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평 Jun 07. 2022

잡초가 특별한 이유

-식물 갤러리의 레전드 썰

디시인사이드의 식물 갤러리에는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글쓴이는 자신의 집에 방치된 화분 속에서 뜬금없이 자라난 새싹 하나를 발견한다. 무슨 식물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정성으로 그 새싹을 보살피다, 어느 날부턴가 성장이 더디고 힘없이 쳐져가는 그 식물이 걱정되어 디시인사이드 식물 갤러리에 다음과 같이 질문 글을 올린다.


제목: 무슨 종인지 알려주세요!!!!!!!!!!

가을쯤엔가 안 쓰는 화분에 새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기해서 물도 주고 햇빛 나는 곳에 잘 놔뒀더니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더군요.

처음엔 정말 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하루하루 다르게 크더니 (막 꽃도 피고 ㅠㅠ) 근데 이제 좀 많이 크니까 잘 안 크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잎도 바짝 세워져 있어서 아… 건강하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잎이 쳐져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ㅠ

(사진을) 보시고 무슨 종인지 꼭 알려주세요. 너무 궁금했던 녀석이거든요ㅠㅠ

그냥 잡초인가요? 흑흑


그의 질문글에는 많은 사람들의 댓글들이 달린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식물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렇게 정성으로 오랜 시간 보살펴 꽃도 폈던 그의 예쁜 식물은 한낱 잡초에 불과했던 것!


한편 그 게시글을 본 누군가가 글 아래에 새로운 댓글을 남긴다.


(님이)
기르기 시작한 이상 그것은 잡초가 아닙니다.






잡초는 보통 하찮은 존재로 치부된다. 하지만 그가 그 사실을 모른 채 그 잡초를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반대로 그 잡초도 쑥쑥 성장해나가며 그의 일상에 즐거움을 준 이상, 그것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게 된다.

출신성분이 뭐가 그리 중헌가. 그가 예뻐하고 걱정하는 대상이라면 그 잡초는 그의 어떤 값비싼 반려식물보다도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며, 잡초 이상의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고 봐야 하지 않을지.

그래. 잡초가 아닌 게 맞다.


남들이 하찮다고 여길만한 존재는 이 세상에 잡초 말고도 많다. 심지어 과거에는 사람의 직업도 귀천을 구분하지 않았는가.

누가 알아주지 않는 나의 업무나 취미 혹은 내가 공부하고 있는 무언가 일지라도, 남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열정을 다해 몰두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본인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임한다면 그것만의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의 일상에 자리 잡은 반려식물이 그의 걱정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고민 끝에 쭈뼛쭈뼛하게 써 내려간 질문글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하나의 댓글이 달렸다.

글쓴이는 그 댓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글쓴이의 예쁜 마음과 그 훌륭한 댓글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나저나 그의 잡초, 아니 식물은 아직 잘 크고 있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열매는 괴로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