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무것도 아닌 나로 살아보기

–인정받지 않아도, 성취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탱구엄마

그날 이후,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오래 들여다봤다.


사실 나는, 무언가를 이뤄내고 성취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행복한 줄 알았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아닌 평범한 날이 가장 행복했다.
빵 하나에 웃고, 아이의 눈빛에 미소 짓고, 남편과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이.


그때 깨달았다.
인정받지 않아도, 성취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우리 가족이 함께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웃기게도,
딸로서 '조건부 존재감'을 안고 살던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참 많은 걸 해냈다.


지기 싫어서 시작한 공부가
결국 이 사회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되었고,
엄마 아빠와의 갈등은 사람마다 사랑의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해줬다.

(물론, 그들의 사랑이 나에겐 때때로 과했을 뿐이다.)


엄마는 내가 살이 찌면 종종 타박을 하셨다.
그 영향으로 나는 평생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말도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예전엔 모든 걸 이뤄놓고 귀촌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다 해놓고 내려가지?"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대단한 걸 이뤄놓은 것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이 세상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 대신,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으려고' 조용히 귀촌을 택한 사람들에게
이젠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건 견딘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니까.


나도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워킹맘으로, 세무사로, 대학원생으로 한없이 흔들리면서도 어쨌든 버텨낸 나에게.


정신과를 다니면서 제일 처음 한 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쉴 줄 모른다는 건, 게으름과는 달랐다.
내게 쉼은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쉴 거면 쉴 자격을 만들어 와.' ,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라면 괜찮아.'
이게 내 머릿속 공식이었다.


하지만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엔 머리를 쉬게 두지 않으면,
뇌가 폭발하든,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스도쿠 책을 샀다.
무언가를 배우려는 것도, 시간을 잘 써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어떤 날은 책을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기를 재운 후 '나를 위한 밤'을 가졌다.
자기 전에 육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되었다.


'아, 나 지금 나를 보듬고 있구나.'라는 자각 만으로도 살만한 세상으로 느껴졌다.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다는 것,
그게 이렇게 귀하고 행복한 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사를 계획 중이다.
물리적인 거리두기, 감정적인 독립을 위해서.
이사와 동시에 사업체 독립도 고려하고 있다.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예상이 안 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것.
내 가정이 1번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엄마인 나’가 제일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에 맞는 딸보다는
내 아이의 엄마로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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