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한 밤의 티타임

[군함 타고 세계일주]

by 탱이사는이야기

"점호 끝. 소등 및 취침"


소등 방송이 나오면 사관생도들의 고단한 하루 일과는 끝이 난다. 원래라면 다른 이들은 침대에 누워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할 그 시간, 생도들 중의 일부는 소리소문없이 휴게실로 향한다.


"야, 야, 조용히 들어와!”

“이제 앉을 자리 없다”

“야, 들키면 혼나니까 쉿!”


6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휴게실 쇼파에 10명 내외의 생도들이 최대한 옹기종기 붙어앉아 무언가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야시시한 밤의 시작이었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우리들이었으니 예쁜 여자 아이돌 그룹의 영상을 보거나 옛날식 표현으로 빨간 비디오를 볼 법도 했다.(물론 우리는 빨간 비디오 세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다렸던 것은 순항훈련전단 군종참모님이셨던 여철법사님이셨다.


좀 더 솔직해보자면 야밤의 티타임 초반에는 법사님이 챙겨오신 과자를 기다렸던 것 같다. 매일 훈련을 하고 파도와 싸우며 하루하루 전투와 같은 삶을 보내는 생도들에게는 삼시세끼의 밥으로는 너무나 부족했다. 법사님께서는 매일 밤 빵빵해진 스포츠 가방을 챙겨 오셨는데 거기에는 과자들이 한가득이었다. 마치 그 모습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한아름 가져오신 것 같아 성탄절(聖성인 성, 誕태어날 탄)의 성인이 싯타르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잠시 할 정도였다. (그렇다. 과장이다.) 새벽이 흐르는 동안 스포츠 가방의 과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없어져갔는데 다음날이 되면 또 가득 차 있는 스포츠 가방을 보면서, 도라에몽의 주머니가 현존한다면 저런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법사님께서는 한국에서 출항할 때 1,000만원 어치의 과자를 사오셨다고 한다. 그마저도 금방 동이 나서 중간 기항지에서 과자를 추가적으로 구비하셨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을 우리들이 다 먹어버렸던 거다. 그 많은 양의 과자가 사라지는 동안 법사님이 과자를 드시는 모습을 좀처럼 못 봤으니 순수하게 우리 생도들을 위해서 준비하셨을 것이다.


무튼 그 과자들을 한봉지씩 먹다보면 향긋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날의 차가 끓여지는 향이었다. 법사님께서는 차를 정말 좋아하셨는데 우리들에게 그날 챙겨오신 차가 무엇인지, 어떤 향을 가지고 있고, 언제 어떻게 마셔야 더 잘 즐길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곤 했다. 차에는 문외한이던 우리들이지만 설명을 듣고나니 차가 꽤나 매력적이게 느껴졌고,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게 향을 맡아보고 맛을 음미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과자보다 차를 더 기다렸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법사님의 이야기를 기다렸다고 해야겠다. 법사님께서는 동양철학(특히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을 전공하고 팝송(특히 비틀즈)에 해박하셨는데 차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동양철학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동양철학의 관념을 비틀즈의 음악에서 찾아내시는 그 시적인 이야기를 듣다보면 약간 나도 문학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전투에 나갔던 군인들이 터벅터벅 막사로 돌아와 작은 시집을 읽으며 울고 웃었듯이 우리 생도들에게는 그 시간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명작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 전쟁통 중에 탄생된다. ‘삶을 되돌아보느냐 아니냐’라는 종이 한 장이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끝나곤 했던 야시시(夜밤 야, 時때 시, 詩시 시)한 밤의 티타임.


정규교육과정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 해사 67기들에게는 장교로서 성장하고, 나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해나가는 중요한 교육 중에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 물론 다음날 수업은 잘 수 밖에 없었다. 인생수업 들었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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