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뭐랄까, 새로운 버전의 내가 시작되는 달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겨울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게 많았다.
유난히 투명해 보이던 단풍이 좋았다.
잎이 떨어질 때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아이가 낙엽을 주울지 관찰하는 게 좋았다.
아기의 첫 걸음마를 함께해서 좋았다.
아기가 엄-마를 해줘서 좋았다.
날이 추워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날 위해 핫팩을 주문해준 남편이 좋았다.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힘들었다고 말한 날마다 미리 온수매트를 틀어놓은 남편이 좋았다.
대학원 발표 준비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날 위해 주말 저녁밥을 차려준 남편이 좋았다.
계획없이 갔던 도서관이 닫아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이 좋았다.
오후에 갑자기 나간 산책길에서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게 좋았다.
바람을 맞는 것도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캐롤을 틀어놓고 트리를 설치하던 순간이 좋았다.
우리의 오너먼트 각각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게 좋았다.
아기 빨래가 거실에서 햇빛 받고있는 걸 보고있는게 좋았다.
멍하니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있는게 좋았다.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은 하루가 좋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