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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Sep 04. 2023

Ep.25 내전진행국가 입성

[군함 타고 세계일주]

군함 타고 세계일주를 출발하기 전 나를 가장 설레게 한 나라는 콜롬비아였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유명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페루의 마추픽추처럼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콜롬비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아는 것이라곤 월드컵에 꾸준하게 나오는 남미 국가라는 것 하나뿐. 지극히 무지의 상태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왜 나는 콜롬비아를 떠올리며 설렜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설렘을 자극시킨 건 바로 그 무지함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구는 사각형’이라고 믿고 살던 시대에, ‘지구는 둥글다’라며 신대륙 한 번 발견해 보겠다고 배를 몰고 나갔던 무모한 자들의 주무대였던 대항해시대.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신대륙 아메리카. 그중 가장 무모했던 자였을지도 모르는 최초의 발견자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콜롬비아였다. 무지함과 무모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곳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모험으로 다가왔다. 모험의 나라! 그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원피스를 찾으러 가는 루피의 심정이 이랬을까 싶었다. 마치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심정이랄까. (아니, 너는 해적이 아니라 해군이라고..)


- 이번 콜롬비아 정박 중에는 상륙은 없다. 안전 상 콜롬비아 태평양사령부 군항 내에서 3일 간 영내대기를 할 예정이니 참고할 것!

- 예 알겠습니다! (네?!?!?!?!)


습관적으로 대답은 하고 말았지만 나의 동공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모험의 나라에 왔는데 모험은커녕 영내대기라니!! (한시라도 빨리 원피스를 찾아) 아니, 콜롬비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열정적인 남미 사람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아시아에서는 보기 힘든 장소들도 가보고 싶었는데 1학년 생도들처럼 영내대기라니. 못 나가게 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나에게 무지함과 무모함으로 설렘을 주던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무지함과 무모함이었다. 이곳에서는 몇십 년에 걸친 내전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마약 카르텔을 형성했던 곳도 이곳 콜롬비아였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카르텔을 소탕하려던 대통령 후보 3명을 암살하는 등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자들을 다 처단할 정도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마약으로 인해 골치 아픈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게 파블로를 체포하라고 여러 방면을 통해 압박하자 결국 교도소에 수감되게 되는데, 알고 보니 이 교도소가 본인이 만든 교도소였고 교도관도 본인이 뽑은 것으로 전해지니 얼마나 대단한 권력이었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듯 불안정한 현지상황과 우리가 입항한 곳이 아마존 한가운데라는 지리적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 순항훈련전단은 상륙 금지를 최종 결정했다. 약간 의아스럽게 느껴지실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인들이 놀러 가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관광지이고, 그렇기 때문에 비록 내전 중인 지난 50여 년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놀러 오지 않았냐고. 심지어 우리나라도 북한이란 적이 있는 정전국가인데 다들 안전하게 살지 않냐고.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신분은 보통의 관광객들하고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단순히 민간인 신분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이곳을 방문했기에,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관광을 떠나지 않는 게 맞았다. 우리가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은 6.25 참전국인 콜롬비아에게 감사함을 전달하고, 양국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관광이라는 부가적인 목적은 아쉽지만 참는 게 맞았다.


상륙을 금지당하고 콜롬비아 군항에서 영내대기를 하는데 새삼스럽게 우리나라 역시 아직 정전 중인 국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 스스로도 가끔 잊고 살지만 말이다. 내전진행국가에 입성하고 나서야 내 나라의 현실이 와닿았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사관생도인 나로서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특히 공식적으로는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까(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도 역시 어찌 보면 내전진행국가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같은 내전진행국가임에도 이 나라는 전쟁 때문에 살기 쉽지 않겠구나 넘겨짚었던 것이다.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인 국가의 군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적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의 평화로워 보이는 기간은 콜롬비아와는 다르게 우리의 적이 인도주의적이고 매너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무력이 전쟁을 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 마치 유유히 물 위를 떠가는 것처럼 보이는 백조가 물아래에서는 수십, 수백 번의 발길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순항훈련이 어느덧 40일이 지나가고 이어지는 훈련과 당직이 지루하다고 느끼던 시점. 이 지난한 과정을 다시금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백조의 다리이기 때문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콜롬비아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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