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세계일주]
쌀쌀하고 따뜻했던 입항환영행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블라디보스톡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 사관생도들은 3~4명씩 조를 나누어 기항지 탐방을 나섰다. 처음이기에 많은 것들이 낯설었다. 왠지 모르게 러시아 사람들 표정이 차가워 보여 말을 묻기도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인터넷 속도도 많이 느려 지도와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며 여행을 했던 터라,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물어 갔어야 했는데 다들 '말 걸지 마세요!'라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도저히 모르겠어서 지나가는 분들을 붙잡아 용기 내어 물어보자 예상외로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다. 우리도, 그분들도 서로의 영어 억양을 알아듣기가 어려워 대화는 잘 안 통했지만 손짓발짓 다 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영어를 못 해 오히려 우리가 긴장하고 있듯이,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 분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심지어 요즘이야 블라디보스톡으로 여행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아져서 익숙하겠지만, 2012년 당시 블라디보스톡은 자주 가는 관광지는 아니어서 러시아인, 우크라나인이 주요 민족이었던 현지인들에게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조금은 어려운 사람들 아니었을까(심지어 군복을 입은!)
그렇게 물어물어 식당을 가고 카페를 다녔는데 신기했던 것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는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에도 스타벅스, 맥도날드, 배스킨라빈스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많았기에 러시아는 서양이니까 다양한 프랜차이즈가 더 많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건 선입견이었다. (심지어 블라디보스톡은 지리적 위치 상 동양이잖아?!) 블라디보스톡에는 유명한 프랜차이즈들이 거의 없어 로컬식당, 로컬카페들을 가이드북 보고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좋았던 것이 완전 유명한 맛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순항훈련기간 동안 기항지에 가면 보통 맛있기로 유명한 맛집을 가거나 근처 유명 프랜차이즈로 식사를 하러 가게 된다. 그래서 유명 맛집이나 맥도날드, 스타벅스를 가면 우리나라 해군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어 ‘여기가 대한민국 해군의 모항 진해인가?’ 싶을 때가 많았는데 오히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해군들을 많이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진짜 외국에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밥을 먹고 우리들은 도시 이곳저곳을 유유자적 걸었다.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한국이랑은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사람이 많지 않은 유럽을 걷는 느낌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걷다가 우연히 전망대로 향하는 트램을 발견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이 트램이 푸니쿨라라고 불렸는데,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트램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리다 보니 어느새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밤이 다가왔고 우리는 첫날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우리들의 집 군함으로 복귀했다.
이틀 째에는 개별 탐방이 아니라 단체 탐방이었다. 생도들이 단체로 방문하게 된 곳은 2012 APEC 정상회담(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이 열렸던 루스키섬이었다. 우리가 방문하기 1주일 전에 APEC 정상회담이 개최된 따끈따끈한 곳이었고,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도 방문하여 각국 정상들과 회의를 진행했다고 했다. 정상회담이 개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회담장 가이드 분께서도 이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이 앉았고, 저 자리에는 푸틴 대통령이 앉았다며 다들 각국의 정상이 되어보는 호사(?)를 누려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다리도 꼬고, 진지한 표정으로 악수도 하며 각국 정상인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아마 다들 아쉬운 마음에 그랬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각국 정상이 되어보는 시간이 우리들의 마지막 블라디보스톡 투어였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톡의 일정은 원래 2박 3일이었지만 피치 못 할 사유로 1박 2일로 단축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아쉬웠던지. 다들 첫 번째 기항지였기에 PPT 자료도 만들고 발표까지 하면서 큰 기대를 가졌던 방문이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일정이 단축된 이유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Coming soon!) 너무나 짧았지만 그래도 때 묻지 않은 도시를 만났다는 추억을 가지고 순항훈련전단은 첫 번째 기항지 블라디보스톡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