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평 May 12. 2022

엄마의 행운목에 꽃이 피면 (下)



지금으로부터  25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 우리  이모가 경기도 남양주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우리 식구들이 이모네 집들이를 간 날, 엄마는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똑 닮은 커다란 행운목을 이모에게 선물하며 이모와 이모부에게 신비로운 예언을 남겼다.


행운목에 하얀 꽃이 피면, 언니네 집에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 후 한참의 해가 지난 뒤인 지난 3월, 쭉 같은 집에 살고 계신 이모집으로 놀러 가서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도중, 이모는 집 베란다에 놓여있는 행운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나의 이목을 끌었다.

이모는 말했다. 엄마가 선물해준 이 행운목의 꽃이 핀 그 이듬해에 그렇게 결혼을 안 한다고 속을 썩였던 친척 언니가 정말 결혼을 했고, 또 희망하던 은행 자리에 취업도 했었다고..(그건 조금 신기했다.) 이모의 말이 맞다면, 우리 엄마의 축복을 담은 예언이 꽤나 적중한 셈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엄마가 행운목을 유별나게 아끼고 또 우리에게 그렇게 자랑을 했던 건, 단순히 우리 집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이유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리기만 했던 자식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가면서, 엄마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즐거운- 그다지 엄마의 돌봄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던 우리 집의 그 시기와 맞물려, 엄마의 돌봄을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 존재가 행운목이기도 했지만, 행운목의 꽃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곧 당시 자식들이 성장해가면서 이루는 크고 작은 성과에 대한 엄마의 겸손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누구 하나 크게 대성한 인물 없이, 서른이 넘은 자식들은 지금 모두들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자식들의 성장 과정에서 이뤄왔던 소소한 성과를 비롯한 우리 집의 좋은 일들은 엄마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자식들이 전하는 기쁜 소식의 뒤엔 항상 본인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이 있었노라고 말하기에는 조금은 낯 뜨겁고, 또 너무 순수해서. 본인에 대한 자찬을 행운목의 뒤에 숨어 표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행운목은, 금손과는 거리가 먼 엄마의 손에서 20년을 넘게 아프고 낫고를 반복하다가 몇 해 전 결국 작은 나무 조각으로 토막 난 채 다시 인생 2회 차를 살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오랜 세월 동안 엄마의 옆을 지키며 잘 자라고 있다.

다시 엄마의 행운목이 새하얕고  예쁜 꽃을 피우기 바란다. 그리고 꽃이 피는 그 해, 그녀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이 생겼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행운목에 꽃이 피면 (上)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