써오라는 거지? 누가 글빨(?)이 더 좋은지, 아니면 예쁜 폰트로 잘 꾸며서 작성하는 사람을 가리자는 건가?” 

우리 조 팀원들은 각자 적당히 알아서 제출하기로 하고 강의실을 나섰다.



❥(2주후 Studio 수업)

오늘 수업에 앞서 점수를 매긴 페이퍼들을 나눠주시는데 내 점수가 ‘C?’…. 화들짝 놀라서 우리 조원들의 점수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_- 우리 조원들 4명의 점수가 A 2개에 B 1개다. “아니 똑같은 주제에 대한 서론을 쓴 건데 왜 나만 ‘C’야? 우리 조에서 나만 미움 받은 거야?” 절망감이 몰려온다.




Tip 7. 서론 쓰기의 디테일에서 차이를 발견해보자!


위의 경우에서, 동일한 주제를 논의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서론을 쓰는데 왜 점수가 다르게 나왔을까? 바꿔 얘기해서, 그 교수님은 왜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제각기 다른 서론을 쓰라고 얘기했던 걸까?

위의 학생들이 “도로변 보행로의 2열, 3열 가로수가 사람들의 주거생활에 있어 만족도를 높여줄 것이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Case 1> 나는 지난 시간에 논의한 내용을 충실히 기술하면서 실험보고서 작성하듯이 작성을 했다. 간단히 말하면, 현상의 사실(Fact)적 측면에 대해서만 있는 그대로 기술한 것이다. 


Case 2> B를 받은 태식이는 “우리가 왜 이 주제를 논의하는가?”라는 배경에 대해 신문기사인지, 다른 논문에서 발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거로 사용했다. 

“도시에서 2열, 3열 가로수가 공기를 정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풍부한 가로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가로수가 있는 길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등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 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Case 3> A를 받은 은정이는 태식이처럼 주제의 중요성에 대한 논거를 담으면서도 이를 다시 토론으로 끌어와서, “도로변 보행로에 설치된 가로수를 2열 또는 3열로 배치할 경우, 사람들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아직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Hypothesis)에 불과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관련 연구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가설 검증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예를 들어, “가로수가 많은 길에서는 산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나무는 주간에 산소를 내뿜는 반면 야간에는 이산화탄소를 내뿜어서, 아침에는 대기의 나쁜 공기들이 지면으로 모여 주민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이러한 주민들의 건강악화는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보도에 가로수가 울창해지면, 운전자들의 시야를 방해해서 교통사고 발생률이 증가한다.” 등의 반대 논거를 제시하면서 논의를 풍부하게 했다. 


Case 4> 마지막으로 A+를 받은 우석이는 앞에서 얘기한 주제의 논거 강화, 가설의 설정·논의 등에 추가하여, 가설적 논의에 대한 결과 예상 및 자기주장, 그리고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항 등이 포함되었고, 본 연구의 분석방법 및 진행방향, 자료수집의 어려움에 따른 연구의 한계 등을 추가했다. 

“2열, 3열 가로수의 배치는 다소의 부정적인 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한 이유들에 의해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되며, 다소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미세먼지 주의보 및 전광판 설치’, ‘노약자들이 이른 아침이나 야간에 운동하는 것에 대한 주의를 담은 홍보책자 발간’,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는 도로 부분 가지치기의 주기적 실시’ 등의 정책적 조치들이 실행된다면, 2열, 3열 가로수가 가지는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예상을 담았다. 

또한, 분석방법에 대해 서울시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 사람들의 방문이 많은 강남역 주변, 가로수길, 신천 등의 2열, 3열 가로수가 있는 주요 가로들을 중심으로 사용자들의 삶의 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활용하며, 분석모형으로는 정성평가 및 정량분석 모델링을 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 서울시 전체 25개 구의 주요 가로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석을 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2열 가로수와 3열 가로수가 있는 가로들과 그렇지 못한 가로들을 대조군으로 설정해서 조사가 가능했더라면… 보다 유용한 연구결과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자료수집의 비용과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본 연구에서는 연구의 한계로 남겨둔다”라고 하며 끝을 맺었다.


위의 경우들을 비교해보면서,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페이퍼의 서론을 써왔는데… 왜 나만 점수가 좋지 않을까?”에 대해 원인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 만이 논문의 정상(?)에 도달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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