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닭강정을 먹고 싶다는 딸의 부탁으로 문제의 가게로 가는 길에 들었던 생각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반 모임, 학원 행사가 끝나고 피자, 치킨 파티를 할 때 치킨이 아니라 닭강정이 나오는 걸 보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이 닭강정의 존재를 알게 돼서 몇 번을 사러 갔다. 올 때마다 최소 30분, 길면 1시간은 기다릴 각오를 하고 간다.
이럴 수가, 오늘은 내가 첫 손님이었다! 금방 바로 해주신다는 이야기에 이게 뭐라고 아주 기뻐서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자랑했다. 이런 기쁨은 잠시 후 밀려드는 손님 덕분에, 더 우쭐해졌다. 줄을 적게 서게 되었다는 미안함(?)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게 되었다.
이곳은 '엉짱윤 치킨'. 닭강정을 파는 가게다.
│3無: 배달, 전화예약, 직원이 없다
우선 이 가게, 찾기 어렵다.
어찌어찌 검색하고 지도를 보고 찾아와도 '엉짱윤'이라는 큰 간판이나 '치킨, 닭강정'을 써놓은 흔적이 없다. 지도를 보면 길가에 있어서 금방 찾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이 동네를 꽤 살았던 나도 처음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정면에는 안 보이지만 전면 통유리 왼편에 마치 가정집의 명패처럼 간판이 있긴 하다.
문 옆에 조그만한 간판이 있긴 합니다^^
다른 가게와 비교하자면 이 가게는 흔하디 흔한 3가지가 없다.
1.No 배달 배달 서비스가 없다. 대신 택배 서비스가 있지만, 당일에 진행되는 xx 배송은 없다. 기본적으로 찾아와서 그 자리에서 주문하고 포장으로 받아가야 한다. 택배 주문도 인스타에서 판매 공지를 확인하고 주문해야 한다. 세상 이리 불편한 서비스도 없을 것 같다.
2.No 전화예약
전화예약이 없다. 예약은커녕 전화가 안된다. 네이버를 찾아도 전화번호는 안 나오고 심지어 홈페이지에 있는 전화 걸기 버튼을 눌러도 없는 전화번호라고 나온다.
찾아와서 주문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인스타를 계속 보면서 택배 배달을 알아봐야 한다.
예약이 불가하다고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3.No 직원 사장님 말고 다른 직원이 없다.
혼자 주문&계산&요리&포장까지 사장님이 모두 직접 한다. 웨이팅 이런 거는 그냥 적어놓고 때가 되면 낭랑한 목소리로 손님을 불러주신다.
이젠 적응돼서 그런지 지금은 딱히 불편한 점이 없다. 거의 주문, 호출만 불러주는 언택트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가게도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옆에 카페를 가보면 공간이 적은 곳은 아닌데, 대부분의 공간을 조리로 활용하고 있고 손님 응대하는 공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조리대 옆에 공간에 도와주는 분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강연을 보니 누가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조리공간 겸 예약&계산 공간. 사장님의 바쁜 뒷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선입선출이 원칙, 다 떨어지면 이제 안 판다.
│평가: 기가 막히게 잘 설계된 4P!
가게 별점을 매겨보긴 했지만, 사실 이런 평가가 무의미하다. 맛을 위해 모든 걸 버렸다?? 처음엔 불편하고 다소 무뚝뚝한 가게 같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하다.
-맛: ★★★★★
-가격: ★★★★★ -분위기: ★★★☆☆
-서비스: ★★★☆☆
-위치: ★★☆☆☆
무엇이 이 가게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마케팅 전공하신 분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마케팅 기본 4P를 기가 막히게 잘 운영하고 있다.
1.Product(상품) 이곳의 핵심, 맛!! 지금까지 먹어본 닭강정 중 Best다.
속초나 전국에 유명한 닭강정들이 많고, 프랜차이즈 전문점도 많지만 튀김의 바삭함과 소스 맛이 여기만큼 훌륭했던 곳이 있나 싶다. 뭐가 그리 차이가 있나 싶긴 한데, 튀김과 소스의 차이가 있다. 전체적인 맛은 닭강정과 양념치킨의 중간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두 가지가 뭐가 차이가 있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닭강정은 특유의 조림 과정이 있고 양념치킨은 그냥 양념을 버물린 것이라고 한다(오오~~).
