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Y는 큰형님으로 모셔라, 모나미 OLIKA
집앞에 대형 문구점이 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알파문구나 오피스 디포와는 달리 매장도 크고 다양한 물건들을 갖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용 문구류와 수업에 필요한 교구를 비치하고 있어 애들이랑 일주일에 한번은 들릴만큼 친근한 장소가 되었다.
여기를 오게되면 최근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아이템이 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몇개월 전에만 해도 액괴(액체괴물), 포켓몬 카드가 매장의 가장 핫한곳과 계산대 근처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갖가지 종류의 스피너를 볼 수 있다. 이걸 자세히 보고나서 애들과 대화 주제로 삼는다거나, 가끔 소소하지만 서프라이즈 선물로 사주기도 하면서 일상의 재미를 느끼곤 한다.
항상 나의 관심을 끄는 곳은 바로 필기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면 필기할 일이 줄어서 필기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줄어들줄 알았지만 오히려 양보다 질쪽으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펜3~4개를 작은 필통에 담아주고 사무실이나 집에서 사용하면서 펜에 대한 편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나오는 펜을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쓰는 사람들을 보면 문구점을 들러 한번씩은 써보곤 한다.
최근에 다시 노트 필기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에버노트와 일반노트를 두가지 기준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1.에버노트: 업무관련 기사 클리핑 / 회의록이나 메일로 베포해야할 것 정리
2.일반노트: 일기 / 업무관련 메일 내용요약 / 장단기적으로 해야할 것 / 보고 준비 등
확실한건 노트 필기를 습관적으로 하다보니, 일별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과 액션을 했는지를 머리속에 리마인드하기 편했다. 일반노트에 썼던걸 다시 보다보니 필기 가독성과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3~4가지 펜을 한 주제? 단략? 마다 돌아가면서 쓰고 있다. 하루하루 쓰는 몇가지 주제의 내용을 색상으로 폴더관리 하듯이 쓰기 시작했다.
최근 회사 노트는 대부분 SARASA GellY Rolll과 연필로 쓰고 있고, 집에서 가끔 쓰곤하는 일기는 만년필과 연필을 쓴다. 사실 만년필을 선물 받아놓고는 쓸일이 많지는 않았다. 캘리크래피를 배우고 싶어 회사에서 하는 1일 강의도 듣기도 했고, 글씨체를 보고 따라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만년필을 가장 많이 쓰게되는 순간은 매일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러다보니 다른 어떤 루틴보다 더 강력하게 몰스킨이나 만년필/연필을 사용해서 정리하고 있다.
세가지 브랜드의 만년필을 갖고 있다. 라미 2개, 워터맨 1개 그리고 파버카스텔. 주로 쓰는건 라미와 워터맨이다. 두가지는 그냥 막 쓰려고 직접 골라서 샀고, 파버카스텔은 퇴사 선물로 받았다. 가는 펜을 좋아해서 두개는 EF촉을 샀는데 만년필은 원래 F촉으로 질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F촉으로 받은펜을 여러번 손에 익혀보려 써 봤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익숙하진 않다. 자꾸 굵은 글씨가 신경쓰여 생각보다 글씨 쓰는데 집중력을 빼았기는것 같아 잘 쓰지 않는다.
몇주전 부터 문구점 필기구 영역 옆에 생에 첫 만년필이라는 제목으로 엔트리급 만년필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 브랜드 제품도 몇개 보였고, 한국 브랜드는 모나미가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내 눈을 사로 잡았던건 가격! 대부분의 제품들이 3천원(정확히) 이하에 형성되어 있었다. 3천원이면 보급형 펜보다 살짝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만년필로는 말도안되는 가격이 아닌가? 게다가 이 펜들이 대부분 리필 잉크까지 별도로 구매할 수 있어서 한번 쓰고 버릴 필요가 없었다.(펜텔 Tradio 리필의 가격을 생각해보면...ㄷㄷ)
│Pilot: '쁘띠 만년필' - 가격 3천원, 기본 검정, 파랑, 빨간색 外 보라색, 연두색 등 특이한 색상도 판매
│모나미: 'OLIKA 만년필' - 가격 2.4천원, 다양한 색상 + 리필 보유
│캔두: 가격 2천원, 카트리지가 무려 4개나 들어있다
결국 모나미 OLIKA 검정색을 하나 구입했다. 투명 아크릴로 되어 있는 케이스에 카트리지가 두개 들어있다. 처음에 잉크가 들어가있지 않으므로 간단한 조립 과정은 필요하다.
조립하고 뚜껑을 끼워봤다. 자주 쓰는 라미, 워터맨, Gelly Roll과 비교해보니 길이는 적당해 보였다. 두께는 라미보다는 좀 얇고 워터맨보다는 두꺼웠다. 어쩔수 없이 무게가 좀 가벼운 느낌이 들긴 했지만, 손잡이에 고무가 달려 있어 미끄럽거나 손에서 헐거워진다는 느낌을 주진 않았다.
글씨를 써봤다. 처음 쓰는 필기감은 무척 부드럽다는 것, 글씨가 술술 써진다는 느낌이었다. OLIKA보다 비싼 펜텔 TRADIO를 쓰는 느낌과 비교하면 부드러움의 차이는 극명하다. 다만 만년필을 F촉이 아닌 EF촉을 선화하는지라 펜 글씨가 굵었다. 그리고 좀 더 얇은 종이에서는 빠르게 쓰지 않으면 약간의 번짐도 볼 수 있었다.
며칠동안 다이어리에 펜을 써보니, 메인펜으로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편애하는 EF촉과 비교해보면 F촉으로 적응하기가 여전히 쉽지는 않았다. 대부분 F촉을 선호한다고 들었고 보급형 만년필이 모두 F촉인데 차라리 과감히 EF촉으로 나왔다면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를 통해 마케팅으로 소구할 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3천원 미만으로 만년필을 쓸 수 있다는게 모든 단점을 상쇄해준다. 특히 아무리 가성비라고 해도 리필 잉크 별도 판매와 다양한 색상을 구비해놓은걸 보면, 모나미에서도 그냥 한번 팔고 말 제품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다음 버전은 EF촉!!!)
가성비의 Game Rule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어떤 가성비 뛰어난 제품이 생겨날지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가성비 만년필은 LAMY아고 생각했는데 , OLIKA를 쓰고 나니 갑자기 형님급으로 격상되는 듯 하다. 이렇듯 가격과 품질을 무기로 시장에 뛰어드는 제품들 때문에 기존 제품들의 포지셔닝이 다 애매해지는 순간이 이미 와 있다. 이미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 더 사게끔 설득하기 위한 것이든, 가격때문에 사지 못해고 있던 대기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기업의 치열한 노력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제품이 가성비를 무기로 고객에게 다가오게 될 것인가? 흥미로운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