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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May 26. 2022

누구나 차 안에 모과 하나쯤은 있잖아요

- 추억의 자동차 방향제, 모과 이야기


나는 모과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정말 정말 싫어한다. 모과의 달달하고도 오묘한 향을 상상하면 멀미부터 날 정도다. 대체 누가 모과가 향긋하다고 했으며, 그걸로 모과 차까지 만들어 먹는다고 했는가! 아마 이런 말을 퍼뜨린 사람은 모과 상인이거나 모과 농업에 종사하는 영농인이 아니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오해 마시길)

내가 이렇게까지 모과를 혐오하게 된 그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초, 자동차 방향제라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한 그 시절. 국민 방향제로 다들 차 안에 모과 한 두 개씩 쟁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우리 아빠도 새 차를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 유행을 따라 모과를 차에 두기 시작했다.

아빠 차를 타고 강릉 귀성길에 오르거나, 교외에 나들이를 갈 때면 모과는 늘 우리와 함께 동행했는데 그는 아빠 차에서 조용히 숙성되어가면서 어느새 우리가 아는 모과 향기와는 너무도 다른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빠 차의 모과가 3-4살쯤 된 무렵부터 나는 그를 견디기 힘들어 멀미를 정말 심하게 했으며,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검은 봉지를 끼고 차 안에서 오바이트를 하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아빠는 새 차를 뽑고 난 이후 고집스럽게 모과를 데리고 다녔다. 정말이지 숙성되다 못해 갈변하여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된 모과는 차 안에서만큼은 진한 존재감 과시하며 나를 괴롭혔는데, 그 후 내가 중학생 때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더 이상 그 차를 타지 않게 되었다.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한 남은 가족은 아빠 차의 그 지긋지긋했던(썩은) 모과 향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엄마, 아빠 차에 있던 모과 기억나?
난 그 모과향이 정말 너무 싫었어.

엄마와 TV를 보던 중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모과의 효능에 관한 내용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에게 그때 아빠 차의 모과에 관해 입을 열었다. 조금 오버해 아직도 아빠 차의 모과향을 상상하면 헛구역질이 난다고 말이다.

엄마는 심히 공감했는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 모과는 사실 아빠가 가져온 게 아니라, 외할머니가 직접 산에서 모과를 구해다 아빠 차에 직접 넣어둔 것이라고.


아빠의 성격을 봤을 때 추측하자면 불 보듯 뻔했다. 만일 외할머니가 선물한 모과를 차에서 치워버리면, 장모님이 그 사실을 알고 혹여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그렇게 막내 사위는 모과를 버리지도 못하고 장모님 모시듯 소중히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깔끔쟁이 아빠가 코가 막히지 않은 이상(후각이 존재하는 이상) 그 불편한 냄새는 절대 모를 리 없었을 테니까.


그때는 그 모과향을 정말 혐오했는데, 가끔 재래시장에서 소쿠리 안에 담긴 모과향을 맡으면 그때의 아빠 차와 우리 아빠가 생각난다. 모과향은 아직도 싫지만, 뭐 그것 만큼은 모과에게도 고마워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과야, 너의 냄새는 정말…견디기 힘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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