그런데 다른 닭강정처럼 물엿 맛에만 의존한 게 아닌 적절한 밸런스가 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며칠 뒤에 먹어도 괜찮을 소스를 3년 걸려 개발했다고 했는데, 닭강정 남은 것과 남은 소스로 떡꼬치를 해 먹어 봤다. 아주 훌륭한 맛!! 3년간 개발한 소스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양이 푸짐해서 4인 가족 대(大)를 하나 먹으면 약간 아쉬울 정도로 양이 푸짐하다. 문제는 보통 치킨을 시키면 매운맛과 순한 맛을 반반 시키거나, 한 마리 + 반 마리리를 시키는 편인데, 여기엔 반반 옵션이 없다.
이러다 보니 두 개를 시키게 되고, 중(中)과 대(大)가 2천 원 차이가 나다 보니 대부분 대(大)를 2개 시키게 된다. 대부분 그렇게 두팩씩 잘 사가는 걸 보니 이것도 객단가를 높이려는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싶다. 포장 패키지에 가장 최적화된 게 대(大) 기준이라 가격도 이쪽을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다.
배민상회 패키지를 쓰신듯
3.Place(장소) & Promotion(판촉) 가게 위치는 S, A급이 아니다. 오목교역, 목동 역세권에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목동 대단지 내 있는 주요 상가들 속에 있지도 않다. 이를 상쇄하는 것이 블로그, 인스타를 활용한 D to C 마케팅을 기가 막히게 잘하신다. 특히 지금은 인스타로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한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인스타 해시태그에 많은 포스팅이 달려 있다.
대표님의 배민 강연을 보니, 초기엔 블로그로 전국 단위를 커버했다고 한다. 지금은 인스타를 하면서 글로벌하게 고객과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고 꼭 장사하시는 분들은 이용해보라고 조언하신다. 블로그와 인스타 둘 다 하시기 힘들어 지금은 인스타에서 모든 공지가 나간다고 친절하게 네이버 블로그에 공지되어 있다.
인스타 팔로우는 6.3만 수준인데, 광고나 별다른 인스타 이벤트 없이 이렇게 제품만 알려서 모은 고객 치고는 엄청나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지를 잘 활용하고 있어서 카톡이나 SMS 비용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운영하는 인스타에 택배 주문이 가능하다는 공지가 뜬다. 보통 4~5일 뒤 수령 가능하다는 공지와 함께 홈페이지 택배 주문도 같이 열리며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Sold out으로 표기되어 있다.
처음엔 사이트도 불편하고 기다렸다 사는 것도 무척 불편하긴 했는데, 자연스럽게 주문하기 전에 인스타 방문> 공지 확인> 홈페이지 주문하는 과정이 익숙해졌다. 카페 24 사이트도 저렇게 엉성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정보나 결재는 가능하다. 이것도 콘셉트인가?
결재까지 기본 기능이 충실하게 들어가 있다. 다른 쇼핑 중심의 사이트랑 비교하면 솔직히 편리하진 않다
택배 배달로 주문한 제품을 먹어보았다. 맛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갓 튀긴 닭의 식감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먹어본다면 가게에서 주문해서 먹는 것이 더 나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택배와 함께 날아온 닭강정 두팩!
│총평: 시스템을 넘어서는 프로세스!
이곳은 프로세스다.
요즘 장사, 요즘 사업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모두 들어가 있되 대부분의 요소들이 적정성을 유지한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그 외의 불필요한 점을 최소화한다. 물론 모든 요소에서 탁월함이 있다면 훨씬 더 편할 것들이 있지만 줄 서서 먹는 닭강정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의 강력한 팬덤이 이를 상쇄한다. 프랜차이즈를 하라고 하는 문의도 상당이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혼자 다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몇 번 경험해보면 이 가게에서 제안하는 프로세스가 불편하지 않다. 불필요한 것, 무리수를 두지 않을 수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는 대표님은 고수다.
그래서인지 제품은 기본이고 마케팅도 너무 잘하신다. 감히 평가를 한다는 게 어불성설일 정도지만 마케팅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DtoC 마케팅이다.
1. 제품에 집중하고, 이를 고객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라. 2. 비용 없이 손품 팔아서 할 수 있는 채널(SNS, 블로그 등)은 이미 있다. 적극적으로 활용해라.
│마치며: 강연 두 편을 확인하시라
대표님과 가게를 검색하면 두 가지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세바시에서 한 강연과, 그 이전으로 추정되는 배민 아카데미에서의 강연이 있다. 두 가지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긴 하지만 세바시 강연이 좀 더 일반적인 고객 대상이고, 배민 아카데미 영상은 장사/사업가를 위한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