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야, 너네는 4학년 2학기가 세계일주잖아!"
매년 여름, 삼군사관생도(해사, 육사 그리고 공사 생도)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1주일 정도 교류행사를 한다. 다른 제복을 입은 모습에 어색해하는 분위기도 잠시, 고된 사관생도 생활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에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면서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서로 나누게 되는데 '어느 학교가 더 빡센가'로 시작한 각 학교의 자부심 경쟁은 '어느 학교 선배가 더 악랄한가'의 선배 뒷담화로 한 단계 발전되어 간다. 서로 핏대 높이면서 여러 사례들을 제시하게 되는데 보통 우리 해사가 선진공군, 강한육군을 이기고 더 빡센, 즉 덜 선진적인 학교에 가까워진다(반박 시 육공군생도 말이 맞음). 이때 반격기로 사용되는 것이 순항훈련이라는 이름의 세계일주다.
"아니, 훈련이라구 훈련!"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훈련이라고 말하면서도 아까의 핏대 세우던 모습과는 달리 조금은 누그러진 우리 해사생도들이었다. 우리에게도 순항훈련은 1학년 때부터 로망이었다. 새하얀 해군 제복을 입고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세계 3대 미항 시드니로 입항해 호주 청정우 스테이크를 썰고,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놀다 제복에 반한 아리따운 여성을 만나는 그런 상상. 물론 나는 해본 적이 없긴 하다. 크흠, 어쨌든! 3년 선배, 2년 선배 그리고 1년 선배들이 순항훈련을 떠났고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순항훈련이 어느덧 다가왔다.
생도사(기숙사)에서 짐을 챙기고 충무공이순신함과 대청함에 편승하여 짐을 풀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진짜 세계일주를 떠나는 4학년 2학기 만을 바라보며 생도생활을 보냈었는데 ‘진짜 출발하는거 맞나?’ 싶었다. 며칠 간의 군함 적응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출항의 날이 밝았다. 참모총장님께 순항훈련 출항을 신고하고 부두로 돌아왔을 때, 부두에서는 우리를 위한 군악대 연주가 시작됐다. 색소폰 소리를 BGM 배경음악 삼아 우리들은 가족들과 포옹을 하며 마지막 안부를 전했다.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부모님의 걱정 한 스푼과 선물 제대로 된 거 사 오라는 형제/자매들의 압박 한 스푼을 챙겨 우리들은 배에 올랐다.
배에 올라 좌현 현측에 도열을 마치자 이제야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약간의 적막과 고요한 분위기가 바다에 흐르던 그때, 전단장님께서 출항 지시를 내렸다.
“순항훈련전단 출항”
"출항! 현 시각을 기하여 정박당직에서 항해당직으로 전환! 총원 차렷! 좌현 경례준비! 경례! 필! 승!"
부두에서 홋줄을 걷어내자 군함이 부두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부두와 점점 멀어지며 손을 흔들고 있는 가족들에게 경례로서 인사할 때가 되어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는구나. 한동안 한국땅을 밟을 수 없겠구나’ 설렘과 걱정 그리고 뭉클함이 한데 섞여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렇게 우리의 4학년 2학기, 105일간의 세계일주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