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행위
01.
우리 집에는 손톱깎이가 서너 개쯤 된다. 대부분 홍보물품으로 어디선가 받아온 것들인데, 보통은 다른 것들과 세트로 묶여있다. 초록색 천 위에 올리면 영락없이 수술 도구같이 생겼다. 지문이 묻어있지 않은 것들은 번쩍번쩍 광이 나고, 날은 반달 모양으로 완만한 곡선형이다. 제 기능만 하는 것은 작고 가볍지만, 맥가이버 칼처럼 이런저런 옵션들이 달린 것은 묵직하다. 쓸만한 게 있나 부채처럼 펼쳐보아도 그다지 필요성은 못 느낀다. 뭐든 자기 몫 하나라도 잘 해내는 게 최고다.
02.
나는 바짝 깎은 손톱을 좋아한다. 네일아트에도 흥미가 없다. 짧은 손톱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보단,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다. 그러니 손톱이 좀만 길어도 너무 불편하다. 주먹을 쥐거나 핸드폰을 할 때 손톱이 탁탁 닿는 느낌이 거슬린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손톱을 깎아줬다. 엄마가 깎아준 기억은 희미한 걸 보니 우리 집 손톱 담당은 아버지였나 보다. 지금도 섬세함을 요구하는 집안일들은 엄마보다 아버지가 더 잘 해낸다. 오구가 물어뜯은 이불 감쪽같이 꿰매기, 화장실 물때 제거 같은 일 말이다. 아버지가 손톱을 깎아줄 때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내가 “도깨비 해줘”라고 주문을 넣으면 아버지는 집중력을 발휘해 손톱 양쪽을 도깨비 뿔처럼 만들어준다. 글로 설명하려니 어려운데, 아무튼 섬세한 작업이다. 힘 조절이나 각도 설정을 잘해야만 뿔이 온전히 달린 도깨비를 만날 수 있다. 갑자기 추가된 이상형인데 ‘손톱 잘 깎아주는 사람’ 이면 섬세함과 다정함은 어느 정도 증명된 것 같다.
03.
중학생 때 화장실에서 손톱을 깎은 적이 있다. 130 bpm 정도의 짧고 빠른 리듬으로 손톱을 잘라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토끼 눈을 한 친구가 “너 도대체 손톱을 어떻게 깎는 거야?”라고 물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손톱을 깎는 속도, 자세, 방법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손톱 깎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나는 한 손가락도 여러 번에 나누어 자르는데 친구는 마치 과일 껍질을 끊기지 않게 깎는 것처럼 자른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처럼 깎으면 비교적 소리가 작다. 나는 이왕 깎는 거 메트로놈처럼 경쾌하게 소리 나는 게 좋다. 규칙적으로 날이 맞물리며 손톱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더욱더 개인적인 장소에서 깎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손톱을 깎는 행위는 생각보다 은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