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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May 02. 2022

나는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선물하지 않기로 했다

- 어버이날 꽃도 이제는 취향 존중 시대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께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선물한 날을 기억하는가?

난 그게 유치원 때였는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떤 카네이션을 선물했는지는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부모님에게 처음 안겨드린 카네이션은 색종이를 얇은 막대 모양으로 길쭉하게 잘라, 가운데를 중심으로 종이를 구부려 꽃을 만들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어버이날 감사하다는 글자를 적은 작은 카네이션 브로치였다. 아빠, 엄마의 가슴에 내 완벽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 위해 혹시라도 꽃이 구겨질세라 노심초사 양손에 브로치를 들고 집으로 내달리던 그 설렘조차도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잔향처럼 남아있다.


그 뒤로 카네이션은 내가 점점 커가며 용돈이 올라갈수록 그 형태도 조금씩 변화를 겪었는데 꾸깃했던 종이 카네이션은 보다 정돈된 느낌의 조화 카네이션으로, 그리고 조금 더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고 나서는 싱싱한 생화 카네이션으로 점점 질적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그리고 취업을 한 뒤로는 더 이상 카네이션이 아닌, 노랑나비가 앉은 듯 나풀나풀 노오란 빛이 고급진 분위기를 풍기는 호접란 화분과 소정의 용돈이 몇 년간의 어버이날 선물이 되었다.(그래서 본가에 호접란 화분이 점점 쌓이게 된 건 안비밀)


그런데 너, 엄마가 진짜 좋아하는 꽃이 뭔지는 알아?


문득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든 건 작년 내가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화분에 담긴 꽃보다 나무에 달린 꽃, 즉 꽃나무를 좋아했다. 우리 엄마의 최애캐 행운목의 꽃도 그렇고, 함께 길을 가다 엄마가 예쁘다고 스마트폰 지갑을 열고 연신 사진을 찍었던 꽃들 대부분은 화분에 고급스럽게 담긴 꽃이 아닌, 길가의 척박한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꽃나무의 꽃이었다.

어머! 저건 찍어야해-!


작년 봄 엄마와 함께 대모산에 올랐을 때도 그랬다. 이제 막 개화한 꽃들을 구경하며 산을 오르다 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있는 한그루의 이름 모를 꽃나무를 발견한 엄마는 스마트폰을 꺼내 한참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엄마는 내게 본인의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80년대 감성을 담아 140도의 우측 허공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와 콜라보레이션을 펼친 그 꽃나무는 엄마의 꽃분홍색의 등산복과 마치 깔맞춤 한 듯 진분홍색의 꽃을 달고 있었다. 내가 찍은 분홍분홍 한 사진을 보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엄마였다. 본인이 이제는 많이 늙은 것 같다고 멋쩍게 미소 지으며.





나는 올해 어버이날부터는 더 이상 카네이션이나 호접란을 선물하지 않기로 했다. 카네이션은 반평생 받았을 테니 올해에는 카네이션 대신 엄마의 취향을 반영해 단단한 목대 위에 화려한 꽃을 피워내는 예쁜 애기사과나무를 선물하기로 했다. 사과나무에 핀 하얀 사과꽃은 중심에 자리 잡은 노란 수술을 면봉으로 만져주면 작고 탐스러운 사과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나는 비록 빨갛고 빛이 나는 사과만큼 눈에 띄는 결실을 맺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 아쉬움을 나 대신 사과나무가 채워주지 않을지.(하핫) 또 이 사과나무는 산골에서 친구들과 나무를 벗 삼아 열매를 따먹고 놀았던 엄마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엄마는 강원도 삼척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10대 후반 홀로 서울로 상경해 터전을 잡고 살아가며 가정을 이뤘고, 또 서른아홉이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오로지 본인의 능력만으로 자식 셋을 부족함 없이 길러낸 훌륭한 엄마다.

아직 빨갛고 탐스럽게 열린 사과 같은 자식은 아니라서, 이런 훌륭한 엄마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 작은 사과나무와 소심한 액수의 용돈이 전부이지만, 사과나무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엄마의 추억과 기쁨을 엄마에게 선물해줬으면 좋겠다. 엄마의 인생에도 예쁘고 탐스러운 열매가 잔뜩 맺기를!



이번 어버이날, 흔한 카네이션 대신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는 꽃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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