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함께 안분지족 하는 어린이의 삶
나는 아직 미혼이다. 당연히 아이도 없어서 요즘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그나마 미취학 자녀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주로 키즈카페나 주변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준다고 했다. 단 놀이터로 아이를 혼자 보내는 일은 절대 없다고도 말했다.
음… 라떼는 말이지-.
동네 공터에서 흙 좀 뒤집어쓰고 응? 잠자리채 들고 다니면서 하늘잠자리 몇 번 잡아봐야 좀 놀아봤다고 하는데 말이다.(심지어 어렵게 잡은 된장잠자리, 고추잠자리 따위는 너무 흔해 잘 쳐주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액세서리는 하얀 토끼풀을 엮은 반지로 대신했고, 어린이용 매니큐어 대신 봉숭아와 백반을 빻아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는 그게 곧 네일아트였다. 특히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미니 키친세트도 벽돌 한 장을 도마 삼아 그 위에 풀을 빻는 것이 곧 나의 주방 놀이였다. 용돈 받으면 그걸로 과자나 아이스크림 사 먹지 굳이 뭐하러 그런 걸 돈 주고 하는지… 훗. 라떼는, 그런 거 자연에서 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혹시… 내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일까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굳이 공개하면 나는 87년생 MZ, 정확히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람이다. 그럼 어디 시골에서 살았냐고? 서울 송파에 살았고, 그저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응답하라 1988>에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는 불과 90년대 초의 나의 추억이고 동네의 또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노는걸 정말 좋아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갈대와 코스모스, 그리고 온갖 이름 모를 잡초가 모여있는 집 뒤편의 공터에서 노는 것을 무진 좋아했다.
엄청 낯을 가리고 굉장히 소심했던 나는 놀이터의 시소나 그네를 오-래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조금 비켜달라는 얘기도 못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혼자 안절부절못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결국 놀이터에서 밀려나 내가 향한 곳은 집 뒤편에 자리한 공터였다. 플라스틱 잠자리 통을 목에 걸고 잠자리채를 한 손에 쥔 채 공터에 도착하면 하얀 갈대들과 꽃분홍색의 코스모스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주곤 했다. 웃긴 건 나 같은 소심이들이 나 말고도 더 있었는지, 놀이터에서 분명 본 것 같은 아이들이 이곳 공터로 밀려 나와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모두 파브르가 되어 갈대밭 공터를 누비며 잠자리나 각종 곤충들을 쫓아다녔다.
내가 진짜 어린이답게 놀았던 건 각종 곤충과 식물과 교감하던, 그때의 그 시간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엄마 손을 잡고 집 근처의 백화점이나 테마파크를 갔던 추억은 오직 사진 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갈대와 코스모스, 그리고 잡초가 잔뜩 핀 공터를 누비며 노을이 질 때까지 잠자리를 잡았던 그 시간은 마치 영화의 시퀀스처럼 군데군데 또렷하게 남아있다.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는 보이는 겉모습은 화려한 반면, 결국 정해진 설계대로 동선을 따라가게 된다. 많은 인파에 치이다 보니 여유도 찾기 힘든 건 덤. 하지만 그 갈대밭 공터는 내가 잡고자 하는 곤충과 내가 보고자 하는 풀들이 나의 동선을 만들어주고, 또 곤충들을 쫒으며 여유를 가지고 내가 갈 길을 만들어 나아간다.
자연은 비록 수수하지만 내가 어떤 자극을 주면 곧장 반응을 해주고, 우리는 그렇게 교감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그곳에 가도 질리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동네 공터 안의 갈대 숲을 누비며 잠자리를 잡던 어린아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 강남 테헤란로의 빌딩 숲을 누비며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노을 진 갈대밭 공터에서의 추억이 내겐 너무 강렬하고 또 아련하다.
내가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나무와 풀, 곤충들을 벗 삼아 뛰노는 여유와 즐거움은 정말 마음껏 누리게 해주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랬듯, 나의 아이가 자연과 교감을 하며 어떤 대화를 속삭일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