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타고 환태평양 일주]
"생도님, 저 위에 한 번 보시겠습니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가는 태평양에서의 자정을 조금 넘어가던 시각. 그 날은 함교 견시(見視) 당직체험을 하는 날이었다. 꽤나 쌀쌀한 날씨임에도 아직 잠에서 덜 깨어 정신의 반은 침대에 누워있었던 그때, 같이 당직을 서던 이름 모를 수병님이 불현듯 어딘가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건넸다.
"예? 하늘 말씀이십니까?" 하며 별생각 없이 바라본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떠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엔 불빛이 존재하지 않아 그 어느 곳보다 별들이 잘 보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밤하늘의 은하수가 나에게로 수도 없이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나도 모르게 '와' 하며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별자리를 하나하나 찾다가 동이 틀 정도로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수없이 많고 아름다운 별들에게 압도되어 '이건 매일 봐도 진짜 질리지 않을 광경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 밤하늘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밤하늘에 별이 떠있다는게 당연해지면서 그 다음 신기해진건 별똥별이었다. 태어나서 별똥별을 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희귀했던 그 친구를 바다에서는 5분마다 볼 수 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잖아. 로또 당첨되게 해달라고 소원 빌자 ㅋㅋ"라며 친한 동기와 농담 반 진담 반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떨어지는 별똥별인데도 그 순간 바로 소원을 비는 것은 꽤나 어려웠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간이 소원을 빌기에는 너무 짧았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별똥별은 놓치기 일쑤였고 2~3번째 별똥별이 떨어지기만을 의식하고 기다려서야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는 평범한 소원만을 빌 수 있었다. 정작 바다 한가운데라 로또는 살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하느님께 소원을 빌었다면 꿈에 나타나 로또부터 사라고 혼내키셨을거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첫 별똥별을 놓치고 다음엔 꼭 빌어야지 의식하고 있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별똥별이 많이 떨어지는 바다에서도 소원을 빌기가 어려운데, 별똥별을 거의 볼 수 없는 육지에서 그 찰나의 순간에 소원을 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언제 만날지도 모를, 혹은 평생 만나지도 못 할 별똥별을 위해 소원을 의식적으로 매일 되뇌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어 이루어졌다던' 그 사람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 그 생각을 하루종일 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던거다. 하루종일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고 행동하고 있던 간절한 사람이기에 별똥별을 만났을 때에도 소원을 빌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정도의 간절함이라면 별똥별이 아니더라도 소원은 이뤄졌지 않았을까.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게 행운이 아니라,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빌 수 있는 소원이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