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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May 09. 2022

엄마의 행운목에 꽃이 피면 (上)



어느 집이나 비슷하겠지만 우리 엄마도 식물을 참 좋아한다. 학창 시절, 우리 집 베란다에는 늘 관리가 그다지 잘 되어 보이지 않고, 심지어 조금 너덜너덜한 이파리를 가지고 있는 커다란 행운목 한 그루와 이름 모를 낡은 화분 무리들이 아침 조회시간의 운동장처럼 창가 공간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식물 키우는 솜씨가 그렇게 뛰어나진 않았던 모양이다. 뭐,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 수많은 식물들 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특히 행운목을 유난히도 아꼈다. 행운목에 솜털 같은 하얀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도 그렇게 자랑을 했었더랬다. 행운목에 꽃이 피면 우리 집에도 행운이 찾아온다는 얘길 종종 지나가는 이야기로 했었고, 그 행운목에 대한 엄마의 믿음. 아니 신앙은 꽤나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행운목에 꽃이 피더니,
우리 태평이한테 좋은 일이 생겼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교내 과학그림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뒤, 운 좋게도 더 큰 규모의 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 제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생소할 수 있으나, 라떼는 정말 그런 대회가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중 엄마는 뜬금없이 행운목 얘기를 꺼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이 학교 대표로 뽑혀 대회에 출전하다니, 맏이가 장하다고 나를 칭찬하면서도, 행운목이 꽃을 피워서 집안에 이런 경사가 찾아왔다며 은근슬쩍 행운목에게도 칭찬 지분을 나누어주었다.

한창 예민했던 사춘기의 나는 마치 내가 이루어낸 결과를 행운목에게 홀랑 뺏겨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 뒤로도 좋든 싫든 우리 집의 역사는 늘 행운목과 함께였다. 고등학교를 지나 성인이 되어, 또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도 엄마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행운목을 이야기꽃의 단골 소재로 꺼내곤 했다.

행운목이 꽃이 핀 뒤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거나, 여동생이 취업을 했다는 등 행운목이 마치 혁혁한 공이라도 세운 것 마냥 엄마는 꽃이 핀 행운목을 추켜세웠고, 당시의 난 나의 숨은 노력에 숟가락만 얹은듯한 행운목이 그렇게 반가운 존재일 리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 해에는 행운목의  꽃이 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행운목의 탓을 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행운목이란 우리 집안에 좋은 소식을 물어다 주는 우리 집의 파랑새이자, 반려식물 그 이상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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