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태권도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개학한 첫날부터 태권도를 하면 학생들이 힘들어하겠지?'
약 한 달간의 여름방학이 끝났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만큼이나 가르치는 선생님도 방학을 떠나보내기 아쉽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내가 선생이니까. 방학 동안은 학교를 다닐 때와 다른 생활패턴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학기가 시작하면 적응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는 학생과 선생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첫 수업은 교실에서 하기로 결정이다. 수업 내용은 2학기 오리엔테이션과 '태권도' 주제의 글쓰기 혹은 그림 그리기로 정했다. 태권도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이 담긴 글과 그림은 연말에 작성해야 하는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명분과 실리을 모두 챙기는 그야말로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수업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한 번 더 떠올리고 고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미 태권도 수업을 경험한 학생들은 대체로 '재밌다', '덕분에 친구와 친해졌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해냈을 때 성취감을 느꼈다.' 등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태권도 수업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물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제출하라고 하면 귀찮아하는 학생도 있다. 글과 그림에 부담을 느끼고 아예 포기하고 안 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낫기 때문에 진입장벽을 낮춰 줄 필요가 있다.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4컷 만화, 3행시, 마인드맵, 캘리그래피 등도 허용하기로 한다.
첫 번째 반부터 멋진 작품이 나왔다. 글짓기 수업이라는 사전공지도 없었고 30분도 주어지지 않은 짧은 시간에 쓰인 글이다. 정보를 검색해 볼 인터넷과 스마트폰도 제공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권도 전공생도 모를만한 내용을 학교 수업으로 태권도를 처음 접한 학생이 써냈다니 놀라웠다. 글의 내용을 어디서 봤냐고 물으니 인터넷에서 봤다가 관심이 생겨서 찾아봤단다. 기특한 녀석. 무엇보다 태권도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했다가 정성스럽게 글로 써서 냈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학생의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에는 '태권도의 신체적 활동과 더불어 역사와 사회 현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학습하여 글로 정리해냄.'과 같은 내용이 적힌다. 짧은 시간에 검색도 불가한 상황에서 쓰인 글이라 주장에 대한 근거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별 기대 안 하던 선생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한 글이었다. 학기 첫 수업부터 가르치는 보람을 주다니. 두고 봐라. 2학기에는 보다 즐겁고 행복한 수업 시간을 만들어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