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명의 룸메, 하나의 공유경제

[군함 타고 세계일주]

by 탱이사는이야기

"야, 누가 내 속옷 가져갔어!"

“여기 널어둔 내 양말 본 사람?”

“아, 또 범인 A다 ㅋㅋㅋ”

“나 진짜 아니라고!!”


오늘도 대청함(AOE-58)의 남생도 침실에서는 도둑 맞은 물건을 찾는 피해자와 전과가 있는 사람을 의심하는 경찰 그리고 본인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피의자가 나타난다. 보통의 범죄현장에는 사람들이 웅성웅성대기 마련인데 우리들의 침실 역시 ‘이번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토론’으로 시끌시끌해졌다. 다만 자주 속옷이 사라졌기에 “야, 좀 잘 챙기자, 대도들이 챙겨갈만한 위치에 두지 말라니까? ㅋㅋ”처럼 스스로의 속옷은 스스로가 잘 챙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마치 유럽여행에서 여권과 지갑 그리고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소매치기가 아니라 준비 없는 스스로를 탓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왁자지껄한 모습들은 세계일주를 하는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익숙한 배경음악처럼 우리와 함께 했는데, 우리 스스로가 시험감독이 되는 무감독 시험으로 유명한 명예시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명예를 중요시하는 우리 해사 생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소란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순항훈련을 떠나기 위해 대청함에 승조했던 날, 우리는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침실이라고 소개받은 곳에 3층짜리 그물식 침대가 무려 20세트나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60인실이었던 것이다. 해병대 실습이나 연안 실습 때에도 15~20명이 함께 살아본 적 있어 단체생활이 그 누구보다 익숙한 우리였지만, 60명이 한 방에서 같이 지낸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60명의 가족, 60명의 룸메를 얻게 된 것이다.


타입은 다르지만 이런 식의 3층식 침대가 20세트가 있었다(사진은 퇴역군함인 울산함 내부)


나에게 60명의 룸메를 선물해준 그 격실은 원래 탄약고였다고 했다. 대청함에는 많은 수의 생도들이 지낼 수 있는 침실이 없었기에 탄약고를 개조하여 임시 침실을 만들었던 것이다. 임시 침실은 우리들의 몸을 누일 침대를 놓기에도 작은 공간이었고, 그래서 옷을 걸어둘 옷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육지책으로 침대 철제 고리에 옷을 걸어둘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정말 니꺼 내꺼의 경계선이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수건이나 속옷, 양말처럼 보급받은 물건들은 모두 똑같은 디자인이었기에 더더욱 헷갈릴 수 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내꺼가 니꺼가 되고, 니꺼는 쟤꺼가 되는 공유 경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덜식 공유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의 물건을 공유하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도둑과 해커가 있어야 각종 보안이 발전한다고 했던가? 우덜식 공유 경제 역시 문제점을 해결할 예방책들을 하나 하나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어느 친구는 속옷에 네임펜으로 큼지막하게 본인의 이름을 적기도 하고, 검정색 양말에는 노란실로 이름이나 이니셜을 적기도 했다. 또한 보급품 대신 자신만의 유니크한 외국 속옷을 사기도 했다. (디자인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ㅎㅎ) 무튼 그러한 자신만의 표식으로 분실을 방지하거나 도둑을 찾는데 활용했던 것이다.


물론 문제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60명의 룸메가 있다는 것은 왠만하면 모든 것이 있다는 의미기도 했는데 내가 섬유유연제가 없으면 너에게 빌리고, 너가 치약이 없으면 쟤에게 빌리고, 쟤가 손톱깎이가 없으면 내가 빌려주는. 바다 위에서 부족한 재화를 함께 나누어 부족함을 메우는 운명공동체였던 것이다. 다만 쟤가 여자친구가 있더라도 나는 없었다. (운명공동체는 무슨. 나쁜 배신자들)


많은 것을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들은 속옷을 자신도 모르게 가져갔던 ‘대도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정확히 말하면 나의 속옷을 입고 있던 범인을 잡았을 때) 왁자지껄 모여들어 거의 축제를 벌이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놀았다. 표면적으로는 야 도둑이다 이야기하며 견제를 하는 모양새였지만, 우리 나름으로는 60명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너의 공간을 침범하고 너가 나의 공간을 침범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쉽지 않은 공존의 공간에서, 서로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을 웃으면서 웃고 넘기는. 서로의 감정도 배려하고 공유하는 우덜식 공유 경제. 그렇게 60명의 룸메들은 오늘도 많은 것을 공유하며 태평양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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