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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Jun 16. 2022

반려식물에게도 병원이 있다면 좋겠다

15. 호프 셀렘 이야기




수경재배로 키우고 있는 나의 호프 셀렘이 처음 우리 집에 온건 겨울이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원래 흙에서 자라던 아이였지만, 수경재배로도 충분히 잘 자랄 수 있다는 블로그 글에 용기를 얻어 뿌리를 충분히 세척하고 잔뿌리 정리 후 물꽂이를 해줬더랬다. 물속에서 튼튼하게 자라라는 의미로 이 호프 셀렘의 이름은 아쿠아맨으로 지어주었다.


강해지세요 호프셀렘 용사여..!

호프 셀렘의 초록색 이파리는 마치 프릴을 단 것처럼 잎 바깥쪽을 중심으로 물결을 치며 나름의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얼핏 보면 잘 자란 연꽃잎처럼 그 수형도 가지런하게 뻗어있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평화로워진다.




그렇게 함께한 지 한 달이 지났을 쯤, 나의 아쿠아맨이 노란 멍 비슷한 무언가를 이파리 곳곳에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맥없이 축 쳐져버렸다.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만 해도 정말 탐스러운 잎을 자랑하는 튼튼한 아쿠아맨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하늘하늘 가녀린 인어공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발 일어나세요…!!!


어떻게든 살려보려 다시 흙에다 심어주고 집중 관리한다며 애를 썼지만, 이미 그의 이파리들은 마치 담합이라고 한 것처럼 모두들 고개를 하나씩 떨궈버렸다.

결국 마지막 잎새마저 고개를 완전히 떨군 순간, 나는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그를 초록별로 보내주었다.



반려식물도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반려동물도 병원이 있듯이, 반려식물에게도 병원이 있다면 좋겠다. 나 같은 초보 식물 집사는 식물이 아파하는걸 쉽게 눈치채기가 어렵기 때문에.

식물도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하고, 의사 선생님이 진단과 약 처방도 해주며, 상태가 정말 심각할 경우 응급처치도 해주면 좋겠다고. 22년 봄날의 밤, 식린이는 그가 떠나간 자리를 정리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아쿠아맨 용사여, 초록별에서는 부디 잘 지내시길….


아쿠아맨, 당신은 참 아름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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