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본격적으로 쉬어보기

by 탱구엄마

처음엔 출근을 유지하면서 쉬려고 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자꾸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실수를 하고, 주말엔 남편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어딘가 고장난 사람 같았다.

그래서 11월-12월까지는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고 쉬겠다고 선언했다.

선언 후 아빠는 좀 당황하신 것 같았으나,

이내 알겠다고하셨고 오늘이 쉰지 이틀차다.


첫째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늘 퇴근 후 밤에만 하던 다림질을 아침에 하고 있자니 새삼 실감이 났다.
출산 후 집에 아이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처음이었다.


집안을 정리하고 여유롭게 점심을 차려 먹었다.
그동안 보고 싶던 넷플릭스를 틀었다.
혼자 못본지 오래된 지라, 오로지 나만의 넷플릭스 목록이 한가득이었다.

(남편과 취향 다름 이슈)


한두 시간을 보다 보니, 몸이 근질거렸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홈트를 했다.
운동을 마치고 씻고 나오니 아이 하원 시간.

아이와 함께 쫓고 쫓기고, 책도 읽어주고, 드럼도 치고,하염없이 '즐겁게' 놀았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내 밥을 차려 먹고,
야근한 남편을 맞이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처음 느꼈다.


몸이 남아 있었다.

항상 나를 불태워 소진해야만 하루가 끝났는데,
어제는 나를 다 태우지 않아도 하루가 마감됐다.


둘째 날,
아침부터 운동을 갈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절대 무리하지 말자. 질릴 때까지 쉬어보자.'


아이를 등원시키고 온수매트를 뜨끈하게 틀어둔 침대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두 시간 동안,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쇼츠와 릴스를 보며 '게으르게' 뒹굴거렸다.


점심을 차려 먹고, 드립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선 지금 이렇게 컴퓨터를 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도저히 할 게 없어서, 심심해서 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앞으로의 한 달이 걱정되진 않는다.

소진되었던 나를 채울 일은 무궁무진하다.
요가도 하고, 발레도 배우고, 친구도 만나고, 이유 없는 산책도 해볼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아직 배우는 중이지만,

스스로 차오른다는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하루다.




앞으로 어떤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모른다.

우선 11-12월을 쉬겠다고 선언했으나, 아빠는 11월만 우선 쉬어보라고 하셨고..

그래서 12월은 미정이다.


아빠는 나의 힘듦을 말하자,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일을 다시 열심히 하기 시작하셨다.

가장 아빠다운 방식으로 나를 돕고계시다.


그리고 엄마,

엄마는 사실 수용이 빠르신 분이다.

본인 친구와의 일화를 말하다가도, 내가 '그건 엄마가 잘못한거같은데?'라고 말하면

'아, 그래? 내가 이건 좀 그랬나?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이렇게 바로 인정하신다.


그런 엄마였음에도, 그동안 나의 불만을 말하지 못한건 내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사실 11월부터는 대학원 가는 날만 오시기로 했지만)

'엄마, 우리의 스타일이 있어' '엄마, 우리 최선을 다하는데 왜그래?'

'엄마, 내 눈에는 그게 안보이더라? 엄마가 알려줘서 덕분에 치우네~'라는 식으로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엄마는 전부 수용하신다.

왜 진작 말하지 못했을까, 왜 끙끙 앓았을까.


결국 부모님도 남편도 모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힘들 때 기댈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난 그들 앞에선 무조건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


내려놓으니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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