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이 주는 감동을 경험하다
양평은 참 만만한 곳이다. 서울에서 막혀도 어지간하면 두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라는게 심리적으로 그런 느낌을 준다. 서울에 와서 가족여행이나 워크샵 장소로 여러번 갔던 곳이라 참 익숙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서울 근교 시골이라는 느낌과 바베큐, 캠핑에 대한 추억으로 사람들과 나눈 추억이 떠오르지 여행지에 대한 추억이 크지 않은 곳이다.
이번 여름 휴가를 양평으로 가게 되었다. 해외를 나가는것도, 차를 오래타는 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체력을 고려해서 서울 근교에 2박 3일 가능한곳을 물색하게 되었다. 몇몇 부띠끄 펜션도 알게 되었지만, 편안한 휴식같은 여름 휴가를 가고 싶어 지인의 추천을 받은 곳이 '양평 생각의 집' 이었다.
│House of Mind: 펜션에 대한 기대와 생각
여기를 알아보면서 맘에 들었던 건 크게 세가지다.
①빈티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축
②객실에 있는 히노끼탕
③애들이 놀 수 있는 수영장
펜션 공간이 전체적으로 크지 않았다. 평지가 아닌 비탈길에 건축물을 배치하다보니 공간에 여백이 느껴지는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흡사 공사장을 방불케하는 느낌은 일관성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저 콘크리트 느낌이 거칠지만 묘한 매력을 준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적절히 가린 외벽과 골목을 연상하는 사잇길들이 투숙객들에게 독립된 공간에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손잡이가 없는 옥상을 올라가면 펜션 전체를 볼 수 있는데, 위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대스런 느낌이 아닌 수평적인 느낌을 준다.
묵었던 '자스민' 객실의 경우 복층 구조라 밖에서 보면 2층집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은 뒤쪽에 있고, 거실 앞쪽으로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프라이버시 방해를 받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실내는 냉장고, 싱크대, 에어컨 등 일반적인 펜션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화장실은 세면장이 바깥에 나와 있어서 손씻기나 화장대로 쓰기 편했고 화장실은 습기가 잘 빠지지 않은 걸 빼면 기본적인 수준이었다. 실내는 나무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습도가 높아서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아야 했다.
그리고 온가족이 좋아했던 히노끼탕! 온수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있긴 했지만 저녁먹고 온수를 틀고 온가족이 반신욕을 즐겼다. 뜨거운 물은 절반만 받을 수 있어서 몸을 담글 정도는 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땀을 흘릴 정도였다. 처음엔 탕이 작아서 실망스러웠는데 애들을 포함해서 5명이 앉을수 있는 공간이었다.
2층이 침실 역할을 하는데, 침대방과 아래와 같은 방바닥에 잘 수 있는 두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6인까지 묵을 수 있는 방이었는데 8명이 자기에도 충분한 크기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1층에서 보내고 잘때만 2층에 왔다. 침대방은 더블사이즈 1개와 TV가 있었지만 옆에 바닥방은 벽에 옷장하나 없을만큼 심플 그자체였다.
야외에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식당공간이 있었다. 여섯명이 바깥에서 식사하기 부족하지 않은 테이블이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실내 식탁 의자가 여섯개가 아니라서 대부분의 식사를 여기서 했다. 의자가 여섯였던것 뿐만 아니라 슬리퍼도 여섯개가 비치되어 있어 신발을 여기저기 옮겨다닐 필요가 없었다. 사장님과 관리하시는 분의 세심함을 느꼈다.
그리고 수영장! 홈페이지에서 봤을때는 아주 큰 수영장일 줄 알았는데 아담한 편이었다. 투숙객이 그다지 많지 않다보니 그렇게 붐비진 않았다. 돌고래 튜브가 있어 물놀이 하면서 놀기 좋았다. 그리고 구명조끼와 튜브도 빌릴 수 있어서 안심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다만 야외이다보니 곤충들이 떠다녀서 그걸 없애느라 같이 노는시간 반, 뜰채로 청소하는 시간 반이었다. 수영장 앞엔 편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거기서 커피나 캔맥주를 마시는 부모님들이 많았다.
자주 들리던 로비에는 음료를 시켜먹을 수 있었고, 사무 공간이 같이 있었다. 직원분들은 아주 친절했고 건물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했더니 테이블에 있는 맥에 다른곳에 있는 생각의 집을 좀 더 보여주셨다. 이곳에서 아침 식사로 주먹밥을 줬는데 썩 맛있진 않았다. 차라리 일본에 아침/저녁을 주는 펜션처럼 토스트와 커피를 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터줏대감 고양이가 두마리 있었다. 한마리는 까칠해서 잘 나타나지 않았고 자주 보이던 콩이는 로비에 나와있긴 했지만 사람을 피하지도 활발히 놀지 않았다. 애들이 관심을 끌기위해 여러번 다가갔지만 3일동안 그다지 친해지지 못했다.
입구에는 글램핑 구역과 펜션 구역이 나눠져 있었다. 글램핑도 재밌는 구조로 되어 있어 다음에 한번 더 들려보고 싶었다. 모양도 특이했지만 각 글램핑마다의 창문이나 입구 위치를 달리 배치해서 펜션만큼의 독채 느낌은 아니지만 최대한 투숙객의 독립된 공간과 시간을 주려 노력했다.
│차경 - 자연의 경치를 빌리다
3일동안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펜션 곳곳에서 보는 경치들이 매력적이었다. 처음엔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처럼 건물 사이에 비치는 뿌연 자연 빛감이 눈에 들어오더니 계속 보다보니 그런 느낌 보다는 마당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경관의 느낌이 강했다. 조경 전공자인 와이프와 이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한국의 전통 건축 기법에 '차경'이라는게 있다고 했다.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풍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에서 처럼 야외에서 식사를 하다가 혹은 차를 마시다가도 그 느낌에 한참 경치를 바라보게 되었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한테는 새로운 체험이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8963&cid=58767&categoryId=59123
설계하신 분이 누군지 궁금해서 구글로 찾아봤다. 민규암 건축가가 설계한 곳이라고 하는데, 이 건축물로 상도 많이 받고 유명해지신 듯 하다. 생각 속의 집을 설계할 때, 단절과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또한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기사를 보고 찾아본 것이 아니라서 인지 곳곳이 자연과의 호흡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야기에 더 공감했다.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tnu=200610100017&catecode=Q
│마무리 - 겨울을 기다리며
분주함이 가득한 여름휴가는 아니었다. 그리고 건축물, 히노끼탕, 수영장이 그렇게 인상이 강하게 남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과 즐거운 시간, 책한권 완독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 그 자체에 대한 기억이 강렬히 남았다. 양평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됬다.
생각의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바쁘고 복잡한 하루하루 이지만 아침에 적어도 30분은 그런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이번 여행동안 그 생각의 시간이 주는 물리적인 양과 질에 흠뻑 만족해서 적어도 분기에 한번은 이런 시간과 이벤트를 가져야 겠다.
이곳의 가을이나 겨울은 어떤 느낌일까? 그때 나의 생각의 시간은 또 어떤 느낌을 가져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